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전쟁

[동경미]

아이가 있는 집은 어느 집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아이를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들게 하는 일로 밤마다 시끄러워지는 일이 종종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이 넷이 저마다 자는 시간이 다른 혼란의 연속이었다. 간신히 한 아이를 재웠다 싶어 다른 녀석이 우리 방으로 베개를 들고 찾아오고, 으름장을 놓아 쫓아보내고 나면 소란스러움에 잠이 깬 신생아가 울어대는 전쟁을 밤마다 치뤄야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일하는 엄마로서 내가 느꼈던 자책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종일 일하느라고 못 만났다가 퇴근길에 찾아서 데리고 돌아오는데, 집에 와서 겨우 한 두시간 얼굴을 보고는 들어가 자라고 하려니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과 안쓰러움이 생겨났다. 부지런히 저녁을 해먹이고 씻기고 책이라도 몇권 읽어주다 보면 원래 마음에 정해두었던 9시가 되었다. 가서 자라고 하면 조금이라도 더 엄마 품에 있어보려고 갖가지 핑계를 대며 버티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의 마지노선은 어김없이 무너지곤 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구슬르고 얼러서 아이들을 간신히 재우고 나면 남편과의 시간은 커녕 저녁식사 뒷정리에 다른 밀린 집안 일을 마치다가 밤 12시가 되어야 일이 끝이 났다. 몸이 피곤하니 마음도 여유가 없어지고 남편과 따뜻한 얘기를 나누며 하루 일과를 얘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시간이 갈수록 남편과도 불만이 쌓여가는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딱히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큰 아이가 입학한 유치원이 중학교까지 함께 있는 재단이었는데 아침 등교시간이 8시였다. 9시까지 놀이방에 가던 일정에 익숙했던 큰 아이를 8시까지 유치원에 보내고 둘째와 세째를 9시까지 놀이방에 맡기고 출근을 하려니 아침 시간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아침 5시 반부터 서둘러도 화장을 제대로 못해서 아이들을 내려주고 출근 길에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막간을 이용해서 화장을 하며 회사에 가기 일쑤였다.

어느 날 나처럼 일을 하는 다른 엄마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부부를 위한 시간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자기 부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저녁 아홉시면 재우고 아홉시 반정도부터는 부부 간에 함께 차도 마시고 얘기도 하면서 저녁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경우에 따라 남편이 바쁠 때에는 그 시간을 자기만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한다고도 했다. 책도 읽고 십자수도 하고 다음 날을 계획하기도 하고...아이들이 아홉시면 잠자리에 든다는 얘기는 내게는 너무나 부러운 얘기였고 부부 만의 시간, 혼자만의 시간은 더욱 그랬다. 그날 받은 도전을 계기로 남편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우리집도 밤마다 벌어지는 전쟁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아이들을 제 시간에 재우는 일은 단순히 아이들을 올바르게 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정의 중심이 아이가 아니라 부부라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이다. 아이들이 늦게까지 깨어있는 가정일수록 부부 간의 교류가 사실상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엄마의 관심의 대부분이 아직 깨어있는 아이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남편에게 당연히 가야 할 몫의 관심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부부 간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아이에게로만 다 쏠리다 보니 남편은 뒷전이 되는 것이다.

아이를 제 시간에 재우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법칙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진 취침시간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아이의 연령에 따라 주말에는 다소의 여유를 줄 수도 있겠지만, 원칙을 지키도록 유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집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가급적이면 집 밖에 나가 있을 때에도 늘 같은 시간을 유지할 수 있다면 금상첨하이다. 표면적으로는 저항하겠지만 아이들은 정해진 규율 안에서 자라날 때 가장 안정감을 얻는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의 경우, 저녁 8시 30분이면 아이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치게 했다. 저녁식사 후 목욕을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다음 날의 가방을 미리 챙겨놓고 자기 방을 말끔히 치워놓고나서 자기 침대에서 기다린다. 방을 같이 쓰는 큰 아이와 둘째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숙제가 늘어나면서 취침시간이 조정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 8시 30분에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 취침준비를 마쳐야 한다. 세째와 네째도 방을 같이 쓰는데 나이가 어렸을 때에는 방청소와 취침준비를 엄마가 조금씩 도와 줄 때도 있었다.

준비가 끝나면 엄마와 아빠가 순번을 정해 아이들의 방마다 가서 동화책과 성경을 읽어준다. 그 과정에서 그날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도 하고 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도 해준다. 방마다 이 삼십분 정도 소요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매우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분주한 하루를 마치고 엄마 아빠와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이들의 마음을 가라앉혀주고 그 날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차분하게 들어주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같이 시간을 보낼 때에 주의할 점은 절대로 아이 곁에 눕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친밀감을 주겠다는 명목 하에 아이 곁에 눕다보면 엄마도 꼭같이 피곤한 하루를 보냈기에 종종 그대로 잠이 들어버리는 일이 생긴다. 아이가 아직 잠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가 아이 침대에서 잠이 들어버리는 일이 습관처럼 굳어져버리면 원래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 1부 순서에서 아이를 편안한 분위기에서 재우고 나와서 남편과의 시간(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2부 순서를 잊어서는 안된다.

때때로 이렇게 갖은 노력을 다하고 양 볼에 입맞춤까지 해주고 나왔는데도 잠을 못 이루고 깨어나 엄마 아빠의 방으로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을 다시 잠자리로 돌려보낼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절대로 조명도 높이지 말고 엄마 아빠가 흥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몇번을 반복해서 아이를 돌려보내더라도 결코 아이가 보는 앞에서 화를 내며 꾸짖지 말아야 한다. 야단 맞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잠이 다 깨어버리고 오히려 감정이 격앙되어 잠들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조용한 목소리로 타일러서 가급적이면 최소한의 시간 내에 아이를 제 방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아이가 제 방으로 갈 때에도 절대로 함께 가지 말아야 한다. 방에 데려다주겠다고 함께 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곁에 있어달라고 할 것이고 자기가 잠이 들 때까지 있어달라고 할 것이다. 그 요구를 다 들어주고 곁에서 잠들 때를 기다리다보면 한도 끝도 없이 이것저것 다른 요구가 나온다.

많은 엄마들이 이 과정에서 감정조절이 어렵고 흥분해서 결국은 소리를 지르는 상황으로 가게 된다. 나의 약한 점을 빨리 인정하고 피해갈수록 아이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아이가 제 방까지 가달라고 할 때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하고(물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관성있게 예외를 만들지 않다보면 아이는 점차적으로 엄마의 원칙에 적응하게 된다.

우리집 네째는 만 세살이 넘도록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곤 했다. 그 모든 방법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와서 "물 주세요", "쉬할래요", "깜깜하니까 무서워요","불켜고 잘래요", "엄마 침대에서 잘래요" 등등의 핑계로 어떻게 해서든지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수차례에 걸친 협박과 꾸지람과 경우에 따라서는 매도 들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생각다 못해 동화책을 읽어주고 기도를 마치고 나면 아예 아이 방문 앞에 의자를 넣고 책 한권을 들고 앉아 독서를 했다. 방문을 열고 나오는 일 자체가 허락되지 않았고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경우에는 함께 가서 빨리 일을 보고 돌아가게 했다. 물도 한 번 외에는 주지 않았다. 고집이 있어서 그랬는지 2 주 정도의 신경전을 하더니 나중에는 언니들과 같이 순순히 잠자리에 들어주었다.

어떤 가정에서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도록 부부와 한 침대에서 잔다고도 한다. 의학적 연구에 따르면 큰 아이들은 물론이고, 아주 어린 신생아들도 부모와 한 침대를 쓸 경우에는 깊은 잠이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연결되어 수면장애 (Sleep Disorder) 까지 가지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를 한 침대에 재울 경우에 부부 간의 친밀한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 가운데 두고 잔다면 당연히 부부 생활은 어려운 얘기가 될 것이고 남편이 터놓고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 사이에 남편의 불만이 쌓여갈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가정의 중심은 아이가 아닌 부부라는 것을 아이가 어려서부터 마음에 새기고 행동에 옮기지 않는다면 당장은 아이에게 유익한 것처럼 보여도 멀리 보았을 때에는 부부 간의 친밀감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는 부모가 된다.

갖은 수를 다 써서 아이를 자게 하고 혼자만의 시간이나 남편과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는 것에 왠지 죄책감이 든다면 이렇게 생각하자.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엄마가 아이에게까지 전해질만큼 행복하려면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정화될 시간이 분명히 필요하다. 그리고 비록 짧은 시간이라도 남편과의 시간을 통해 결혼 생활이 건강하게 서 있는 엄마일수록 행복을 느낄 확률이 높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아동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부모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가장 첫번째 항목이 먹는 것과 자는 것이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먹는 것과 자는 것에 관해서 아이와의 전쟁에서 이겨내지 못하면 아이를 기르는 내내 아이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먹는 것과 자는 것으로 부모를 힘들게 하지 않는 아이들일수록 유년기도 수월하고 사춘기는 물론이고 청년기까지 전반적으로 부모와 크게 맞서는 일이 덜하다는 통계이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위로 세 아이는 중고생이니 취침 시간을 제한할 수 없게 학업을 위한 각자의 일정이 있고, 매일 밤 최소한 한 아이는 우리 부부가 다 잠자리에 들고 난 뒤까지도 불을 켜고 공부하다가 아침에도 우리보다 더 일찍부터 일어나는 새로운 하루 일정의 생활이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만이 유일하게 언니들이 남아 공부하는 뒤켠으로 유유히 걸어가 9시에 잠들어주는 착한 어린이로 남아있다. 언니들이 어린 시절 그렇게 오랫동안 치뤘던 전쟁을 막내는 보고 들은 경험으로 가뿐하게 포기하고 순순히 잠자리에 들어주니 얼마나 수월하고 편한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남편과 함께 이 방 저 방 아이들 방을 넘나들며 어떻게 해서든 빨리 재우고 거실에서 만나자는 눈짓을 하던 그 때가 그리워지기도 하니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나 보다.

출저: The Indescribable dong's Garden / 꽃밭에서 / http://blog.naver.com/kmchoi84/90019463629

[앙칼진마눌]

저는 아이들이 유치원생과 5살이라서 좀 일찍 재웁니다
아이들이 어렸을때부터 낮잠도 전혀 안자는 터라...저녁에만은 저만의 자유시간도 갖고 동경미님 글속에 있는 내용처럼 부부만의 못했던 이야기나 술한잔...등등 일종의 퇴근이죠 ^^
큰아이는 잠자리까지 완전하게 독립했는데 둘째는 아직 형편상 같이 자고 있어요
큰아이는 자기 방이 생긴다는 기쁨에 흔쾌히 독립을 했는데 둘째는 어쩔가 싶어요
막내라고 이뻐라면해서 독립시키면 잘될까 싶고 고민했는데...글을 읽고 있으니 해답을 얻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

[동경미]

앙칼진 마눌 님, 아이들 일찍 재우고 조용한 밤에 한번이라도 자기 시간 가져보신 분들은 그 맛을 못 잊지요.^^ 집안 일을 하더라도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수월하니까요. 아이에게도 일찍 자는 버릇만큼 평생을 좌우하는 버릇은 없습니다. 요즘 아이들 엄마 아빠랑 같이 연속극 끝날 때까지 늦게까지 같이 다 보고 잔다는 말 듣고 걱정스럽더군요. 큰 아이를 통해 경험해보셨으니 둘째도 잘 하시리라 믿어요. 아이들의 독립심의 시작이 잠자리부터라고 합니다.

[하루미]

저도 어려서 부터 실천하고 있어요...9시에 재우는거...
동경미니께서 언급하신 장점외에도 아침에 전쟁을 치루지 않아도 되니 너무 좋아요..
일찍일어나니 충분히 식사하고 책도 읽고 놀다가 8시경에 학교로 출발하니 지각이나 아침식사를 못하는 경우는 없구요...
아이가 여유있게 학교에 가서 그만큼 오전수업에 집중력도 높을수 있구요...
저녁시간에 부모가 좀더 여유로워지니 아이에게 좀더 여러면으로 도움이 되는것 같아요...

제가 읽는 내용에서는 타이머를 준비해서 불가학력적인 상황에서는 타이머를 사용해서 저녁취침시간을 늘리고 시간이 되면 들여보내라는 내용이 있었어요...

제가 말하는것보다 타이머가 울리면 아이에게 그게 더 설득력이 있더군요...

[개골]

저도 일찍 재우려 노력하는데 같이 누워서 지내다보니 정말 자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특히나 맞벌이다 보니 피곤하여서~~
오늘부터는 같이 눕지말고 재우기만 해야 겠어요
좋은 정보 항상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