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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0108 : 고부갈등, 그거 음모에요

.. 조회수 : 583
작성일 : 2009-01-10 08:38:57

Q :
전 32세 기혼 직장여성입니다.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일하는 커리어우먼이지요. 제 고민은 그 흔한 고부갈등 문제입니다. 제 남편의 가족관계는 홀어머니와 누나 2명입니다. 유일한 남자였던 남편은 그 집안의 슈퍼히어로였습니다. 남편과 저는 많이 사랑하면서 연애를 했지만, 홀로된 시어머니는 아들이 여자에 빠져 시어머니를 돌보지 않는 것을 못마땅해했습니다. 그리고 결혼하니 신혼은 남편 쟁취 투쟁이었습니다. 남편은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커져 어머니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전 못 참고 이혼까지 선언했지만 남편이 적절히 처신해준 덕에 다시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첫아이를 임신했고, 저도 이때부턴 노력했습니다. 아시겠지만 회사 다니면서 육아하다보면 주말에 하루쯤은 정말 쉬고싶습니다. 하지만 내 한몸 희생해서 손주 보여드리기 위해 매주 시댁방문했습니다. 평소에도 "어른말이 법이다"라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시고, 제 아이 입고 먹는 것까지 끊임없이 간섭하시는 통에 고역이지만요. 그러던 중 지난 11월에 회사일이 바빠 시댁에 자주 못 가고 김장도 못도와드렸는데요, 시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화내십니다. 시누이들이 김장 다 해주고 갔다면서요. 참고로 시누이들은 전업주부며 경제적으로 시어머니께 의존하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에 육아까지 너무 힘든데 전화로 술주정까지 하시는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지옥입니다.  

A :
고부갈등은 가부장제와 ‘효’이데올로기가 결탁한 음모입니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제에선 여자들은 남자와의 관계성으로 그 지위가 정해지는데요, 시어머니(어머니)는 며느리(아내)를 하위존재 ’꼬붕’쯤으로 생각하지요. 시어머니는 ‘권력자’인 가부장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나중에 온전히 ‘어머니’라는 영예로운 타이틀만 남을 때까지 참고 참았다가 ‘며느리’라는 이름의 후배에게 가시면류관을 물려주고 당신은 이제 그 권력자 옆에서 방석 깔고 누우시려 합니다. 그리고 며느리의 대접을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남자를 개뿔 권력으로 안 쳐주는 잘난 우리 ‘커리어우먼’ 세대들은 그 가시면류관을 왜 내가 써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 능력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데 왜 시어머니는 나를 ‘내 잘난 아들 덕에 먹고 사는 여자’로 간주하고 그 잘난 아들 키워준 대가를 나보고 보답하라는 건지 당최 이해가 안되는 거지요. ‘그려려니’하고 ‘예스 우먼’이 되기에는 육체적으로 힘들고 인격적으로 무시받는 느낌입니다. 이윽고 가부장들이 팔짱끼며 지켜보는 가운데 여자들끼리의 작은 전쟁이 시작됩니다. 가부장들은 문제의 본질이 자기들의 특권누림때문인지도 모른 체  “정말 여자들끼리 왜 이러냐” “당신, 우리 엄마랑 잘 좀 지내봐” 이러면서 ‘효’의 정신으로 너가 좀 참으라고 윽박지릅니다. 니 부모에겐 자식인 너부터나 잘하라고 해주십시오.

그렇습니다. 며느리는 자식이 아닙니다. ‘며느리를 친딸처럼’ 이 말 역시도 ‘모유수유는 두 돌때까지’처럼 여자를 ‘잡는’ 이 사회의 음모입니다. 며느리를 친딸 대하듯 하라고 시어머니께 주문하는 건 무리이고 그 반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나를 친딸처럼 안 대해주고 남편, 시누이들과 나를 차별대우한다해도 서운해할 일도 아닙니다. 우린 자식이 아니라 자식의 배우자니깐요. 사실 현실속의, 그리고 브라운
관속의 며느리도 ‘딸’보다는 아무리 봐도 ‘파출부’라는 이름이 현실적으로 어울립디다. 아, 정말이지 고부갈등을 필수적 엔터테인먼트 요소로서 점점 자극적으로 TV드라마에서 그리는 것, 이것 또한 음모입니다. 고부갈등을 당연시하게 만들거나 심화시키는 이런 ‘쇼’들이야말로 심의에 안 걸리고 뭐하나 모르겠습니다.

우리, 이 음모들에 놀아나지 맙시다. 고부갈등은 무의미하고 하등의 스트레스 받을 가치가 없는 소모적인 감정노동입니다. 무리하거나 희생하는 것은 그 누구를 위한 것도 못됩니다. 마음에선 원치 않은데 왠지 며느리니까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것들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세요. 무거운 마음으로 의무방어식 시댁방문은 관두고 전화로 징징대시면 잠시 수화기를 귀에서 멀리 대고 메일체크나 하세요. 아이문제로 참견하시면 앞에서 ‘네’라고 대답하고 뒤에선 내 아이 내 마음대로 하세요. 구태의연한 회수 채우기 안부전화 같은 건 차라리 하지도 마세요. 김장이요? 시누이들이 버무린 김치는 강제징집노동이 아니라서 훨씬 맛있게 익고 있을 겁니다. 싸가지없는 며느리될 각오 단단히 하고 그동안 며느리의 ‘도리’라고 생각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해왔던 모든 행위를 청산해버리십시오. 그래서 시어머니의 과다책정된 기대치를 한없이 낮추는 한 편, 내 마음 속의 부조리한 분노와 뒤끝을 없애고 제로 베이스부터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대물림된 어거지 며느리 역할놀이는 이제 그만. ‘시’자라서 굴복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인간적인 장점을 발견하고 그를 예우할 수 있도록.

대신 우리끼리 약속할 게 있습니다.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시어머니를 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고부갈등이 일반화된 만큼 시댁욕하는 것 역시도 흔한데, 욕이란 것은 자고로 하면 할수록 확대재생산되어 그 대상을 필요이상으로 더 미워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며느리들끼리 온/오프라인으로 모여 시댁욕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것 또한 ‘엔터테인먼트’로 코믹하게 변질되는데, 이 갈등관계가 고통을 넘어 이렇게 ‘묘한 쾌감’을 계속 주다 보면 이 땅에서 근절되기 힘드니까요. 개인적으로, 직면해서, 우리 세대에서, 제발 끝내버립시다.

글/임경선(8년차 며느리)


IP : 122.34.xxx.147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09.1.10 10:45 AM (220.85.xxx.200)

    만약에 김장돕기, 시댁에 잘하지 않기 등을 남편이 비난하면요?
    사실 남편만 내편이면 시댁의 무리한 요구는 잘라버릴 수 있는데요,
    하지만 아내가 시댁의 요구에 따라주길 남편이 원하고, 자기 불쌍한 엄마를 돕지 않는 아내를 남편이 비난하면요?
    그러면 그냥,, 게임 끝인가요? 아내 패? 아니면 남편이랑 설득하고 울고 싸워야 되나요?
    딴지거는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여쭙니다.

    시댁에서 정서적 경제적으로 저희부부에게 좀 당연하게 많이 기대시기 때문에 이래저래 힘들 때가 있어요.
    솔직히 남편만 아니라면 제가 뭔 신경을 쓰겠어요 시댁에.
    저는 남편이 내 가족이니까 남편이 싫어하지 않을 만큼만 시댁에 하거든요. 용돈이며 이런저런 요구들이나 대접들.
    그것도 제 힘을 넘어설 때가 있지만 어쨌든 해요. 남편이랑 조화롭게 살고 싶어서.
    이런글 보면 정말 궁금해요.. 며느리가 시댁요구를 정말 맘대로 끊을 수 있는건가..

  • 2. 원글동의
    '09.1.10 4:26 PM (41.234.xxx.133)

    "가부장들이 팔짱끼며 지켜보는 가운데 여자들끼리의 작은 전쟁이 시작됩니다. 가부장들은 문제의 본질이 자기들의 특권누림때문인지도 모른 체 “정말 여자들끼리 왜 이러냐” “당신, 우리 엄마랑 잘 좀 지내봐” 이러면서 ‘효’의 정신으로 너가 좀 참으라고 윽박지릅니다. 니 부모에겐 자식인 너부터나 잘하라고 해주십시오"
    ------ 완전 동의!

    윗분, 싸움은 일단 남편과 먼저 하시는게 어떨지. 시어머니의 '과다책정된 기대치'를 남편에게 인식시키고 이런 식으로 하면 나도 내 아들과 며느리에게 똑같은 짐을 넘기는 시어머니가 될것이다 라고 설득시키세요. 내속으로 낳은 자식도 결국은 본인이 아니라는 건 시부모님도, 우리들도 깨달아야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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