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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미녀와 야수

| 조회수 : 2,365 | 추천수 : 244
작성일 : 2009-09-30 07:15:39
1972년에 Psychology Today 라는 책에 발표된 두 여류 심리학자들의 "미녀와 야수"라는 제목의 논문이 있었다. 제목이 눈에 띄어 읽어 본 내용은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성적을 매길 때에도 예쁘고 잘 생긴 아이들에게 더 좋은 점수를 주게 되고, 반 아이들 전체가 나온 사진을 보여주고 문제아를 고르라고 하면 대부분 외모가 좀 떨어지는 아이들을 고르게 되는 보편적인 편견, 꼭 같은 나이의 두 아이들이 말썽을 부렸을 때 외모가 덜 출중한 아이를 더 야단치게 되는 면, 마지막으로 아주 어린 나이의 아이들조차도 외모에 대해 이미 자각하고 있고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결과였다. 어른들의 뿌리깊은 외모지상주의가 아이들에게도 사정없이 영향을 주어 동심을 휘젓는다는 내용이 나의 마음에 큰 공감을 주었다. 그러지 말아야한다고 말로는 하고 아이들에게도 가르친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마음이 이미 너무나 깊숙히 물들어있는 것들 모순 중의 하나이다.  

무심코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만화영화들의 내용들도 사실 대부분이 선남선녀들이 잘먹고 잘 살게 된다는 결론을 무의식 중에 아이들의 마음에 심어주는 것들이 많다. '미운 오리새끼'에서 오리인 줄 알았던 백조는 오리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후에 나타났기에 다행히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도 그녀가 미인이 아니었다면 왕자가 키스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루돌프 사슴'도 못난 코를 극복한 이유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썰매 끄는 기술을 발견했기 때문이지 만일 썰매를 잘 끄는 기술이 없었다면 못생긴 코때문에 다른 사슴들로부터 받는 조롱이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기 코끼리 덤보'의 덤보는 유난히 커다란 귀때문에 조롱을 받지만 그 귀를 이용해 날 수 있다는 이유로 조직의 수용을 받는다. 만일 하늘을 날 수 없었다면 그의 인생은 조롱과 좌절로 끝났을 것이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모두 아름다움때문에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재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선택을 받았다. 반드시 이런 유명한 동화들을 예로 들지 않아도 우리의 미래가 될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누가 붙들고 가르치지 않아도 어려서부터 자신의 외모와 능력이 어떤지 잘 알고 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더라도 그로 인해 숨어서 괴로워한다.

많은 아동심리학자들이 아이들의 자존감이 외모와 자질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에 주의를 주며 위기의식을 끌어올리려고 애를 써왔지만 그다지 성과가 없다. 얼굴과 몸매가 미스코리아나 멋진 운동선수가 아니더라도, 공부가 좀 떨어져도, 말이 좀 어눌해도, 눈치가 좀 없어 남의 마음을 쉽게 끌지 못해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이가 되기는 참으로 어려운 세상을 내 아이들이 살고 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이렇게 상처를 받고 자라나면 조각난 자존감은 여단해서는 자라지 못하고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어린 아이에서 성장을 멈춘 정서적 기형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어른이 된 뒤의 세상도 그다지 녹록하지 않다. 좀 뚱뚱해도, 외모가 좀 떨어져도, 배가 나왔어도, 돈을 좀 못벌어도, 말주변이 없어도, 아이들과 아내에게 자상하지 못해도, 마음을 사로잡는 말을 잘 못해도, 직장에서 업무능력이 좀 떨어져도 사랑받을 수 있는 남자들은 드물다고 봐야 하는 각박한 세상이다. 마찬가지로, 팔등신 미녀가 아니라도, 요리를 좀 못해도, 살림을 어설프게 해도, 아이들 기르는 것이 좀 서툴러도, 다니는 직장이 신통치 않아도, 전업주부라도, 집안 청소를 잘 못해도, 시댁을 잘 못챙겨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는 여자가 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어려서도 무조건적인 사랑이 어려웠던 우리의 인생은 나이가 들수록 더 조건부 사랑만 구해야 하는 서글픈 삶으로 전락해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서글퍼진다. 세월이 갈수록 무언가 뛰어나지 않으면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밀려나는 낙오자가 되어가는세상이다 보니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최상의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게 되나 보다.

미국에서는 얼마 전 11살 짜리 여자 아이를 집 앞에서 유괴해가서 18년 동안 감금해놓고 아이까지 둘이나 낳게 해서 같이 살다가 붙잡힌 아동 성폭행및 유괴범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웠다. 아이는 18년 동안 감금이 되어있느라고 스톡홀름 신드롬이 생긴 건지 오히려 범인을 감싸고 자기의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강한 유대감을 보여서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실종되기 전 몇 해 전에 재혼을 해서 둘 사이에 둘째까지 낳고 살고 있었는데 그 사건으로 죄없는 새아버지가 용의자로 몰리기까지 해서 결국 가정이 깨지는 비극까지 있었다. 18년 만에 누명을 벗고 이제는 원수의 아이를 낳아 키우다가 돌아온 딸을 보는 부모의 마음을 무엇에 비유할까. 사건을 분석했던 범죄심리학자가 대부분의 아동 성폭력범들은 자신들이 성인 여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수용되지 못한다는 열등감과 피해의식 때문에 신체적으로 약한 아동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운다고 했다.

수많은 흉악범들이 난무하는 요즈음에 강력 범죄자들의 정신감정을 해보면 늘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 심한 자존감의 결여이다. 바닥을 치다 못해 거의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열등감의 통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반대로 자아가 하늘까지 치솟아 유아독존이라는 생각으로만 가득찬 자아도취 성격장애자나 반사회적성격장애자들도 파고 들어가면 어린 시절부터 자존감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오히려 반대로 나가기로 무의식중에 마음먹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유독 놀림도 많이 받고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서 자존감의 붕괴를 맛보았던 그들이 수 십년이 지나면 어김없이 세상을 향해 복수전을 펼치게 된다는 섬뜻한 논리인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리 하비 오스월드는 해병대 시절 동료들에게 "Ozzie Rabbit (토끼같은 오지)" 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놀림 대상이었다고 한다. 공산주의의 대부 스탈린은 두 개의 발가락이 붙어있었는데 그로 인해 어린시절 별명은 "Nine-toed one (아홉 발가락)" 이었다고 한다. 외모에 유난히 열등감이 많았다는 히틀러까지 들지 않아도 세상을 놀래키는 사건들의 주인공들의 배후에는 반드시 그들의 모자란 부분을 따돌리고 조롱한 가족과 사회가 있다. 뫼비우스의 띠마냥 돌고 돌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저주처럼 느껴진다고 하면 이른 걱정일까.

며칠 뒤에 있는 학교 댄스 파티에 가고 싶은데 데이트 신청을 제대로 받지 못한 큰 아이가 이번 주 내내 심통을 부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저도하던 차에 오늘은 셋째가 자기 화장품을 망가뜨렸다고 눈물까지 글썽였다. 아이들만의 공식에 의하면 남자 중에는 제일 인기 좋은 풋볼 팀의 선수가 선망의 대상이고, 여자 중에는 치어 리더들이 최고의 인기를 얻는다고 한다. 그럼 풋볼 팀이 아니고 치어리더도 아닌 아이들은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일단은 외모로 승부가 난다고 하며 저도 웃는다. 속이 많이 상해있는 건 아닌가 하고 위로할 방안을 찾으려니 뾰족한 수가 없다.
"우리 딸이 내 눈에는 너무 이쁜데 남학생들이 눈이 나쁜가?"
"엄마, 정 안되면 여자친구들끼리 갈거에요!"
"그건 좀 너무하지 않을까?"
"누가 날 선택해주지 않는다고 주저앉을 것 뭐가 있어요. 남학생에게 선택 안받아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어요. 그리고 엄마가 연애는 늦게 할수록 좋다고 했잖아요."
백인 여학생들처럼 팔등신이 아닌 것이 엄마 탓이라고 탓하기도 하고, 키가 작은 것도 불만이고, 머리가 반곱슬이라서 매일 펴야 하고, 아빠의 쌍꺼풀을 안 닮았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하던 아이가 부쩍 어른이 된 듯한 소리를 한다.  
"언니, 좋은 수가 있어!"
곁에서 아무 소리 없이 숙제를 하던 막내가 눈을 반짝이며 거든다.
"아빠랑 가는 거야! 언니네 학교 남학생들보다 백 배 낫잖아!"
막내의 기발한 제안에 제 방에 숨어 언니한테 혼날까 조마조마했던 셋째가 제일 큰 소리로 웃어제낀다.
아빠와 학교 댄스 파티는 못가더라도 둘 만의 데이트라도 가게 해줘야겠다. 미녀와 데이트를 하게 될 아빠의 자존감은 한껏 상승할 것같은데 내 아이의 자존감은 어떻게 유지를 시켜야 할 지 고민하는 한 주간이다. 내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기만 한 내 아이들인데 세상에 내놓으면 어김없이 받게 될 잣대에 엄마의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

출처: The Indescribable Dong's Garden / 꽃밭에서 / http://blog.naver.com/kmchoi84/90070382627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햇살
    '09.9.30 3:01 PM

    제 딸 둘도 사회적인 잣대로 볼때는 못생긴 편이지만 ^^;;;
    복숭아 한점을 한가득 먹고 있는 입술, 콧물이 마른 코, 쌍꺼풀이 없지만 항상 초롱초롱한 눈..
    고사리 같은 손, 다섯발가락이 바쁘게 다 붙어있는 작은 발..들을 보고 또 보면
    세상 어느 미녀보다 이쁘고 또 이쁩니다..

    우리의 꽃같은 아이들은 모두가 다 선남선녀들 아닐까요..
    흉흉한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막막해지지만...다시 아이들을 보며 웃어봅니다.

    먼 타국에서 올려주시는 글들 항상 잘 보고 있어요~고맙습니다^^

  • 2. 동경미
    '09.9.30 11:37 PM

    햇살님, 이쁜 두 따님들...상상만 해도 너무 귀엽네요. 저는 아이들 어렸을 때 아이들 발이 그렇게 이쁘고 신기해서 늘 조물락거렸어요. 우리 아이들 다 선남선녀인데, 세상은 험하고 엄마의 힘은 한계가 있고...그래도 또 힘을 더 내서 아이들 잘 길러야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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