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엄마는 수험생

| 조회수 : 1,740 | 추천수 : 114
작성일 : 2009-09-26 01:46:43
아이들 넷을 기르면서 내가 꼭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이 있다면 공부로 부담을 주지 말자는 것이다. 미국도 요새는 동양에서 온 극성 엄마들은 한국 아이들 못지 않게 아이들의 일정을 꽉 채운다. 일 년에 한 번 여름 방학이 끝나고 나면 모든 학부모들을 학교로 초대해서 각 과목마다 설명하고 담당 선생님들을 만나게 하는 Back to School Night 에 가면 선생님들이 농담처럼 제발 B 학점을 맞아도 너무들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고등학교가 4년으로 되어있는 미국의 고등학교는 졸업 시까지 마쳐야 하는 학점이 정해져 있고 대학처럼 자기가 수강신청을 해서 자기가 필요한 과목을 듣게 되어 있다. 중학교부터는 하루 종일 한 교실에 앉아 각 과목 선생님들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과목 선생님들은 정해진 교실이 있고, 아이들이 자기 시간표대로 교실을 찾아 매 시간 이동을 한다. 같은 학교에 다녀도 서로의 실력에 따라 듣는 과목들이 다르니 친구들끼리도 점심 먹을 때에나 얼굴을 마주 하는 정도이다. 이미 중학교부터는 수학의 우열반이 철저하게 나뉘어져 고등학교에 오면 심한 경우에는 세 학년이나 서로 차이가 나는 아이들이 같은 과목을 듣는 데 되기도 한다. 그래도 한편 신기한 것은 실력에 따라 차별을 두어 수업을 들으면서도 그다지 심한 열등감을 느끼는 것같아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유치원에 갈 나이 정도만 되면 아이들을 앉혀놓고 세뇌 아닌 세뇌를 시켜왔다. 주제는 너의 인생은 나의 인생과 다르고 너의 선택은 나의 인생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외동딸이었다는 이유로 엄마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데 사십 년이 걸린 나는 내 아이들만큼은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아이들의 선택이 다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고 부모로서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하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부모가 언제까지 자식의 로드 매니저가 될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다. 아니 부모가 손을 빨리 떼어줄수록 아이는 더 잘 자란다고 나는 믿는다.  

미국의 각 도시 중 그래도 학력이 높고 한때는 소득도 높은 축에 속하고 더불어 물가도 비싸다는 실리컨 밸리에 살면서도 우리 집 아이들은 동네의 수준과 안 어울리는 충고를 엄마 아빠로부터 들으며 자라왔다. 대학은 아무나 가면 절대로 안된다. 꼭 공부를 계속 해서 나에게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도움을 줄 마음이 있는 사람만 대학을 가야 한다. 공부는 나를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대학을 가지 말아야 정말로 가야 할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대학을 나온다고 해서 꼭 좋은 직장과 수입이 보장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우리 동네처럼 이리저리 돌아봐도 박사가 수두룩하게 많은 동네에서는 박사도 전부가 아니다. 두 번 세 번 잘 생각하고 대학을 가야 한다. 엄마 아빠 친구들 중에는 대학에 안가고도 얼마든지 성공해서 잘 사는 사람들 많이 있다. 그러니 어려서부터 내 인생에 대학이 꼭 포함되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계획해라. 만일 안 가겠다고 작정했다면 이다음에 커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도 떳떳하게 대할 수 있는 자신감도 같이 계획해야 한다. 돈이나 학벌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나에게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만일 대학을 반드시 가야겠다면 설사 대학을 나와 별 볼일이 없어져도 실망하고 원망하지 않을 각오도 포함해야 한다. 남들에게 도움이 될 공부를 해야 한다.

십여 년이 넘게 귀에 못이 박히게 아이들에게 읊어주었더니 막상 저희들이 들을 때에는 뾰로퉁해서 들으면서 친구들에게는 마치 자기들이 도를 닦은 듯이 그대로 말해주는 모습을 종종 본다. 물론 그 말을 우리 엄마가 했다는 얘기는 쏙 빼고 자기가 오랜 세월에 걸쳐 깨달은 듯이 인생을 통달한 듯이 얘기하는 걸 보면 나름대로 수긍이 되는 부분도 있나 보다.

시험 때가 되면 나는 오히려 다른 때보다 일찍 자라고 종용한다. 시험 때에만 하는 공부는 오직 시험을 위한 공부이고 시험이 끝나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공부는 미리 미리 복습하면서 다 해두었어야 하는 것이고 시험 때에는 일찍 자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만일 공부를 제대로 안했다는 이유로 조금만 더 있다 자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에도 예외란 없고 불을 다 꺼서 억지로라도 잠자리에 들게 한다. 물론 공부 하나도 안한 마음에 잠이 제대로 올 리가 없다. 자는 둥 마는 둥 수심이 가득해서 집을 나서며 이 모든 게 엄마 탓이라고 원망을 퍼부으며 나가기도 한다. 실제로 전날 밤에라도 공부를 했으면 조금이라도 나았을 것을 일찍 자서 오히려 성적이 더 내려간 시험들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차라리 지금 이 순간 아직 어렸을 때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가정과 학교라는 안전한 환경에서 겪으면 후에 어른이 되어서 당할 수많은 난감한 순간들을 미리 피해갈 능력이 생긴다도 믿는다.

물론 나도 아이들 성적이 올라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예상 외로 떨어지면 화가 치밀기도 하는 너무나 평범한 엄마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성적이 아니라 아이들이 평생을 살아가는 기본 자세이다. 공부를 계속하든 다른 쪽으로 방향을 잡든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갈 것인지 가장 기본적인 틀은 지금 이 순간 이 아이들을 양육하는 책임을 맡은 나와 남편이 도와주지 않으면 제대로 잡혀지지 않는 것이다. 성적은 한 순간이지만 삶의 자세는 평생을 가지고 가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A 학점을 받아온다고 해서 아이의 인생 전체가 A 학점이 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년에 로스쿨 입학시험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에게 선포(?)를 했다.
"이제부터는 엄마는 엄마 공부가 일순위로 중요해. 각자 자기 공부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 돼. 공부 채근은 지금까지도 안해왔지만 앞으로는 더 못할 거야."
"엄마 나 고등학생이에요. 조금 있으면 대학 가야하는데...내가 일순위 아닌가?"
작년 가을 고등학교에 입학한 큰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야. 너는 젊으니까 조금 늦게 가도 되고 실제로 대학 늦게 가든 안가든 나중에 나이 들어서보면 그게 그리 큰 장애물이 안될 수도 있어. 그런데 엄마는 정말 늦게 시작하는 거니까 지금 아니면 나중이란 없는 거잖아. 그러니 엄마 공부가 일순위야."

늦게라도 나의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 반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뒤늦게라도 꿈을 다 이루지는 못해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역 심리학이라던가. 거꾸로 말해서 효과를 얻는다는. 엄마가 공부하라 말하지 않아도 대학에 가라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위기감도 느끼고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의 말이었는데 아이들은 얼마나 알아들었을까가 고민도 되었다.

주경야독으로 일하면서 시험을 준비하려니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일하면서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만큼의 영어실력이지만 로스쿨 입시 문제는 역부족으로 느껴질만큼 힘에 부쳤다.
지금 이 순간 나와 같이 이 시험을 준비하는 수많은 젊은 아이들은 기운이 펄펄 넘치며 밤을 새고 낮에도 집안 일이나 직장, 육아등에 신경 안쓰며 공부만 할텐데 내가 이렇게 공부해서 될까, 하고 미리부터 좌절이 밀려오는데 큰 아이가 내 어깨를 두드려주며 위로를 한다.
"엄마, 걱정마세요. 엄마랑 경쟁하는 젊은 애들은 오히려 연애하느라고 엄마만큼 공부 못해요. 엄마보다 시간이 더 부족할지도 몰라요."
듣고보니 또 그럴 것도 같아서 병아리 모이만큼의 용기가 또 생겼다.
다른 집은 애들이 공부하고 엄마는 간식을 챙겨준다는데 우리 집은 엄마가 공부하고 아이들이 번갈아 엄마 커피며 간식이며 챙겨주고 틈틈이 방문을 열어보고 잘 되어가냐고 물어주었다.

집안에 수험생이 있으면 온 가족이 다 까치발을 들고 공부 시중을 들듯이 우리 가족은 작년 한 해를 나의 시험 시중을 드느라 TV 시청도 줄이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책만 들고 지나보냈다. 내가 TV 를 보고 앉아있으면 엄마 지금 이러고 잇으면 어떡하냐 빨리 들어가서 공부 좀 하라고 등을 떠밀어 공부를 시켜 준 덕분에 내년부터는 원하던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은 우리 아이들의 덕분이다.

"엄마 이제 시험 끝났으니 우리도 다 놀아도 되지요?"
"아니야, 이제 학교 시작하면 밤을 새도 모자르대."
아예 꿈도 꾸지 말라고 휴식을 즐기고 싶은 세째에게 둘째가 못을 박는다.
"엄마도 엄마고 이제는 나도 수험생이야!"
엄마에게 밀려난 큰 아이가 덧붙이며 관심을 가져달라고 사정을 한다.
"언니는 그냥 대학교잖아. 엄마가 더 바쁠 것같아."
"아, 난 맨날 이등인 거야?"
큰 아이의 절규에 모두들 웃음보가 터졌다.

대학 은사이신 황순원 선생님이 아드님 얘기를 하시면서 아들이 학창 시절 공부를 하면서 항상 아버지 서재에 불이 꺼질 때가지 공부를 했다고 하셨다. 대학 시절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이다음에 가정을 꾸리면 내 아이들보다 더 늦게까지 공부하는 엄마가 되면 좋겠다고 가슴에 새겼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몰랐었다. 지난 몇 주간을 웅변대회 원고를 준비해야 한다고 밤을 새다시피하는 큰 아이보다 날마다 먼저 잠자리에 들면서 선생님 말씀이 또 생각나서 마음이 무거웠다.
"공부 너무 열심히 하지 마. 건강이 더 중요한거야. 대회 나가서 상 못받아도 괜찮아. 난 그런 대회 못 나가보고 컸는데 너는 엄마보다 몇 배나 대단해. 너무 피곤하면 대충만 준비하고 자야 되는 거야. 다 잘 살아보자고 하는 건데 죽을만큼 하면 안돼."
피곤이 묻어나는 딸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엄마보다 잘 해보려구! 우리 엄마는 마흔 다섯에 로스쿨 간다는데 나 대학도 못가면 어쩌라고!"
어느 새 컸다고 농담으로 받아넘길 줄도 아는 큰 아이가 대견하고 고마워서 잠자리에 들어서도 한동안을 뒤척였다.
"나 학교 들어가서 공부 잘 못하고 못 따라가면 어쩌지? 우리 애들이랑 당신이랑 다 실망시키면 어쩌지?"
"실망 안해. 당신 그 나이에 입학한 걸로도 큰 일 한거야. 졸업까지 한다면 기적인 거고."
위로인지 격려인지 모를 얘기를 하며 먼저 잠이 든 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딸아이가 밤새 두드리는 컴퓨터 자판 소리를 들으며 웬지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호야
    '09.9.27 9:10 AM

    항상 좋은글 감사하게 읽습니다

    오늘더 어김없이 자책하게 만듭니다

    중간고사가 코 앞이라 큰 아이 오늘도 학원 가는데 다녀오면 바스라지게 안아 줄 겁니다.

  • 2. 동경미
    '09.9.29 2:32 AM

    호야 님, 큰 아이 안아주세요.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듣기만 해도 너무나 애처로워요. 입시제도가 변하든지 어던 다른 대책이 있어야 할텐데 저 이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공부에 눌려 시들시들한 모습이 참 안타깝네요. 저도 오늘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얘기를 예로 들면서 공부하라고 했지요 ^^;;;

  • 3. 레이크 뷰
    '09.9.29 5:19 AM

    학교 졸업한지 10년 만에 다시 약대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는 킨더맘입니다.
    제 커리어도 커리어지만,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아이가 좀 더 공부를 쉽게(?)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저희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려서 경미님 따님들만큼 잘 따라주지 못할까 하는 걱정도 되구요.
    올리시는 글들 항상 감사한 맘으로 읽고 있습니다. *^^*

  • 4. 동경미
    '09.10.1 12:48 PM

    레이크 뷰님, 미국이신가 보네요. 나이 들어 공부하면 젊었을 때보다 에너지는 떨어진다고들 하는데 정말로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열정은 크다고 하네요. 엄마가 공부를 하면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닥달할 시간이 없답니다. 저도 이번에 시작하기 전에 넷째 낳고 1년 있다가 대학원에 가서 상담심리학 삭사 과정에 입학했어요. 그 때 큰 아이가 2학년이었는데 제가 전공사적 읽으려고 책상에 앉으면 자기도 읽을 책들하고 문제집 가지고 따라오더군요. 지금도 저희 큰 애가 고등학생이고 둘째 세째 중학생인데 거의 같이 공부합니다. 모녀가 아니라 무슨 동료의식이랄까...ㅎㅎ 좋은 결실 있기 바랍니다. 늦공부하는 엄마들 화이팅!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2807 밤마다 전쟁 49 동경미 2009.10.01 2,011 109
2806 이제 14개월이 되어가는 아기 책 추천 좀 해주실래요? 단행본으.. 49 uzziel 2009.09.30 2,326 128
2805 미녀와 야수 2 동경미 2009.09.30 2,371 244
2804 레고추천요.. 2 partytime 2009.09.30 1,759 144
2803 수학 과외샘 투덜이 2009.09.29 4,401 165
2802 수학선행학습이 전혀 안된 초등6 아이는 과학고 못가는지요? 1 splendido 2009.09.29 3,923 124
2801 화상영어(한달간 무료래요~) 1 똥굉이3마리 2009.09.29 1,887 200
2800 내 아이의 수호천사 3 동경미 2009.09.29 1,759 125
2799 26개월 연년생 아들 다시 변가리기 2 찬이맘 2009.09.28 1,823 141
2798 안 새는 방수팬티 추천해주세요 아이스라떼 2009.09.28 2,570 234
2797 울타리 세우기 4 동경미 2009.09.28 1,785 121
2796 유치원..한복 사입히시나요? 7 알콩 2009.09.28 2,115 106
2795 식탁의자 문의드려요~ 49 미세스구 2009.09.27 2,445 129
2794 아이들 감기 어떻게 다스리나요?? 5 랄랄라 2009.09.27 1,885 115
2793 중 1 수학 샘~ 투덜이 2009.09.27 1,806 172
2792 아이가 듣게 말하는 법, 아이가 말하게 들어주는 법 2 동경미 2009.09.27 2,539 230
2791 헤밍웨이 사회탐구랑 지식똑똑 사회탐구랑 같은가요? 4 제인 2009.09.26 2,331 119
2790 엄마는 수험생 4 동경미 2009.09.26 1,740 114
2789 장난감을 뺏는 아이 교육법 알려주세요-(절실) 3 풍경소리 2009.09.26 4,923 148
2788 럭스 블럭 안 쓰시는분 뽀글이 2009.09.25 2,551 142
2787 대안학교에 아이보내는 분 계신가요? 4 나무 2009.09.25 3,118 90
2786 결손가정의 의미 동경미 2009.09.25 2,467 249
2785 미국 베벌리 힐즈로 아이 조기 유학 보내고 싶으신분 ivory 2009.09.24 1,763 111
2784 5살 남자아이.. 요즘 부쩍 발에 쥐가난다네요. 2 졍이 2009.09.24 3,058 223
2783 건강원에서 다린 녹용 먹여도 될까요? 예지예원맘 2009.09.24 1,794 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