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떡쌀, 그 후
원래 일요일날 아버지가 어딜 가셔야해서 '운송'문제로 떡을 사기로 했던 건데,
서울서 두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어머니 편케 해드리자'로 결론을 내리셨다네요.
제가 외출했던 주말, 수동 방앗간에서 떡을 뽑았답니다.
엄마가 새벽을 쌀을 담가 아버지 차에 싣고 와서 뽑아놓고
여기 시골집에도 열 댓 개 내려두고 가셨네요.
그 떡을 오늘 오전에 할머니와 썰었습니다.
어젯밤 면보나 비닐을 덮어주시라는 말씀을 듣고도 깜빡 했는데
겉만 마르고 속은 아직 물렁해서 썰기가 여간 나쁜 게 아니에요.
할머니 말씀이
'보자기를 덮은 채로 말려야 속과 겉이 고루 말라 썰기가 좋단다'
하십니다.
덮어두지 않았더니 겉은 반질반질 마르고 속은 물렁거려
칼이 잘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속은 움찔움찔 움직여
모양내 썰기가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오늘 썬 것은 젯상엔 못 올리겠어요.
떡을 썰면 '꼬다리'가 나오죠.
순대에도 '꼬다리'가 있는 것처럼 가래떡을 썰면 꼬다리가 나오잖아요.
오늘 낮엔 그 꼬다리로 '할머니표 떡볶이'를 해 먹었습니다.
우리 오남매가 "할머니~, 떡볶이~!"하고 조르면 해주시는 떡볶이.
솜씨 좋다는 엄마도 떡볶이 맛은 할머니를 못 쫓아가요.
우선 육수를 조금 붓고 고추장을 풉니다.
바글바글 끓으면 떡국 꼬다리를 넣고 중간불에서 오래 끓입니다.
(떡볶이의 생명은 떡에 간이 배도록 오래 끓이는 데 있답니다)
설탕은 처음부터 넣으면 들러붙어서 나쁘니 중간에 넣으라고 하시네요.
그리고 인우둥네의 자랑!
천연 진짜 순 들기름을 넣습니다.
들기름은 오래 끓여도 향이 날아가지 않아요.
아주 부드럽고 고소한 떡볶이가 되지요.
엄마가 해주는 떡볶이엔
어묵도 들어가고 각종 야채도 넣고 때론 잡채나 고기도 들어가지만
(실험정신이 강한 엄마는 케첩도 넣어보고 간장도 넣어보고, 언젠가는 꿀도 넣어보시더군요)
고추장과 설탕, 그리고 들기름만 넣은 할머니 떡볶이보다 맛이 못해요.
이 단순한 떡볶이가 글쎄, 한 번 먹고는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또 찾게 되는,
그런 떡볶이라니깐요~!
그리고 이건 창피한 이야기인데요,
왜 할머니가 제가 쌀 씻어 방앗간 가는 것을 말리셨는지 아세요?
글쎄, 세상에~
제가 엄마만큼 정성껏 깨끗이 씻을 수 없을까봐 불안하셨기 때문이래요.
'네 어멈, 제사음식 정성들여 하는 것 하난 내가 확실히 졸업시켰다' 하시지 뭐에요.
한편으로 떡 살 궁리를 하는 것이 괜씸하시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엄마를 일솜씨를 믿고 계셨던 거지요.
저에겐 기대하는 것도 없으니 실망할 것도 없지만
엄마는 마음 속 깊이 믿으시면서도 그 기대치에 못 미치면 한없이 섭섭하셨던가봐요.
저는 거기서 괜히 깝죽대면서
어른들 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잘난척만 해댔네요.
하여간 홀시어머니와 외며느리의 오묘한 관계는,
소설이 아니라 논문을 써도 규명이 안되는,
인우둥의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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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asmine
'04.1.19 10:06 PM흐흐흐.......미스테리로 남겨두세요....
떡볶이레시피 당장 실험에 들어갑니다. 맛없으면 책임지세요....
드뎌, 띄어쓰기를 하셨네요.....님의 글, 언제 읽어도 따뜻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2. 변진희
'04.1.19 10:34 PM수동방앗간??... 혹시 남양주 수동을 말하시는건지요...
맞다면 이렇게 가까운 곳에 82식구가 있다는게 무지 반가울것 같아요...3. 무우꽃
'04.1.19 11:03 PM인우동님은 나이를 어떻게 먹었을까?
인우둥님에 대한 무우꽃의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랍니다. ^^4. 김새봄
'04.1.19 11:10 PM크크...전 할머님 맘 알겠어요.
몇일전 동서가 묵은 쌀이 있다고 떡 빼자는 말에 쌀 잘 씻어 방앗간 보내라고 하니..
방앗간에서 다 알아서 해 주는데요..하는 말에 전 내키지 않았지만
그 쌀을 우리집으로 옮기고 들러붙는 둘째를 떼어놓고 쌀 씻는 일이 엄두가 안나서
결국 그냥 방앗간에 맡기고 영 개운치 않은 떡국떡 어제 받았습니다.
그래도 뭐 넉넉하게 떡이 있으니까 기분은 부자 된 기분 입니다.
한말이면 그냥 우리집서 하겠는데 시누내꺼랑 동서내 우리꺼 해서
세말을 씻는건 별거 아닌데 그 쌀이 안좋아 조리질 할껄 생각하니..
쫌 저도 겁이 나긴 하더라구요.
인우둥님 화이팅!! 설날 정겨운 풍경도 꼭 올려 주세요.5. 김혜경
'04.1.19 11:15 PM인우둥댁 떡볶이 먹어보고 싶네요...
6. 꽃게
'04.1.19 11:50 PM제 중병중의 하나...
떡국떡 쌀은 꼭 씻어서 방앗간 가서 지켜서서 합니다.
그러면 떡 대깔이 달라요.
재작년까진 집에서 썰기도 했는데 이젠 그냥 방앗간에서 썰어와요.
그런데 요번 것은 했고 내년부턴 사먹으려해요. 시대에 맞춰서~~~7. 홍차새댁
'04.1.20 8:57 AM저희도 떡을 썰면 남는 '꼬다리'로 항상 떡복이 해먹었어요.
가래떡 빼오면 1/4는 그 자리에서 냠냠..밥은 한그릇이면 끝인데...꿀에 찍어먹는 가래떡은 어찌된 일인지...먹어도 먹어도 계속 들어가더군요. -> 미스테리죠..
그 나머지의 1/3은 떡복이용으로 길게 잘라두고, 나머지를 떡국용으로 했어요.
그리고 예전에 저희 친정에서도 떡국떡 쌀은 방앗간 보낼때, 엄마, 할머니 아니면 저....셋중에 한명이 망봤었던 기억이 아네요...10년전에 할머니 돌아가신 후엔..엄마 아니면 제가 망(?)보고..
이번 설이 결혼후 첫 설인데...몇일전에 떡복이 생각이 나서 전화드렸더니..
올해는 혼자 하기엔 벅차시다고, 농협에 주문하셨다는 말씀 들으니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딸없는 친정엄마가 왠지 애처로워 보이는것이....
홀시어머니와 외며느리의 오묘한 관계는 저희 친정의 10년전까지의 모습이라서,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인우둥님처럼 돌아가신 울 할머니 성깔 대단하셨지만, 설이나 추석 그리고 제사 음식에 대해서는 엄마한테 한마디도 못하셨죠. (그 딸내미는 그 솜씨 하나도 못이어받고..ㅠㅠ)
갑자기 십년이나 지난 옛날 생각이 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8. 최은진
'04.1.20 10:20 AM아~ 떡복기에도 들기름이라...
저 이제야 들기름맛을 알았거든요... 회사직원이 가끔 시골집에 다녀오면서 싸오는 밑반찬들은 늘 특이한 맛이 났어요...
특히 장아찌무침이나 나물류를 먹으면 진하고 느끼하지 않으면서 고소한 맛이 났거든요...
그게 시골진짜들기름... 두어달전에 들기름을 짠다길래 어렵게 두대를 부탁했죠...
피트병으로 3병 나와서 친정에 한병주고 저희집에 두병 먹고 있는데요... 그냥 맨밥에 간장과 들기름만 넣고 비벼먹어도
넘 맛있어요.... 음~~ 들기름 넣은 떡볶기.... 꼭 해먹어봐야겠네요....
저도 언젠간 홀시어머니와 외며느리의 관계가 될텐데... 그때 제가 몸소 겪고 인우둥님의 미스테리를 풀어드리지여..^^9. 인우둥
'04.1.20 6:49 PM쟈스민 언니, 책임 못집니다~ ^^ 들기름 얻으러 놀러오시면 몰라도...
무우꽃 아자씨, 인우둥은 나이를 뱃살로 먹었답니당.
김새봄 이모, 세 말... 장난 아니죠.
혜경이모, 쟈스민 언니랑 놀러오세요.
꽃게님, 아버지 임플란트 시술 들어가셨습니다. 그냥 그 병원에서요, 신경써주셔서 고맙습니다.
홍차새댁님, 저와 나눌 이야기가 많겠어요. 우리 공동연구에 들어갈까요?
최은진님, 들기름.. 정말 좋은 양념입니다. 들기름 많이 먹고 건강하세요.
마지막으로 변진희님,
남양주 수동 맞습니다.
수동면 송천리에요. 번개 함 할까요? ^^ 쪽지 주세요~!
여러부운~!
모두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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