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전화로 말합니다.
"얘, 전기장판이 고장 났는데 이것을 어떻게 할까?"
"엄마한테 두 개 있다고 하지 않았어? 고장 났음 버려."
"이거 올케가 준 건데, 겉이 순면이라 보들보들해. 그냥 요위에 깔고 쓸까?"
"엄마가 요위에 깔고 쓸 게 없는 것도 아니잖아.
오마니.. 법정 스님도 돌아가셨구만, 뭘 고장 난 전기장판까지 끼고 살려고. 걍 버리슈."
버리라고 말하고 나서 밤에 자려고 누워 이 생각 저 생각,
내 옷장 옷들도 정리해야 하는데... 부엌살림은 또 어떻고..
그렇게 생각이 아른아른 퍼져나가다
문득 커다란 찜기 겸 냄비가 떠오릅니다.
24년 된 냄비.
내가 결혼한다니까 친구 A가 백화점 데려가서 사준 거지요.
사고 싶은 거 고르라고 해서 골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 비싼 거였어요. 그 당시에 9만원.
이제 살림에 실눈이라도 뜬 주부로서
아무리 크다 하나 속에 얇은 코팅한 양은 냄비 따위를 9만원씩 받고 팔았던
백화점 측에 분개하고
그 가격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 모르고 덥석 산 어린 시절의 내가 한심하지만
아무튼...
그 냄비를 미국까지 들고 가서 잘~썼습니다.
찜기 겸용이라 찐빵을 자주 쪄 먹었지요.
미국 살이가 워낙 손님 초대가 잦으니
거기 떡국도 끓이고, 사골국도 끓이고...
석회물이 나오는 동네라 속 코팅에 희뿌옇게 석회가 끼었지만
몇 년 후,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올 때
또 이삿짐에 넣어 왔지요.
그냥...웬만한 거 정리했는데도,
5중바닥 스텐으로 된 스페인산 튼튼한 냄비가 생겨서
석회 낀 지저분한 양은 냄비는 가볍게 정리할 수 있었는데도
그냥 들고 오게 되더라구요.
아마 A와 소식이 끊겨서 그랬나 봐요.
집안이 어렵지만 똑똑한 A는
저보다 1년 먼저 미국에 갔었어요.
장학금까지 받고 말이죠.
가자마자 한 달 만에 통화를 했는데
룸메이트가 자살을 해서 자기도 상담치료 받고 있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언제 한 번 놀러오라고, 그 냄비에 찐빵을 쪄 주겠다고 했지만
물리적인 거리는 너무도 멀었고,
장학금을 받는다 해도 그 애가 우리 집까지 비행기 타고 올만한 여유는 없었고...
몇 년 뒤 A가 학교를 옮기면서 저와는 소식이 끊겼어요.
그런데 옮긴 학교에 다른 친구 B가 있었지요.
저는 십여 년이 흘러서야 B를 만나 A 소식을 들을 수 있었어요.
논문이 잘 안되어 매우 고민하던 A가
증발해버렸다는 것....
그야말로 증발이었지요.
그 어디서도 A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고
학교 쪽에서는 기숙사 짐을 빼라고 해서
오빠가 비행기 타고 날아와 여동생의 짐을 빼갔다고 하네요.
홀어머니께는 그때까지 여동생이 없어진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1년 쯤 지났을까? 어느 날, 그 도시의 어느 거리에서
같은 학교 학생이 A인 듯한 사람을 우연히 보았대요.
승복 비슷한 회색 옷을 입은 뒷모습을.
그 거리는 밀교가 많은 곳.
왠지 느낌이 와서
‘A씨!’하고 불러봤더니
그 사람이 휙 돌아보더니
‘나, A 아닌데요?’ 하며 그냥 가 버렸다고...
B가 말합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A는 왜 그랬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지?
최윤의 '회색눈사람'이란 단편도 생각나고 그래.
특히 요새 내 몸이 나잇값하면서 시들시들하니 쇠약해지면서,
병원치레 하면서
A 걱정을 하게 된다.
A는 혹시라도 몸이 안 좋을 때 병원에 갈 수 있는 건가.
(불법 체류자가 되어 버렸으니...-_-)
왜,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 피해자의 가족들이 30 년 후에 범인이 잡힐 때
이제 마음이 정리된다고 하잖아?
A의 소식을 확실히 알기 전에
이 정리되지 않은 마음의 상태로 살게 될 거 같아.
슬픈 일."
정리....
가끔씩 살림 정리하면서도
한 번도 안 쓰는 이 양은 냄비는
치울 수가 없습니다.
정리가 안 된 관계 때문에...
A야, 네가 준 이 냄비에 찐빵을 쪄서
단팥에 호두 넣고 계피가루 뿌려
따끈따끈하게 쪄서
호호 불며 우리 함께 먹어볼 날이 있을까?
촛불 켜고 가끔 기도한다.
어디서든 건강히 있기를...
네가 있는 그곳에서
그럭저럭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