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은 명왕성의 추수감사절이었어요.
추수감사절은 11월의 네번째 목요일, 그리고 그로부터 3주 후에는 크리스마스가 있으니 사람들은 지금부터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두고 있어요.
저희집도 시류에 편승하여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두었어요.
부지런하고 센스 넘치는 사람이었다면 바깥에 나가서 꽃을 따오거나 낙엽을 주워오거나 (해피코코님과 왕언냐*^^* 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ㅎㅎㅎ) 해서 멋진 테이블을 장식했겠지만서도...
저는 좀 많이 게으릅니다.
겸손의 말이 아니라, 꼭 해야 하는 일만 하고, 같은 일을 해도 어떡하면 조금이라도 편하게 할 수 있을지를 늘 궁리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냥 접시에 이런 거 대충 담아놓고 사진을 찍어봅니다... ㅎㅎㅎ
접시 안의 엘프가 비웃고 있네요...
어린 아이들 키우는 집에서는 요즘 한창 엘프 인형 옮기느라 밤마다 어른들이 고생하고 있겠죠?
저는 이제 졸업했어요~~
이렇게 기쁠 수가!
추수감사절 음식은 런천으로 먹기로 했어요.
제가 이 글을 쓰려고 검색하며 배웠는데요, 흔히 디너라고 하면 저녁에 잘 차려 먹는 만찬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디너는 점심에 먹기도 하고 저녁에 먹기도 한대요.
즉, 시간에 상관없이 하루 중에 가장 잘 차려 먹는 식사를 디너라고 한다고 합니다.
런천은 점심에 잘 차려 먹는 것이고, 그냥 간단하게 먹는 점심은 런치라고 한다네요.
그러니까 종합해보면...
런천을 먹은 날은 저녁식사가 서퍼가 되고,
런치를 먹은 날은 저녁식사가 디너가 된다는 거죠.
서양식 테이블 매너와 규칙은 사뭇 새롭습니다 :-)
그러고보니 며칠 전에 넷플릭스에서 본 힐빌리의 노래 영화가 생각나네요.
애팔래치아 산맥 자락 (명왕성도 그 넓은 산자락 중에 한 곳) 을 고향으로 태어나 가난과 무지를 대물림하던 집안에서 그 악순환을 깨고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한 주인공이 취업 면접을 겸한 만찬 자리에서 어지럽도록 많이 놓인 포크와 나이프 중에 뭘 써야 할지 모르겠고, 오른쪽 왼쪽에 놓인 빵과 음료 중에 어떤 것이 자기 것인지 몰라서 여자친구에게 긴급 구조 전화를 합니다.
친절하고 재치많은 여자 친구가 가르쳐줘요.
엄지랑 검지를 둥글게 붙여봐!
그러면 보일거야.
순진한 주인공은 안경 모양 손가락을 눈에 붙이고 "이러면 뭐가 보인다고? 별 것 안보이는데?" 라고 대답하죠 ㅋㅋㅋ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도 한 번 따라해 보세요 :-)
양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왼손은 영어 소문자 비, 오른손은 영어 소문자 디, 보이시나요?
비는 브레드의 첫 글자, 디는 드링크의 첫 글자.
그러니까 둥근 테이블에 앉았을 때 왼쪽의 빵과 오른쪽의 음료잔이 내 것이라는 뜻이래요.
재미있죠?
영화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만 너무 옆길로 새는 것 같으니 이만하고...
거대한 칠면조 대신에 로스트 치킨이 추수감사절 런천의 메인 요리였습니다.
으깬 감자와 그레이비 소스...
롤빵 옆에 있는 건 몽블랑님이 요청하셨던 크랜베리 소스...
그린빈 캐서롤...
코난군이 좋아하는 스터핑...
미국 고구마 요리...
이 모든 것을 제가 날재료를 구입해서 다~~~~~~~ 만들었다고 하면, 그건 다~~~~ 거짓말이라는 거 아시죠 여러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민망해서 웃는 웃음임 :-)
요즘 세상 정~말 좋더라구요!
절임배추는 없어도 이런 건 마트에서 다 팔아요.
로스트 치킨은 7천원 밖에 안하고요, 크랜베리 소스 캔은 따서 옮겨 담기만 했어도 맛은 새콤달콤 훌륭했어요.
으깬 감자는 저 박스에 담긴 가루를 그릇에 붓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셰킷셰킷 섞기만 하면 완성입니다.
박스에 담긴 사이드 요리는 오븐에 데우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고요 :-)
추수감사절 런천 차리고 먹고 설거지 (물론 식기세척기로!) 까지 다 마치는데 두 시간 밖에 안걸렸어요.
지금까지 나온 음식 사진 중에 제가 직접 요리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안타까워서, 제가 직접 만든 음식 딱 한 개만 보여드릴게요 :-)
떡갈비 입니다.
마트에서 파는 갈비살을 사왔어요.
뼈는 제거하고 큰 뭉텅이로 썰어서 포장한 것인데, 기름과 억센 힘줄을 먼저 제거합니다.
그리고 고기를 칼로 잘 다지는데, 힘줄이 잘게 잘라지도록 썰면 됩니다.
힘줄이 너무 억세어서 푸드프로세서로는 잘 갈아지지 않아요.
그리고 어차피 고기는 씹는 맛이 있어야하니, 살코기 부분은 대충 썰고, 힘줄 (? 근막? 암튼 질긴 부분) 이 잘게 잘라지도록 썰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갈비 양념은 각자 입맛에 맞게...
저는 흑설탕과 간장, 마늘, 양파, 후추, 참기름을 넣었어요.
몇 시간 양념이 배어들도록 기다렸다가 에어프라이어에 10분간 구웠어요.
김이 서려서 잘 안보이지만 맛이 아주 훌륭했어요.
이날의 손님은 저희 남편의 직장 동료 부부인데 참 재미있는 사람들이에요.
남편은 한국 컴퓨터 게임에 심취해서 집에 피씨방 수준으로 컴퓨터를 갖춰놓고 게임을 하고요 (제가 게임알못이라 무슨 게임인지는 잘...:-), 그러다보니 한국 문화에도 - 특히 음식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의 스트릿 푸드를 저보다 더 잘 꿰고 있어요.
감자가 박힌 핫도그라든지, 떡갈비를 먹어보고 싶다고 하질 않나 (저도 한 번 못먹어본 음식들 ㅎㅎㅎ), 술은 소주가 최고야! 하면서 이 날도 소주 네 병을 사가지고 왔어요.
(참고: 명왕성에서는 소주가 수입 술이라서 무척 비싸답니다 :-)
부인은 한국 드라마 광팬이라 드라마 이야기를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죠.
부모님은 대만인이고 자신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입니다.
안과의사라서 저희 가족 안경을 아주 싸게 처방해주기도 해요 :-)
한국의 포장마차 스타일로 오뎅국물은 셀프로 떠먹으라고 하고 떡볶이에 김말이와 계란과 라면 사리를 넣어서 내고, 떡갈비도 따끈하게 데워서 한 개씩 냈어요.
마지막으로 코난군의 그림 한 점 :-)
추수감사절 분위기 물씬 나는 그림이랍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