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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울타리 세우기

| 조회수 : 1,781 | 추천수 : 121
작성일 : 2009-09-28 11:44:48
어느 아동심리학자가 한 아이를 데리고 벌판에 나가서 이 벌판 어디로 가도 좋으니 네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네가 좋아하는 놀이를 실컷 하며 놀으라고 하고 아이의 반응을 관찰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아이는 안절부절하며 자기가 서 있던 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이를 중심으로 지름 2 미터 정도의 원을 그리고 절대로 이 원 밖으로 나와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단단히 준 뒤 그 안에서만 놀게 해 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오히려 안정된 모습을 보이며 그 원 안에서 잘 놀더란다. 가끔씩 원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도 한 번씩 했지만 안된다고 말해주면 오히려 재미있어죽겠다는 웃음을 웃으며 원 안으로 들어가 다시 놀이에 전념하고 그러다가 또 무료해지면 원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를 한번씩 해보고 하는 식의 반복이었다.

아이들은 무원칙과 자유방임의 훈육환경보다는 일정한 경계선을 정해주고 그 안에서 세워진 원칙들을 기반으로 키워갈 때 가장 바람직하게 자란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실제로 미국에서 십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부모가 아이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었을 때 아이들이 가장 외로움을 느끼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부모의 구속이 싫으면서도 그 안에서 오히려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부모에게 도전하고 시험하고 한계선을 넓히고자 애를 쓴다.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 자체가 어쩌면 아이들에게 한번 정해진 울타리를 존중하게 만드는 일을 가르치는 작업이가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 투쟁하기 위해 그 울타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를 올바르게 훈육하기 위해서 한번 정해진 원칙들을 일관성있게 지켜나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그 울타리를 벗어나고자 할 때 부모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로 하여금 스스로 그 울타리의 담장을 넘어가서 담장 밖의 세상을 경험하게 하고 과연 그것이 잘한 것이었는지를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얻게 되는 결과를 조금도 피함이 없이 다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다.

선택의 원리는 인과응보이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날 것이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날 것이다.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고 팥을 심었는데 콩이 나오는 식의 요행은 어쩌다 한 번은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 확률은 높지 않다. 그 낮은 확률의 요행만 믿고 안일한 선택을 한다면 하루 하루가 풍전등화같은 삶이 되는 것이다. 이 간단하고도 명료한 원칙을 빨리 깨달을수록 아이는 올바른 방향으로 자라나게 된다.

우선 울타리 안에서 원칙을 중시하며 살 것인지 끊임없이 울타리 밖으로 벗어날 기회만을 엿보며 새로운 선택을 할 지의 선택은 아이 자신이 해야 한다. 울타리 밖으로 벗어날 선택을 했다면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불이익도 책임질 수 있는 자세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이 단계에서 부모는 절대로 아이 대신 선택을 해 주어서도 안되고 아이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대신 책임져주는 일은 더욱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옆에서 지켜보기에 안타깝고 가슴이 타도 아이가 스스로 배워나가는 과정을 존중해주는 'tough love' 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필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책을 읽고 독서 감상문을 2 주 동안 해서 제출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단순히 책을 읽고 느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읽은 책을 선전하는 문구와 선전용 그림까지 그려야 했기 때문에 하룻밤에 다 해치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이삼일 정도 숙제에 매달리는 듯 하더니 그 뒤부터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한 두번 아이에게 숙제가 얼마나 진척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으로 나의 관심을 표현하고 나서 그 이후부터는 의도적으로 숙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숙제를 제출하기 바로 전날, 저녁식사가 끝나고 나서부터 아이는 몸이 달기 시작했다. 제 딴에도 그 다음날까지 다 할 수 있는 양이 아니라는 판단이 되었고 온갖 후회를 다 늘어놓으며 제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숙제를 했다. 밤 10시가 다 되었는데 내 방의 문을 두드리더니 딱풀이 다 떨어져서 숙제를 끝마칠 수가 없으니 지금 가서 딱풀을 사다달라고 했다. 미국은 모든 상점들이 대부분 9시 정도면 문을 닫기 때문에 9시 이후에 물건을 사려면 좀 먼 곳까지 운전을 하고 나가야 한다. 아이의 얘기를 들으며 잠깐 동안 갈등을 했다.

지금 나가서 딱풀을 사다 준다면 아이가 밤을 새워서라도 숙제를 다 마치기는 하겠지만 시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당일치기로 숙제를 하는 버릇은 그대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고 거절을 했다. 아이는 내가 딱풀을 사러가지 않겠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러면 자기는 절대로 숙제를 다할 수 없고 그건 엄마 탓이라고 억울해 했다.  

화가 나려는 것을 심호흡을 한번 하고 꾹 참고 말했다.
"이 숙제가 언제 나온 거지?"
"이주일 전에요."
"그럼 넌 이주일 전부터 네 숙제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았겠구나."
"그렇지만 그때는 딱풀이 이렇게 많이 필요할 줄 몰랐어요."
"혹시 어제나 그저께 정도에 네 풀을 검사해볼 수는 없었을까?"
예상대로 아이는 더이상 대답할 구실을 찾지 못했다.
"엄마는 네가 2주일간 지속해 온 선택을 존중해줄거야. 숙제를 매일 조금씩 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너 스스로 한 거잖아. 이 숙제는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명시되어 있는 숙제가 아니었어. 옳던 그르던 네가 한 선택은 네가 책임을 져야 한단다. 지금 엄마와 네가 이것을 분명히 해놓지 않으면 엄마는 네가 30살이 되어 직장에 다닐 때에도 너희 회사 결제서류를 다 작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대신 수집해주는 엄마가 되고야 말거야."

다음날 아이는 완성되지 못한 숙제를 가지고 등교했고 물론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자존심이 상해서 제가 직접 말한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과의 통화를 통해 그 미완성 숙제로 인해 아이가 겪은 '불이익'의 내용은 알아낼 수 있었다. 시간관리 미숙이었기 때문에 그 다음번 숙제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적은 시간 밖에는 받지 못하는 조치가 취해졌다고 한다.

그날 이후 큰 아이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숙제를 다 못해가거나 제 시간에 마치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 다른 일이 있어서 그 날 다 못 마칠 때에는 그 다음날 스스로 자명종 시계를 맞춰 놓고 혼자 일어나서라도 다 마친다. 자신의 숙제는 자신과 학교와의 약속이지 엄마와 학교의 약속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세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느라고 교실에 갔더니 잠옷을 입고 학교에 온 아이가 있었다. 의아한 생각에 유심히 보았더니 시무룩한 얼굴로 얼굴이 벌개져서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 그애 엄마와 마주쳤을 때 아이 일을 물었더니 빙긋이 웃으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아이가 아침마다 하도 유치원 갈 준비를 안하고 칭얼대기만 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물론 선생님과 미리 얘기가 있었기에 선생님이 미리 당황할 일은 없었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기 싫으면 그냥 입던 옷 그대로 입고 가자고 했더니 아이는 아마도 설마 우리 엄마가 그러랴 싶어 잠옷 바람에 따라 나선 모양이었다. 잠옷을 입고서 갈래 아니면 교복으로 갈아입고 갈래 했더니 천연덕스럽게 잠옷을 입고 가겠다고 하더란다. 그날 이후 그 아이는 한번도 옷갈아입는 일로 엄마를 힘들게 하는 일이 없었다고 해서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난다.

부모가 아이의 모든 것을 다 책임져 줄 수는 없다. 대신 선택하고 대신 인생을 살아줄 수도 없다. 어느 시기까지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부모가 자식보다 먼저 떠나야 하기 때문에 영원히 모든 것을 대신해주고 감싸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아이가 귀할수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위한 최고의 선물은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그래야 저승길을 가면서도 돌아보고 싶을만큼 소중한 내 아이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다시 한번 다져본다.  

출처: The Indescribable Dong's Garden / 꽃밭에서 / http://blog.naver.com/kmchoi84/90019438232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동경미
    '09.9.29 2:14 PM

    르네상스 님, 오해가 있으신가 봐요 ^^ 별표는 제가 붙인 것이 아니고 언젠가부터 관리자 님이 붙여주시기 시작했어요. 언제부터인지 찾아보니 글 번호 2913 이 처음 시작한 글인데 그 글 댓글에 관리자님이 공지를 하셨네요. 불쾌하셨다면 관리자님께 따로 연락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공연히 쑥스럽네요^^

  • 2. 파란사과
    '09.9.29 11:51 PM

    너무나 좋은 글입니다.
    결혼을 하고 5년이 지나서 어렵게 아이를 가져서 지금 큰애가 5살인데요.

    어렵게 가져서 그런지 너무 나 소중해선지 노심초사하게 되고 아이에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제자신이 불안 했어요. 하지만.....

    님의 글 정말 많은 도움이 되네요....님은 저의 스승입니다.

  • 3. serendipity
    '09.9.30 3:02 PM

    강한 어머니시네요. ^^
    님의 글 많이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5세 여아가 있는데... 정서적으로 저에게 많이 의지를 하는 편이라 요즘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는 중인데... 경험과 함께 알려주시니.... 글을 읽을수록 제 육아의 touchstone이 되고 있습니다. ^^*

  • 4. 동경미
    '09.10.1 12:43 PM

    파란사과 님, 귀할수록 내 마음으로 해주고 싶은 것의 꼭 반만 주라고 하더군요. 다 주면 아이가 그걸 감당을 못한다는 얘기이지요. 엄마가 노심초사하시면 아이가 다 안답니다. 아이들 아무리 어려도 정말 눈치가 빤하거든요. 5살이면 자기는 나름대로 세상을 많이 안다고 생각할걸요 ^^

    Serendipity 님, 아이가 많으니 별 수 없이 강해지나 봅니다. 목소리 톤도 젊었을 때보다 낮아졌더군요 ^^ 5살 딸래미, 상상만 해도 이쁘고 귀여울 나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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