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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결손가정의 의미

| 조회수 : 2,460 | 추천수 : 249
작성일 : 2009-09-25 05:04:12
이혼률이 50%를 넘어가는 시대를 살면서 양쪽 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세대가 되었다. 어쩌다 양쪽 부모가 함께 살고 있다 해도 갖가지 불화 속에서 가지고 따로 사는 것만도 못하다는 얘기도 종종 나온다. 요즘같은 경제 위기에는 가출하는 부모도 늘어나면서 조부모나 다른 친척과 함께 살게 되는 경우도 생겨난다. 사별하는 부모의 아이들까지 더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되는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부모와 함께 사는지 알 수가 없다.

내 나이 일곱 살에 부모님이 헤어지시고 간간이 만남을 유지하며 지내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완전히 남남이 되셨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내가 상처 받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아빠는 미국으로 가서 일하시는 것이고 한 달에 한번 나를 보러 나오신다고 얘기를 했기에 나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매달 아빠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 날이 오면 예쁜 옷을 입고 나가 아빠를 만나고 유리잔에 담겨져 나오는 아이스크림이나 야쿠르트를 마시다가 미국에서 사왔다는 갖가지 선물을 받아오는 게 큰 기쁨이었다. 다행히 기본적으로 해외 출장이 많았던 아빠였기에 나에게 줄 선물은 늘 넉넉했고 나는 학교 친구들에게 그 선물을 자랑하며 으쓱해하기도 했던 철없는 어린시절이었다. 우리의 만남은 언제나 너무나 짧았고 헤어질 때는 언제나 다음에 만나면 목마를 태우고 놀이터를 가겠다는 빈 약속이 있었다.  

그러다가 서류가 정리되고 다시는 만나지 않기로 한 이후, 나는 친구들에게 아빠의 존재를 얘기할 대사가 궁색해졌다. 이혼이라는 말 자체가 나에게는 큰 수치로 여겨졌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웬지 나자신이 한없이 낮아져버리는 것만 같아 싫었다. 별 수 없이 아빠는 여전히 미국에 가 일하는 사람이고 이제는 예전보다 더 바빠져서 일년에 한번도 보기는 어렵지만 편지는 자주 한다는 얘기로 각색이 되어진 나의 거짓말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언제 꺼질지 모르는 운명이었다. 어디 아빠 편지 좀 보자 하고 누가 물을까 두렵던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그 어설픈 거짓말보다 더 나를 아프게 했던 것은 갖은 애를 쓰며 숨기고 싶은 나의 아빠에 관한 얘기를 남들은 너무나 궁금해하고 파헤쳐보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같은 반 친구의 집에 놀러가게 된 어느 날, 그 집 거실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숙제를 하고 있는데 그 아이의 엄마가 친구를 한 쪽으로 불렀다. 귓속말이었는데도 내 귀에는 다 들렸던 그 엄마의 질문은 저 아이의 아버지는 뭐 하는 사람이냐는 것과 사는 동네는 어디냐는 것이었다.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 아이는 귀찮아하며 모른다고 대답을 했고 나는 느닷없는 아빠 얘기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같아서 황급히 책을 챙겨 집에 가야 한다고 나섰다. 친구는 더 놀다가라고 내 손을 잡고 늘어졌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 모르게 울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엄마가 들으면 가슴 아파할까봐 지금까지도 말하지 않고 가슴에 넣어둔 상처이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손에 자라난 남편에게도 비슷한 사연들이 있다. 아이가 넷이나 되는 일하는 엄마이다보니 아이마다 제대로 손이 가지 않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고 남편이 가끔씩 털어놓는다. 나름대로 사업 수완이 좋으셔서 손대는 사업마다 번창하는 가운데에서도 일찍 나가고 밤늦게 돌아오는 엄마는 아이들 손톱 깍아줄 시간 찾기가 어려웠을 때도 있었나 보다. 초등학교 시절 남편이 손톱 밑이 새카맣게 된 채로 친구들과 골목길에서 구슬치기를 하며 놀고 있는데 저녁 시간이 되어 친구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가면서 쟤네 집은 엄마가 일을 하고 아버지도 안계시니까 엄마가 손톱도 제대로 안깍아주나보라며 혀를 차고 가더란다. 노을이 지고 친구들은 하나 둘씩 엄마들이 저녁 먹으라고 불러들여 텅 빈 골목에서 소리도 못내고 서러워서 한참을 울고 집에 들어갔을 남편의 모습이 마음에 그려져서 내 마음이 참 많이 아팠다.  

세째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닐 때 한 반에 있던 친구의 엄마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민감한 문제인데 어쩌면 그리도 남의 집 사정을 잘 알고 있는지 들으면서도 씁쓸한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려서부터 있어 온 문제라서 아이들도 이제는 그럭저럭 적응을 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나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는 말에 나도 엄마이기에 가슴이 뭉클했다. 나중에 고등학생 큰 딸에게 물어보니 그 아이의 언니가 큰 딸의 친구이기도 했다. 한번씩 엄마가 정신줄을 놓을 때마다 어린 두 자매가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과 정신이 다시 돌아올 때마다 그 엄마가 고스란히 느껴야할 자괴감과 절망이 전해져서 내 마음도 힘이 들었다. 아이들 아빠가 순하고 착한 사람이라 그래도 아내를 잘 보호하고 무슨 일만 있으면 당장에 달려온다고 하는 말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며칠 후 동네 슈퍼에서 세째가 그 아이의 아빠라고 가르쳐주는데 보니까 어찌나 마른 사람이던지 그 사람의 삶의 어려움이 전해지는 듯 했다. 원래 마른 사람일 수도 있을텐데 미리 들은 얘기 탓인지 얼마나 마음고생을 해서 몸이 저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칸으로 가려는데 귀에 익은 한국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이니 누군가가 그 가정에 대해 얘기하는 소리였다. 한국사람이 많지 않은 동네이니 조금만 얘기를 해도 선명하게 들리게 되어있다. 엄마가 그렇고 그렇다 하니 아이들끼리 놀리는 것도 자제를 해야겠다는 얘기였다. 그 아이들도 그런 부분이 있을 수가 있어서 걱정스러워 같이 놀리지 못하겠다는 얘기도 있었다. 당장에라도 가서 저쪽에 그 애 아빠가 다 들을 수 있으니 그만하라고 소리라도 질러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지나가야했다.  

제 딴에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집에 올 때까지 아무 말도 없던 세째가 물어온다.
"엄마, 아까 그 아줌마 말처럼 나도 XX 랑 놀면 안되요? XX 는 자기 집으로는 절대로 애들 안 데려가요."
물어오는 아이는 우리 집 세째인데 왜 나의 눈에는 친구 집에서 가슴에 멍이 들어 나오던 내 모습과 인적 없는 골목에서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남편의 모습이 겹쳐질까.
"아니야, 그렇게 힘든 아이인데 다들 안 놀아줘도 너는 꼭 놀아야지. 그 집 엄마가 요즘 얼마나 안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힘든가보다. 그러니까 친구를 못 데려가나 보지. 그러면 우리 집으로 오라고 그러자. 그리고 아빠랑 연락 안되는데 엄마한테 무슨 일 있으면 우리 집으로 전화하라고 해. XX 이가 네 친구지 그 엄마가 네 친구인 게 아니잖아. 힘든 일 있을 때 친구끼리 도와줘야지."
큰 아이까지 같이 불러 일러주니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한다.
"엄마도 어른인데...어른이라고 뭐든지 다 잘 아는 건 아니야. 어떤 때는 어른이 애들보다 못할 때도 많단다. 엄마 아빠도 그렇잖아. 너희들보다 더 현명하지 못할 때도 정말로 많이 있잖아."
"엄마, 고마워요. 나는 엄마가 같이 놀지 말라고 할까봐 걱정이 많이 됐어요. 나는 XX 이랑 많이 친하고 싶거든요."

나도 부모인데 내 자식보다 더 중한 남의 자식은 없다. 하지만 내 자식보다 더 중하지는 않을지라도, 내 자식보다 한 단만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준다 해도 그 아이들이 상처받을 일은 덜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닌 제 부모로 인해 받은 상처도 버거운 아이들에게 남들까지 하나 둘씩 상처를 더 얹어준다면 이 아이들이 갈 곳은 어디일까. 내 가정을 잘 지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내 주위를 돌아보고 휘청거리는 가정이 있을 때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다. 그 손에 무엇이 묻어있을까 두려워 내 손을 거둬들이면 그 순간은 지나갈지라도 그 모습을 내 아이가 스폰지처럼 흡수하고 자신의 삶에 받아들일 것이다. 그저 내 아이를 잘 지켜보고 내 아이에게는 좋은 것만 보여주고 좋은 것만 들려주겠다는 부모의 이기심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한 쪽은 북극까지 가지 않아도 빙산이 쌓여있다.  

얼마 후 세째의 학교에 갈 일이 있어 들렀더니 마침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었다. 운동장 가득히 수많은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처럼 마음을 흐믓하게 하는 광경이 있을까. 그 사이로 내 아이와 친구라는 아이가 다른 몇 몇 아이들과 함께 한껏 뛰놀고 있었다. 어떤 하루 하루를 보내고 지낼까. 엄마를 돌보느라 남들보다 몇 배의 속도로 어른이 되어가는 건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보면서 엄마 마음은 또 얼마나 미안하고 아플까.

결손가정이라는 참으로 차갑고 냉랭한 단어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가슴을 두 번 세번 지금 이 순간에도 찢으며 가는지 우리는 모르고 살아간다. 무언가 부족한 가정이라는 의미의 그 말이 사실은 부모의 부족함일 뿐이니 아이들은 그 속에서 오히려 꽉 찰 수도 있다는 것을 믿어줄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래본다.

결손가정 출신의 남편과 내가 만들어낸 우리 가정도 발 한 쪽만 잘못 딛으면 꼭같은 결손가정이 될 수많은 위기를 지나왔고 앞으로도 수없이 지나갈 것이다. 정상 가정과 아닌 가정의 차이가 사실은 눈빛 하나, 마음 한 조각, 그리고 동전 한닢이라는 생각이다. 절대적으로 정상인 사람이 없듯이 절대적으로 건강하기만 한 가정이 어디 있으랴. 무늬라도 약간의 빛깔이라도 잠시 한 순간이라도 정상의 기미가 있으면 다행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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