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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이 맞춤법 교실]5-1.임신한 모기만 사람의 피를 빤다 : 의존명사의 경우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원래 러시아 귀족의 아들이었답니다. 1899년, 아직 러시아가 황제 치하에 있던 19세기 끄트머리에 태어난 그는 청소년기까지 권위 있는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정말 부족함 없는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나보코프가 쓴 <말하라, 기억이여>라는 아름다운 회고록이 있는데요, 그걸 보면 꼭 제임스 아이보리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전망 좋은 방>, <하워즈 엔드>, <남아있는 나날>과 같은 영화 아시죠? 모두가 제임스 아이보리의 작품들인데, 지난 시기 영국 귀족들의 삶을 유려하게 그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1980년대 초반에 그런 영화들이 크게 유행했었답니다. 당시 영국은 70년대에 구제금융사태까지 겪는 치욕을 거치면서 ‘강한 영국’에 대한 열망이 극에 달해 있었어요. 특히 보수 세력들이 그랬죠. 영국의 기득권층을 이루는 그들은 ‘해가 지지 않는 왕국’을 건설했던 과거의 영국을 그리워하면서 영국을 다시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성토했습니다. 1979년에 집권한 대처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거침없이 펼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런 보수 세력들의 열렬한 응원이 뒤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영국에서 1980년대 초반에 <전만 좋은 방> 류의 영화가 유행한 이유도 그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 영화들이 영국 기득권층에 좋았던 그 시절, 그 유산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선물해주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런 영화들을 일명 ‘헤리티지 무비(heritage movie)’라고 부른답니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바로 그 ‘헤리티지 무비’의 대표 주자였어요.
아무튼 나보코프는 영국 ‘헤리티지 무비’ 속 귀족 자제처럼 수많은 하인들과 유모, 가정교사 무리 속에서 자랍니다. 아버지는 자유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개혁적 성향의 고위 관료로 합리적인 성품에 학구열이 드높았습니다. 어머니는 자애로웠고 동생들은 귀여웠죠. 제임스 아이보리 영화에서처럼 품위 있는 생활, 격조 있는 시간들이 꿈처럼 흘러갔습니다. 그 와중에 첫사랑과 가슴 아픈 이별도 하면서 장남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어린 시인이자 아마추어 인시류 연구가로 성장을 합니다.
인시류 연구가. 좀 생소한가요? 하지만 나보코프는 뛰어난 작가인 동시에 나비와 나방을 연구하는 인시류 전문가이기도 했답니다.^^ 그 분야를 전공한 것은 아니었으나 하버드대에서 전문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고, 남미 일대에 서식하는 ‘블루’종 나비에 관한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시류 연구가로서 나보코프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답니다. 작가적 명성이 워낙에 드높았던 탓에 상대적으로 그 분야의 업적이 폄하되었다고나 할까요? 또 전문 인시류 연구가들의 보이지 않는 텃세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거죠. ‘우리는 모든 걸 바쳐서 이 연구를 해. 우리에겐 인시류를 연구하는 일이 취미가 아니라구. 하지만 당신은 소설을 쓰고 그걸로 눈부신 성공도 했지. 그러면서 또 나비와 나방을 수집하고 연구를 한다고 해. 오, 지저스! 제발 당신의 호사스러운 취미를 빛낼 도구로 이걸 이용하지는 말아줘. 당신이 그러지 않아도 인시류 연구는 이미 학계에서 마이너라구. 당신 같은 셀러브리티가 끼어들지 않아도 우리 위치는 충분히 위태롭다 이거야!’
그러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시류 연구에 관한 나보코프의 업적이 학계에서도 본격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합니다. <나보코프 블루스>라는 책에 그 과정이 잘 나와 있어요. 나비, 나방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지만 읽어보니까 재밌더라구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후대 연구자들이 새롭게 발견되는 블루종 나비 학명을 지을 때 나보코프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름을 붙여줬다는 거예요. 블루종 나비 연구에 대한 나보코프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요. 실존인물은 물론 (나보코프 본인과 부인, 첫사랑 이름 등) 나보코프가 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줄줄이 학명에 동원됐다고 합니다. 거기에 롤리타가 빠질 수는 없겠죠? 이제 조금만 있으면 봄인데, 봄날, 아름다운 햇볕이 봄꽃들 위로 쏟아지고 그 꽃들 사이로 한 마리 나비가 예쁘게 펄럭이는 걸 보시게 되면 저 나비가 혹시 ‘롤리타’라는 이름을 지닌 블루 나비는 아닌가.... 한번 생각해보세요.^^
음... 이렇게 해서 우리의 ‘롤리타’가 등장하게 됐는데요, 사실 그 소설을 읽어보기 전에는 ‘어린 소녀를 향한 중년남성의 성적 판타지’ 어쩌고 하는 사전 정보 때문에 굉장히 축축하고 뭔가 비린내가 나고 왠지 음침한 분위기의 소설일 거라고 상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직접 읽어보면 웬걸요? 소설 <롤리타>는 참 사랑스러운 한편 자기 정체성을 뿌리내리지 못한 자의 은근한 비애를 격하게 품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죠. 그리고 ‘사랑’에 대한 어떤 녹록치 않은 통찰을 담고 있음도 알게 됩니다.
또한 나비. 예, 나보코프는 인시류 연구가였으니까 소설에 등장하는 님펫(<롤리타>의 주인공이 자신을 매혹시키는, 소녀와 여성의 경계에 있는 소녀를 가리키는 용어)의 이미지와 나비를 자꾸 연관시키게 돼요. 실제로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보코프는 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비와 나방을 수집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롤리타>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죠. 험버트가 롤리타를 차에 태운 채 미국을 횡단하면서 부질없는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니까요. 그러니까, 그러지 않았을까요? 어느 봄날, 들판 위를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나비 한 마리와 그것을 좇고 있는 나보코프 자신. 거기에서 바로 롤리타와 험버트라는, 문학사상 기념비적인 인물들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도 그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일 겁니다.^^
그렇다면 나보코프는 왜 미국에까지 가게 됐을까. 그 결정적인 이유는 부인 때문이었습니다. 그 전에 제정 러시아에서 유복한 생활을 했던 나보코프 가문은 러시아에 불어닥친 혁명과 전쟁의 외풍을 피해 유럽 본토로 ‘잠시’ 피난을 떠납니다. 그때는 ‘잠시’라고 생각했던 탓에 재산은 그대로 남겨두고 오죠. 하지만 그 피난은 이후 ‘영원한 망명’이 돼버렸어요. 하여 나보코프는 창졸간에 수많은 하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도련님’에서 일개 가난한 케임브리지 고학생이 되어야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러시아와 관련된 한 정치집회에 참가했다가 러시아 극우파 괴한의 총에 맞아 숨지는 일까지 발생하구요. 베토벤이 얘기한 것처럼 운명은 그렇게 불쑥 나보코프 일가를 찾아와 느닷없이 문을 두드리더니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어떤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어버렸던 것입니다.
대학을 마친 후에도 나보코프의 궁핍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로 건너 간 나보코프는 테니스와 영어 과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한편으로 러시아 망명 문인들의 동인지에 러시아어로 쓴 시를 발표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러시아어로 글을 써서, 러시아 망명자들이나 보는 동인지에 발표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더구나 자신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점점 요원해보이기만 하고....
나보코프는 조심스레 영어와 프랑스어로도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노력이 결실을 맺기도 전에 나치가 창궐하면서 유럽에서 사는 일 자체가 위태로워지게 됩니다. 그의 부인 베라는 더구나 유태인이었으니까요. 당시 어린 아들을 두고 있던 나보코프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망명하기로 합니다. 나보코프의 노모와 남동생 둘, 여동생 하나는 그대로 유럽에 남아 있었죠.
러시아에서 유럽 본토로, 그리고 또다시 미국으로 유랑하게 된 나보코프는 다행히 미국에서 대학 교수로 자리를 잡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오죠. 자신과 케임브리지를 함께 다니며 그 고단한 시절을 함께 견뎠던 바로 밑 남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죽은 게 아니라, 나치한테 스파이로 몰려서 수용소에 갇혔다가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보코프는 회고록 <말하라, 기억이여>에서 그 사실을 담담하게 풀어놓습니다만, 오히려 그 담담함 때문에 읽는 사람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더군요. 그 부분을 읽을 때 저도 모르게 콧등이 찡해지면서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답니다.^^
아무튼 소설 <롤리타>에는 작가의 그런 인생역정을 연상시키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주인공 험버트인데, 지난 시대의 유산을 떠안듯 유럽 귀족 문화의 습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그는 소설 속에서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작가와 주인공의 운명을 따르듯 소설 <롤리타>도 뜻하지 않게 유랑을 하게 됩니다. 미국 출판사 중에서 어린 소녀를 탐하는 중년 남성 이야기를 출판하겠다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소설 <롤리타>는 작가의 인생역정과는 거꾸로 미국에서 유럽으로 떠돕니다. 그렇게 떠도는 롤리타와 험버트를 받아준 곳은 나보코프 자신도 한때 살았던 프랑스였답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다가, 성인이 된 후 영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가 영어로 쓴 그 소설은 그렇게 하여 프랑스어가 공식언어인 프랑스에서 최초로 출간이 됩니다. (참 복잡하네요^^) 그 출간과 함께 바야흐로 롤리타 신드롬이 시작되구요.
그런데 그런 예가 나보코프에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나보코프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게, 작가의 조국이 거부하고 그 조국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들이 또한 출간을 거부한 작품을 프랑스에서 받아준 걸출한 예가 또 있답니다. 그리고 그 신화는 센 강변에 위치한 한 조그마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시작되었죠.
그 얘기는 다음 편에서 하겠습니다. 끝내면서 잠깐 어제 버스에서 들은 들은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 얘기를 하고 싶어요. 거기서 그런 사연을 소개해주더라구요. 어떤 아줌마가 사는 게 하도 힘들어서 ‘고마 팍 죽어뿔자’ 하면서 딸한테 쥐약을 사오라고 했대요. 그런데 딸이 사들고 온 것은 쥐 끈끈이. 그거 보니까 웃겨서, 웃다가 죽지 못했다네요?^^ 그 사연 끝내고 틀어준 노래는? 하춘화의 <하여간>이었습니다. 그거 들으면서 느낀 건데, 우리 춘화 언니 발음이 정말정말정말 정확하더군요. 하나도 못 알아듣는,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가 없었어요.
춘화 언니 <하여간> 가지고 안무나 연구해봐야겠습니다. 하여간 두서없고 맞춤법 얘기한다면서 맞춤법 얘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은, 쓰잘데기 없이 긴 글을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머리가 아프네요. 그 수고에 답하는 의미로 나의 모국어가 아름답게 부딪히는 시 한 편을 선물로 드릴까 합니다. 하여간 편안한 밤 되세요.
옛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六月)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 백석, ‘통영’
아, 통영 가고 싶다!!!!!!!
1. 정의 아내
'09.2.11 10:03 PM (211.212.xxx.87)나날이 자신감을 잃어가는 맞춤법 눈요기라도 할까 하여 클릭했다가
좋아하는 문학 이야기를 눈이랑 머리에 잔뜩 담고 갑니다.
저도 선입견에 수십년간 은근히 롤리타 피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언제 한번 도전할 용기가 생겼네요.
여러 모로 감사합니다.2. 스탠리
'09.2.11 10:11 PM (220.117.xxx.104)저도 프리댄서님의 글 팬인데 맞춤법 강의 받을까 하다가 재미난 얘기 보고 가네요. 롤리타라.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를 탐닉하는 한국남자들도 한번쯤은 들어볼 만한 얘긴데, 이런 문학 얘기로 풀어주시니 너무 좋네요.
p.s. 영화 롤리타는 스탠리 큐브릭이었죠?
p.s.2. 문득 생각나는 `패밀리가 떳다'의 이천희 ㅋㅋ3. 프리댄서
'09.2.11 10:24 PM (219.241.xxx.222)예, 소설 <롤리타>가 큰 인기를 끌자 62년에 스탠리 큐브릭이 메가폰을 잡고 영화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작가 자신이 직접 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했대요.
90년대에 들어 다시 한 번 리메이크 됐구요.
당시 험버트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제레미 아이언스였습니다.^^
어쨌든 님들, 쓰잘데기 없이 길기만 한 글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4. 고냥이를 부탁혀
'09.2.12 12:42 AM (125.177.xxx.201)1. 긴 글 좋아요. 굵고 짧은 게시판 생활.^^
2. 언제나 댄서님 글 보면 비슷한 취향을 느껴요. (박식함과 능력말고 취향이 비슷^^)
작품과 작가와 쟝르와 분야를 막론하고..
망망대해의 돛단배 타고 가다 같은 책 읽고 있는 돛단배를 만나는 기분이에요.^^
파도,해일,폭풍과 상어떼 조심하세요. 라고 인사하고 싶어요. ㅋㅋ
3. 큐브릭의 롤리타는 왠지 시크했어요. 그래서 험버트가 더 처량해 보였습니다.
아저씨들에게 롤리타 컴플렉스가 있다지만, 여인들에게도 롤리타는 로망이 아닐까...
남자를 지배하는 여자. 그런데 주름도 없고 늙지도 않는 영원한 소녀. 캬... 내가 바라던 거에요. 큼큼...
4. 이 글이 조회수가 너무 적네요. 그래서 요렇게 흰소리를 늘어놔요. 왠지 작은 카페에서 수다떠는 여건이 조성되서.^^
5. 오늘 맞춤법은 <하여간> 공부한 거죠?^^5. 이분
'09.2.12 12:55 AM (121.161.xxx.164)팬 노릇 하기 힘들게 하네요. 이 문장력은 대체...^^
깔끔한 프리젠테이션을 본 것보다 더한 시원함!!6. 스탠리
'09.2.12 1:33 AM (220.117.xxx.104)아항... 영화를 직접 각색하셨군요. 책은 못 읽었지만 영화 롤리타, 뭐랄까, 역시 스탠리 큐브릭다운 데가 있었어요. 마냥 퇴폐라고만 생각하고 봤는데...
7. 프리댄서
'09.2.12 8:29 AM (219.241.xxx.222)조회수! 그렇네요. 쪼매 적네요.^^
그치만 이렇게 한 분이라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흑흑.
<나보코프 블루스>에서 봤던 건데요, 그 블루종 나비 학명이요...
그거 붙일 때 후대 연구자들이 소설 속 험버트와 롤리타의 관계까지 고려했다더군요.
즉 험버트라고 이름 붙여진 나비는 롤리타라고 이름 붙여진 나비와 생태적으로 가까이 살 수 없대요.
반경 200km인가? 아무튼 험버트 나비와 롤리타 나비는 반드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게 돼 있다더군요.
험버트가 더 이상 어린 소녀 롤리타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연구자들이 그렇게 배려했대나...^^8. 정말
'09.2.12 9:33 AM (116.121.xxx.20)재밌는 얘기예요.
프리댄서님 글은 꼭 읽고 있는 열혈독자입니다.
전 롤리타 소설은 못읽고 제러미아이언스가 나온 영화만 봤는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나비연구도 한 줄은 몰랐네요.9. 저도 왕팬^^
'09.2.12 10:27 AM (78.54.xxx.117)영화밖에 못봤는데 소설도 읽어보고 싶네요.
프리댄서님 글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그런데 이번 글 제목 무슨 이야기인가요? 맞춤법은 다음편에 나오나요?^^10. 프리댄서
'09.2.12 11:11 AM (219.241.xxx.222)아, <임신한 모기만 사람의 피를 빤다>는 시 제목이에요. 마종기 시인이 쓴.
저기서 '모기만' 할 때의 '만'이 조사로도 쓰이고 의존명사로도 쓰인답니다. (이 경우엔 조사로 쓰인 거구요...)
하여 그 점도 짚을 거라서 제목으로 올렸는데, 맞춤법 얘긴 하나도 못했네요.--;
다음 편에선 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ㅠㅠ
말이 나온 김에 시 전문을 올립니다.
임신한 모기만
사람의 피를 빤다.
새끼들을 위해서
결사적으로 덤빈다.
피를 빠는 모기는
온몸이 찰 때까지
경건하고 순수하다.
목숨을 다 걸고 나면
남은 몸짓이 없어진다.
세상의 소리를 죽이는
피를 빠는 모기의 긴장.
목숨은 빛나는 한 순간의 힘,
죽은 척 살아 있기보다는
살다가 죽고 싶은 힘.
수컷 모기는 이슬을 마시고
가는 눈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허둥대는 암컷의 들뜬 눈에는
사랑은 피던가 이슬이던가.
늦가을 모기의 날개는 숨어 있는 한숨처럼 멀다.
낮게 날아가는 한 생명의 끝, 아프지도 앓지도 않고
모든 암컷의 모기만
피를 빨다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