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KBS 사장을 해임할 권한이 없다
[기고] "헌법학자로서 작금의 사태에 죄책감이 느껴져…"
2008-08-07 오후 6:15:22
이명박 정부가 KBS 정연주 사장 해임을 위한 총동원 태세로 돌입한 가운데, 한 헌법학자가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신재민 문화관광부 차관을 위시한 정부여당의 '완장'들이 '대통령이 KBS 사장에 대한 임명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해임권도 행사할 수 있다'고 내세우는 논리는 어리석고 어처구니없으며 비법적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는 이러한 법해석대로라면 대통령을 임명한 국민은 대통령을 해임할 수도 있는 것이냐고 되묻는다. 헌법이론적으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 민주적 정당성이라고는 10%대밖에 확보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는 대통령의 임명권과 해임권에 관한 다양한 사례를 비교하며 "헌법은 대통령과 KBS라는 공영방송 또는 KBS 사장 사이의 관계형성을 KBS 사장 임명이라는 통로 외에는 전혀 허용하지 않고 있다. KBS와 KBS 사장의 임무영역은 대통령 권력이 전혀 침투할 수 없는 공간"이라고 단언했다.
이 글을 보낸 전북대 김승환 교수는 원고와 함께 "헌법교수로서 작금의 사태에 펜으로 개입하지 못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자괴의 심경을 이메일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편집자>
▲ 기자회견 하는 정연주 KBS 사장 ⓒ프레시안
1. 임기제의 의미
공·사조직을 막론하고 조직의 수장에 대해서는 대부분 임기제가 적용된다. 임기제는 말 그대로 해당 직위가 끝나는 시기를 미리 규범적으로 정해놓는 것을 가리킨다. 임기제가 갖는 의미는 이를 일반적인 것과 특별한 것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임기제의 일반적 의미는 조직의 수장에게 일정한 기간 동안 책임 있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수장의 잦은 교체 또는 예측가능성 없는 교체로 인하여 조직의 안정성이 동요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다.
임기제의 특별한 의미에 대하여 이를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헌법상의 임기제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헌법은 국회의원(4년), 대통령(5년), 감사원장과 감사위원(4년, 1차 중임 가능), 대법원장(6년, 단임), 대법관(6년, 연임 가능), 일반법관(10년, 연임 가능), 헌법재판소재판관(6년, 연임 가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6년, 연임 가능 여부 명문의 규정 없음) 등에 대하여 임기제를 규정하고 있다.
이 중 대통령이 임명하는 직위는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재판관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9인 중 3인이다.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지지만, 헌법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가지는 이들과 대통령의 관계는 어떠한가? 상하종속관계인가 아니면 상호독립관계인가?
대법원장과 대법관(일반법관도 마찬가지임) 그리고 헌법재판관은 권력분립의 원칙상 입법권과 집행권으로부터의 독립이 필수적이다.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역시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관과 동일한 수준의 독립성이 요구된다. 따라서 이들과 대통령의 법적 관계는 대통령이 이들을 임명하는 순간 끝난다. 대통령은 이들에 대하여 어떠한 직무상의 지시나 감독도 해서는 안 된다.
감사원장과 감사위원은 어떤가? 감사원법 제2조 제1항은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감사원의 기능과 관련하여 감사원이 유지해야 할 지위에 관한 헌법정신을 감사원법이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그 조직이 대통령에 속할 뿐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직무를 수행한다.
국무회의의 심의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89조가 감사원의 직무를 그 심의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이유도 만약 감사원의 직무를 국무회의의 심의대상으로 하는 경우 그것은 감사원의 지위의 독립성에 관한 헌법의 요청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은 검찰총장의 임기에 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검찰청법 제12조 제3항은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그 조직계열상 집행권에 속하지만, 그 직무가 국가형벌권의 행사와 직결되는 것이어서 준사법기관이라고 말한다. 검사는 법관과는 달리 법무부장관의 일반적 지휘·감독권에 복종해야 한다(검찰청법 제8조). 그러나 법무부장관의 그러한 지휘·감독권이 검찰권의 불편부당한 행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검찰청법 제4조 제2항은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부여된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청장의 임기제는 노태우 정권 때인 1988년 12월 31일 검찰청법 개정을 통하여 도입되었다. 검찰청장의 임기를 보장함으로써 정치적 압력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불편부당하게 검찰권을 행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의 입법취지였다.
그러나 임기제의 법적 의미에 대한 이해가 짧았던 역대 대통령들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임기중인 검찰총장을 갈아치우기도 하고 다른 직위로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한 대통령들의 행태에 대해서 의식이 없었던 검찰총장들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검찰총장 임기제의 형식화는 검찰권 중립의 중요성에 대한 천박한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에 대법관을 감사원장 후보자로 임명한 사례도 헌법적으로는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상호 권력분립의 관계에 있는 집행권의 대통령이 임기 중에 있는 대법관의 임기를 임의로 단축시키고, 그 소속을 사법권에서 집행권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 헌법이론적으로 가능한가라는 문제점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은 사법권 독립의 관점에서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되고, 당사자로서도 사법권 독립의 관점과 대법관의 헌법적 임무의 관점에서 결코 수용해서는 안 되는 사례였다.
2. 임명권과 해임권
임명권자가 해임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일반적인 답을 할 수는 없다.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은 그 정치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이들을 해임할 수 있다. 이들은 임기도 없기 때문에 대통령의 해임권 행사의 여지는 매우 넓다.
그러나 대통령의 해임권에는 아무런 한계도 없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현행 국회법상 장관의 임명에는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치게 되어 있다. 대의기관의 검증을 받은 후 임명권자가 임명하도록 하자는 것이 그 입법취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명백한 사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임명 후 얼마 되지도 않아 장관을 해임하는 경우 그것은 해임권의 남용에 해당한다. 물론 이 경우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가는 별론이다. 장관은 전형적인 정무직공무원으로서 그 임명과 해임은 비정치적 국가기관인 사법부의 판단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임명권자와 그 임명권에 의해서 임명되는 공직자의 법적 관계가 상호 종속관계일 때에는 임명권자의 해임권 행사의 폭이 넓어진다. 그러나 양자의 관계가 상호 독립관계일 때에는 해임권 행사의 폭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 양자의 관계가 어떤 관계에 있는가는 해당 공직자와 그 소속기관이 헌법이나 법률에 의하여 독립성 또는 중립성이 보장되고 있는가,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는가에 따라 달리진다.
3. 대통령은 KBS 사장을 해임할 수 있는가
우선 방송은 무엇인가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방송법 제1조는 "이 법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시청자의 권익보호와 민주적 여론형성 및 국민문화의 향상을 도모하고 방송의 발전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를 때 방송이 수호해야 할 가치는 자유와 독립 그리고 공적 책임이다. 방송의 자유란 '방송편성의 자유'를 의미하고 이는 기본권에 해당한다. 방송의 독립은 특히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방송 내에서의 부당한 지시나 간섭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하다. 방송법 제4조 제3항은 이를 더 구체화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방송사업자는 방송편성책입자를 선임하고, 그 성명을 방송시간 내에 매일 1회 이상 공표하여야 하며, 방송편성책임자의 자율적인 방송편성을 보장하여야 한다."
이러한 방송의 자유와 독립은 민주적 여론형성과 직결된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 없는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방송의 자유로 대표되는 언론의 자유를 가리켜 "민주주의의 생명선이라고 부른다. 사법권의 독립은 권력분립과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면, 방송의 자유와 독립은 민주주의와 국민의 알 권리의 관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그 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것을 요청하고 있고, 국민의 주권적 의사는 방송을 비롯한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 형성된다. 이 때문에 방송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는 것은 방송의 공적 책임에 속하는 것이다(방송법 제5조).
방송에 대해 방송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인정하고, 그 지위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헌법적 근거는 국민주권의 원리(헌법 제1조 제2항)와 언론의 자유(제21조 제4항)이고, 언론의 자유 속에는 방송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가 존재한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은 방송기관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KBS는 이사회와 집행기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집행기관인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방송법 제50조 제2항). 그리고 이사회가 집행기관의 구성과 관련하여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사장·감사의 임명제청 및 부사장 임명동의에 관한 것뿐이다(방송법 제49조 제7호).
KBS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의 임명을 받는 순간 직무상 이사회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한다. 그것은 자연인으로서의 KBS 사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방송매체로서의 KBS가 행사하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것이고, 민주주의의 실현과 국민의 알 권리의 보장을 위한 것이다.
물론 KBS 사장이라는 자리가 '법이 침투할 수 없는 공간'인 것은 아니다. 그 직을 유지할 수 없는 정도의 범죄행위를 저질렀을 때, 또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할 의지도 능력도 없이 권력의 주구 노릇을 하면서 방송편성에 부당하게 개입했을 때, 그는 KBS 사장의 지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유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권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가지지 않는다. 전자의 경우는 법원이 그 판단권을 갖고, 후자는 방송내부 민주주의의 장치와 여론이 그 판단권을 갖는다. 이 경우 왜 대통령은 개입해서는 안 되는가? 대통령의 개입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침해를 의미하고, 방송은 국가권력은 아니지만 대통령·국회·법원·헌법재판소에 의한 공권력 행사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사회적 권력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KBS 사장에 대한 해임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관영방송'과 '공영방송'의 차이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영방송은 '정권'의 방송이지만, 공영방송은 '국가'의 방송이자 '국민'의 방송이다. 관영방송에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말 자체를 갖다 붙일 수 없다.
4. 대통령은 누가 해임하나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고 단임이다. 대통령은 누가 임명하나? 헌법이나 법률 그 어디에도 이에 관한 언급은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혼자 알아서 그 자리에 들어가는가? 그렇지 않다는 데 쉽게 동의할 것이다. 대통령의 선출권은 국민(정확하게는 선거일 현재 19세 이상의 국민)에게 있고, 대통령을 선출하는 순간 국민은 정지조건부(임명권 행사의 의사표시는 하지만 그 효력은 대통령의 임기개시와 동시에 발생하는 것)로 그 임명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은 대통령의 선출권자이자 임명권자이다. 그렇다면 국민이 대통령을 해임할 수 있나? 대통령이 국민의 평등하고 직접적이며 비밀이 유지되고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서 선출되었다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이 그에게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것을 뜻한다. 즉,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취임할 수 있는 근거는 국민이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이다.
그런데 그러한 민주적 정당성은 선거 시에 한 번 받는 것으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다. 그러한 민주적 정당성은 임기 내내 이어가야 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를 가리켜 "민주적 정당성의 사슬(demokratische Legitimationskette)'이라고도 말한다. 가령 대통령이 그 권력행사와 관련하여 국민으로부터 한 자릿수 또는 1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면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헌법이론적으로 표현하면 그는 한 자릿수의 민주적 정당성 또는 10%대의 민주적 정당성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국민이 그를 해임할 수 있는가? 헌법이나 법률이 대통령 임명권을 국민이 행사한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으면 국민이 해임권도 행사할 수 있지만, 임명권에 관한 명문 조항이 없기 때문에 해임권도 행사할 수 없는가? 만약 민주적 정당성이 거의 사라져버린 사람이 계속 대통령직의 유지를 고집하고 있을 때 국민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이라도 청구할 수 있는가? 아니면 폭력이라도 행사해서 끌어내릴 수 있는가?
대통령이 KBS 사장에 대한 임명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해임권도 행사할 수 있다는 논리가 얼마나 어리석고 어처구니없으며 비법(非法)적인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5. 맺으며
방송의 기능을 단순한 뉴스 전달로만 국한해서 보는 견해는 없다. 방송은 매스 미디어이자 여론형성의 인자(Faktor der öffentlichen Meinungsbildung)이다. 헌법은 방송의 자유를 하나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그 속에 들어 있는 보도의 자유와 평론의 자유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방송의 자유에 대한 국가권력의 침해는 민주주의에 대한 침해이면서 동시에 기본권에 대한 침해이다.
KBS 사장을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해임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방송의 자유와 관련하여 중요한 헌법적 쟁점을 제기한다. 대통령이 KBS 사장을 해임하는 것이 합법적이고 정당한 것이 되려면 헌법의 민주주의와 방송의 자유 및 국민의 알 권리라는 기본권이 이를 용인해야 한다.
그러나 헌법은 대통령과 KBS라는 공영방송 또는 KBS 사장 사이의 관계형성을 KBS 사장 임명이라는 통로 외에는 전혀 허용하지 않고 있다. KBS와 KBS 사장의 임무영역은 대통령 권력이 전혀 침투할 수 없는 공간이다.
김승환/전북대 교수(법학)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기고] "헌법학자로서 작금의 사태에 죄책감이 느껴져…"
해임권한 없다 조회수 : 471
작성일 : 2008-08-10 16:33:32
IP : 116.120.xxx.75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해임권한 없다
'08.8.10 4:33 PM (116.120.xxx.75)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80718010...
2. ...
'08.8.11 3:16 PM (221.140.xxx.173)박정희, 전두환처럼 초헌법적, 초법률적 대통령을 21세기에 보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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