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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서 고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타임머신 조회수 : 1,261
작성일 : 2011-02-13 00:16:53
동생의 가슴 아픈 얘기 때문에 이걸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제 동생이 일곱살때부터 부모님께서 삐걱거리시다가 여덞살이 갓 되었을때 이혼을 하셨어요. 그 이후로 엄마는 단 한번도 본적이 없이 컸구요.
저는 10살이었고 오빠는 11살이었어요. 부모님께서 1년 넘게 싸움만 하시다가 이혼을 한 경우라 동생은 돌봐주는 사람도 없었고 유치원도 못 나왔어요. 오빠랑 저는 유치원도 2년 이상씩 다녔는데 동생은 유치원 사진도 없어서 제 졸업식 날 제 옷을 빌려입고 사진 한장 딸랑 찍어준게 있네요.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식때 저희 손에 딸려서 애를 학교에 보냈는데 저희는 수업에 들어가야 해서 그냥 동생만 운동장에 놔두고 갔었구요, 조부모님께서 늦게 오셔서 운동장에 서있던 동생을 교실까지 넣어주고 가셨다네요. 조부모님께서 미국 이민 준비 중이셨고 따로 살았기 때문에 우리를 돌봐주지 못하셨어요. 그로부터 두달 뒤 쯤 미국으로 출국하셨구요.

집에는 증조할머니께서 저희를 챙겨주셨지만 워낙 연세가 있으셔서 밥하고 반찬 빨래 만으로도 벅차셨어요. 그런데 전 누나임에도 한번도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가거나 숙제를 봐주거나 한적이 없었네요. 옷도 챙겨주지 않았고 단 한번도 동생을 챙겨 본 적이 없었어요. 저도 제 살길 찾느라 빠쁜 나이긴 했지만 그래도 누난데 그랬네요.

크면서도 동생은 동생대로 저는 저대로 자기 앞가림 하며 독립심만 잔뜩 키워야 했어요. 오빠만 그래도 장손이라는 명목하에 미국에 계신 조부모님들께서 오빠한테 필요한것만 사보내시곤 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6학년때, 동생이 4학년때 새엄마가 들어오셨어요. 이복동생은 없었고 그냥 저희 셋만 키우셨어요.

너무 감사한 일이고 나를 낳지 않은 분이 키워주시는 것만해도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정말 힘든 사춘기를 보냈어요. 잘해주시는 것 같다가도 당신 마음에 안들면 뭐든 찢어버리고 화내고... 또 저희끼리 모여 있게 놔두질 않았어요. 혹시라도 저희가 엄마 욕을 볼까봐 그러셨을까요? 저희 삼남매 사이를 자꾸 이간질 하시고 다정한 모습만 봐도 화내시곤 하셔서 저희도 눈치껏 서로 피하게 되더라구요.

커서도 계속 그러셨어요. 오빠가 제 욕을 한것처럼, 제가 오빠 욕을 한것처럼, 오빠가 동생 욕을 한것처럼 이리저리 이간질을 시키시고 무엇이든 당신을 통해서, 당신의 허락하에 해야만 했어요. 그리고 당신이 싫어하는건 무조건 하면 안되구요, 그게 공부일지라도 당신이 아니라고 하면 하면 안되는 거였어요.

그렇게 오래 자라다 보니 오빠랑도 동생이랑도 서로 멀어지더라구요. 그냥 가끔 엄마를 통해 잘있대더라~ 정도의 얘길 들으면 다행이다 하면서 믿거라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었구요.

제가 연애를 시작했을땐 예뻐 보이려 하는것도 싫으신지 머리만 묶어도 창녀같다느니, 그 남자는 너를 노리개로 생각하고 있을거다, 네가 뭐 볼게 있느냐느니... 그런 소리도 거침없이 하셨어요.

오빠가 사귀던 여자도 무조건 반대했지요. 결혼 후에도 이혼시키려 엄청 난리를 부리셨으니까요. 그래도 오빠는 꾿꾿이 잘 살고 있네요. 올케 언니를 만나서 신앙에 푹 빠졌었는데 워낙 개독교 냄새가 심해서 미친거 아니냐고 생각했었지만 오빠는 그 신앙 덕분에 엄마를, 그리고 무능하고 용기없던 아빠를 용서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두 분을 이해하려고 많이 애 쓴다고요. 그래서 오빠가 개독교를 믿건 안믿건 나한테만 강요하지 않는다면 욕하지 않아요. 오빠가 자기의 아픈 기억을 치유하고 있는거 같아서 그 기억을 곱씨고 있는 나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보여요.

친정과 워낙 멀리 살아서 저도 별로 볼일은 없지만 통화는 자주 했었는데요 당신 기분따라서 괜히 욕을 하고 전화를 끊는날도 있고 혼자 기분 좋아서 홍홍거리다 끊는 날도 허다했어요. 그리고 제가 몸에 병이 생겼다는 말을 한뒤로 연락 두절하셨네요. 혹시라도 제가 돈이라도 바랄까봐 그러셨나 봐요. 행복의 기준이 돈이신 분이고 자식한테도 용돈 한푼 줘본 일이 없으세요. 저희 셋 다 다 알바해서 저희 앞가림 했거든요.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것은 동생이 필리핀계 미국여자와 약혼을 한다고 해서 모였을때였어요. 참하고 예쁘고, 무엇보다 동생의 아픔을 이해해주는 사람이라 고마웠어요. 엄마도 저희가 다 있는 앞에서는 그 여자가 너무 착하고 예쁘고 하시면서 칭찬 일색이셨는데... 역시나 맘에 들지 않으셨나봐요. 동생한테 전화해서 그 못됀년, 외국년 등등 아주 안좋은 소릴 자꾸 하셨대요.

동생도 참다 못해 엄마 몰래 이사를 가버렸고 엄마가 전화를 하자 그 다음날 전화번호까지 바꿔 버렸네요. 그리곤 동생하고 연락이 두절되서 3년째 아무 소식을 못 듣고 있어요. 이 녀석이 맘에 걸려서 마음이 아파요.
어려서도 사랑 못 받고 챙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지내다가 이제야 기댈 사람을 찾았나 싶었는데 엄마가 그렇게 휘젓어 놓고 난 다음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 여자랑 잘 살고있고 그 아픔 치료하면서 살고 있으면 얼마라 좋을까요.

제가 동생을 기억하게 된 이유는 저희 아이 때문이예요. 저희 아이 이제 9살... 이 녀석을 볼때마다 동생이 생각나요. 생긴것도 닮았고요. 제 아이, 9살인데 아직 옷도 입으라면 어찌나 엉성하게 입는지, 숙제며 학교 준비물이며 이것저것 챙겨줘야 하는게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여리고 아기 같은지...이런 제 아이 모습을 볼때마다 초등 입학 날 운동장에 혼자 놔두고 왔던 동생이 자꾸 떠올라요.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다른 친구들이 부러웠을까, 얼마나 화가 났을까... 제 아이 나이가 제가 제 동생을 가엾다고 처음 생각한 그 나이때라서 그런지 더 많이 생각나고 누나로서 전혀 돌봐주지 못했던 거에 대해서 미안하고 또 미안하네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입학실날로 돌아가서 내가 수업에 늦더라도 동생 손 붙들고 선생님 나오실때까지 기다렸다가 교실에 데려다 주고 매일 학교갈때 옷 매무새도 좀 봐주고, 목욕도 같이 해주고, 숙제도 좀 봐주고, 공부도 가르쳐주고 이것저것 해주고 싶은게 너무 많아요.

tv에서 보면 본인도 어리면서 자기 동생들을 끔직히 위하는 애들도 많이 나오던데 전 왜 그러지 못했나 싶어요. 제게 사랑이 너무 부족한가봐요. 만약 동생이 연락을 해온다면 만나서 미안하다고, 미안했다고 동생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 주고 이제라도 누나 노릇해주고 싶어요. 어제 엠비씨스페샬에서 동생들 잘보는 친구들 보면서도 많이 울었네요. 저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싶어서요.
IP : 122.34.xxx.48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1.2.13 12:28 AM (58.232.xxx.27)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ㅠㅠ
    동생분하고 꼭 연락되셨으면 좋겠어요.

  • 2. ㅁㅁ
    '11.2.13 12:34 AM (125.181.xxx.173)

    글 너무 잘읽었어요.....맘이 쨘하네요...꼭 동생분 만나셔서 앞으로 좋은기억 많이 만드세요...

  • 3. ...
    '11.2.13 12:45 AM (112.214.xxx.154)

    원글님도 그때는 너무 어리셨잖아요... 동생분도 이해해주시지 않을까요?
    저도 제 동생들 생각하면 맘이 그냥 짠해지는게 있어서... ㅠㅠ

  • 4. 얼마나
    '11.2.13 1:35 AM (220.70.xxx.199)

    얼마나 속상하실까요
    동생 되시는 분께서는 아마 그때 원글님 쓰신것처럼 무섭고 두렵고 힘들었을거에요
    하지만 그때의 원글님도 마찬가지 였잖아요
    서로 의지를 하고 기대고 힘이 되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 나이때 그렇게 하기엔 힘들잖아요
    원글님 애기 보시면 아시듯이...
    동생되시는분이랑 꼭 연락되서 만나시게되면 다시 글 올려주세요
    이젠 서로 기대고 힘이 되어줄수 있는 나이들 되셨잖아요

  • 5. 에궁
    '11.2.13 1:41 AM (221.148.xxx.196)

    본인이 돌봄을 받지 못했는데 동생을 돌볼 줄도, 돌볼 힘을 얻을 곳이 없었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날이었다고 생각해요. 연락이 닿으셔서 지금부터 동생과 새로운 관계 쌓아나가실 빌어봅니다.

  • 6. 혹시
    '11.2.13 2:34 AM (118.46.xxx.122)

    연락이 없으면 그 아가씨랑 둘이서 본가생각 안날 정도로 알콩달콩 잘 살고있는 걸거예요.
    넘 힘들어하지 마세요.
    원글님도 어렸잖아요..

  • 7. 에고
    '11.2.13 2:45 AM (222.108.xxx.205)

    저도 괜히 맘이 짠한게 ..원글님의 맘이 느껴지네요..
    동생도 아마 잘 살고 있을거에요..
    저도 남동생 있지만 그닥 살갑게 잘해준 기억이 없어 이 글 읽고 동생생각함 해봅니다..

  • 8.
    '11.2.13 4:14 AM (115.136.xxx.24)

    원글님 참 착한 분이네요,,,
    동생분이 이 마음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 9. ,,,
    '11.2.13 6:36 AM (118.220.xxx.63)

    동생분 꼭찾아서 왕래하며사세요 지금이라도
    누나로 보듬어주고 엄마대신 보살펴주세요
    그것이 남매간아닌가요 글을 읽으니 가슴이아프네요
    지금도 늦지않았어요 남매간 서로챙겨주며 사세요

  • 10. 그마음
    '11.2.13 8:00 AM (1.104.xxx.101)

    충분히 이해할것같습니다 제 아이도 9살인데 가끔 제 9살때가 생각나서 제가 안쓰러울때가 있거든요 어린시절에 워낙에 관심을 못받고커서.. 나중에라도 동생만나면 원글님 마음 충분히 말하시면 동생분도 이해할꺼라 생각됩니다

  • 11. .........
    '11.2.13 9:10 AM (211.207.xxx.110)

    얼른 동생분 찾아보세요..
    동생분도 누나를 보고싶어할 지도 모르잖아요..
    찾아볼 방법이 없나요?
    혹시 동생분과 연락이 돼서 만나셨을때
    여기에 글 올려주세요..
    원글님 글 읽으면서 눈물 한바가지 흘리고 있네요..

  • 12. 준준
    '11.2.13 3:05 PM (110.12.xxx.111)

    어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눈믈 펑펑 쏟고 리플답니다
    동생을 만나게되시면 꼬옥 안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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