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천재니 영재니 하는 글의 댓글들을 보고 느낀 거에요.
저도 공부를 좋아하고 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열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대학 동아리 시절 지도교수님이 제 결혼식 주례를 맡아주셨었어요. 주례 선생님이 결혼식장에 1시간 정도 일찍 도
착하셨었는데, 마땅히 계실 곳이 없었어요. 결혼식 1시간 전이야 워낙 정신이 없던 때라서 따로 챙겨드리지도 못
했었고, 뒤늦게 알았지요. 신혼여행을 갔다 와서 인사를 드리려고 연구실로 찾아갔었습니다. 결혼식때 선생님 기
다리시게 만들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었지요. 그랬더니 괜찮다고 정말로 전혀 신경쓰지 말라고 하시면서, 오히
려 그 때 기다리면서 1시간 동안 커피집에서 혹시나 해서 가져간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다시 한 번 읽게 되
었는데, 다시 읽어도 역시 명저였다 그런 기회가 주어져 좋았다고 하시면서 예링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하셨었지
요. 그 인상이 저에겐 오래도록 남아있습니다. 저런 분이 정말 학자구나 싶었어요. 물론 그 분은 민법 선생님으로
서 "사적 자치의 원칙"을 워낙 강조하시고 본인 스스로도 "우파"라고 말하시는 분이시긴 하지만, 저야 그 분의 학문
적 견해에 관해서 감히 뭐라 말할 처지도 못되는 미숙아라 그의 정치적 입장과는 별개로, 정말로 존경스러웠습니
다. 항상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이요.
다른 선생님은 학생들에게는 그다지 인기없는 로마법 및 서양법제사 선생님이셨는데, 지하철로 학교에 출퇴근하
시면서 항상 문고판 독일어 책들을 점퍼에 넣어가지고 읽으시면서 다니셨지요. 지하철에서 뵌 적도 있으니까요.
이 분은 결혼식 주례를 맡으시면 항상 주례 시작으로 "로마인들은 이렇게 생활했습니다"로 시작하신다는 소문도
있는 분이셨지요. 또다른 선생님은 걸어다니시면서도 책 보시고 버스 기다리면서도 책 보시고, 그야말로 책을 손
에서 놓질 않으시는 분이셨지요.
물론 문헌 연구 이외에 현장 조사, 인터뷰 등이 필요한 학문의 경우에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꼭 좋은 것만
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저에겐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친한 형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책의 장면 중 하나인데요. <마스터 키튼>이라는 만화가 있어요. 거기 보면 유리 교
수님인가 아무튼 키튼의 스승으로 나오신 분이셨던 것 같은데, 공습으로 폐허가 된 런던 거리에서도 시민들을 위
한 고고학 강의를 진행하는 장면이 나오지요. 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장면이지
요.
물론 존경스럽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한 번은 선배 형에게 물어봤어요. 그 분은 대학 동아리 선배였는데, 굉장히 젊은 나이에 대학에 자리잡은 분이셨
지요.독일에서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데, 2년인가 아무튼 초단기간에 박사학위까지
받으신 그야말로 전도유망한 신진학자셨어요. 형은 어떻게 공부를 열심히 하시고, 잘하시냐고. (사실 다시 생각
해 보면 정말 우문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답이 자긴 공부 열심히 안한다고. 사비니는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
고, 독일 사람들은 또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뭐 그런 얘길 하셨었지요. 저로선 완전히 헉!!! 이었어요. 정말 얄
미워서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요. 결국 "수준" 즉, 비교하는 차원이 다른 거지요.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선현들이 경
쟁자라는데, 어쩌겠어요. 아무튼 그런 대답은 저를 완전히 절망하게 했고, 너무 얄미웠지요. (물론 그렇다고 그 형
을 존경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열정이란 전염성이 있다는 사실이에요. <미래의 법률가들에게>라는 책에서 저자인 앨런 더
쇼비츠가 한 말이지요. 미연방대법원의 대법관 중 카도죠 대법관이라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연방항소법원 판사
시절부터 유명하신 분이라는데, 그 분에게 한 대학생이 물어봤답니다. 어떻게 판사님은 그렇게 쟁점이 많고 복잡
한 사건만 맡으시냐고. 카도죠 대법관의 대답은 그랬대요. 자기가 곰곰히 사건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전에는 그렇
게 쟁점이 많은 줄 몰랐다고. 자꾸 의문을 가지고 이것저것 고민하다 보면 "간단한" 사건 같은 것은 없다고. 앨런
더쇼비츠가 연구관으로 모셨던 배질런 판사도 비슷했답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사건에서도 가난과 범죄, 인종
과 범죄 등의 복잡한 쟁점들을 이끌어 냈고, 그런 배질런 판사의 열정은 연구관이었던 자신에게 전염되어서 자신
이 열정적인 법률가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저자인 앨런 더쇼비츠가 말하더군요.
그러니 최대한 열정적인 사람 옆에 붙어서 알짱거릴 수 밖에요. 조금이라도 "열정" 균을 나누어 받을 수 있도록요.
비록 옆에 있으면 나의 부족함, 미숙함에 절망감이 들 때도 많지만.
아무튼 이상 제가 찾은 공부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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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대한 열정
하늘을 날자 조회수 : 720
작성일 : 2009-01-06 16:51:13
IP : 124.194.xxx.146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이젠나도서른
'09.1.6 7:02 PM (118.38.xxx.214)글 잘 읽었어요~ 저도 계속 공부하는중이라 요즘 생활이 활력도 없고 그랬는데, 힘내야겠어요!
옛 성현들이 내 경쟁자다! 와. 긴장되네요.^^2. 자유
'09.1.6 7:34 PM (211.203.xxx.51)공부에 대한 열정, 저도 좀 전염되었으면 좋겠네요. ^^*
저도 늦게까지 참 공부 욕심이 많았는데..
셋째 낳고 키우다 보니, 많이 게을러(?)집니다.
책 들여다 보던 시간에, 막둥이 물고 빨고 하다가 안고 자구요. 반성...
이러다가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다~ 수준이 되는 것은 아닌지..
흠...열정적인 사람들 옆에 얼쩡거려야 하는거군요.
요리에 대한 열정,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열정, 공부에 대한 열정...
열정의 화신들 많이 모여있는 82에서 많이 얼쩡거리렵니다.*^^*
하늘을 날자님의 독후감도 참 잘 읽고 있는데...(다음편인 줄 알았어요.)
오늘은 공부에 대한 열정 이야기 잘 읽고, 그 열정 균을 좀 나눠 받아 갑니다~3. ^^
'09.1.6 9:04 PM (123.215.xxx.158)이래서 82가 좋습니다.
4. 저도 감사^^
'09.1.6 9:07 PM (123.111.xxx.220)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5. 그게
'09.1.6 9:33 PM (121.134.xxx.61)특목고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근묵자흑,근주자적 이란 말...무시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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