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 시청앞, 살수대첩
경찰은 살수차로 살수하고 시민은 소화전으로 살수하고,
2008년 6월 28일 밤 서울시청앞은 말 그대로 살수대첩의 현장이었다.
악몽같은 밤을 보내고 2시 쯤 집에 돌아와 인터넷 한시간 들여다보다
잠이 들었는데,
눈뜨고 보니 하늘은 너무 청명하고 세상도 조용하다.
공중파 방송 뉴스에선, 전쟁을 방불케 했던 시청앞 살수대첩에 대해
참 간단하게도 스트레이트 기사처럼 1-2분 훑어주고 지나가버린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본 어젯밤 현장이야기를 풀어본다.
막히는 길을 돌고돌아 5시 좀 넘어 시청에 도착했다.
시청 가는 중간, 아는 친구에게서 계속 문자를 받았다.
방송차량을 경찰측에서 빼앗아 지금 시작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을지로 쪽에서 시청앞 광장으로 들어서는데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다.
다가가보니 커다란 살수차 세대가 눈에 띈다.
경찰이 살수차를 시청광장 바로 앞에 밀고 들어왔는데 시민들이 모여들어
빼앗았단다. 차와 같이 왔던 병력들은 다 쫓겨갔고 운전사 한명씩만
문을 잠근채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몇몇 시민이 차를 두드리기도하고 스프레이를 창문에 뿌리기도 했지만
다들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경찰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광장 한복판까지
살수차를 끌고 왔을까.
그 의문은 곧 풀렸다.
도로를 바라보며 뭔가 좀 답답하다 싶었는데 보통 세종로 이순신 동상 뒤에 쳐져있던
경찰차 바리케이트가 프레스센터 앞까지 진출해 있었다.
경찰은 시청앞 도로를 따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끼고 긴 기역자 모양의 타원형 원을
그리는 상태로 경찰차를 둘러세워놓은 채 인도쪽만 길을 터놓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시청앞 도로의 중앙에
들어가서 경찰차로 방벽을 둘러친 것이었다.
나름대로 시위대를 조선일보 쪽으로 못가게 막고 광장주위로 몰아넣은 후
살수차로 진압하겠다는 계획이었던듯 하다.
그런데, 경찰 쪽에서 보면 시위대를 광장 쪽으로 밀어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수많은 인원이 그들을 에워쌀 경우, 독안의 쥐처럼 고립되는 형국이기도 했다.
바보같은 경찰!
그들은 대한민국의 SRM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독안에 든 쥐가 되어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오늘의 시위가 그토록 격해진것은, 고시강행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커진 탓도 있지만
전술적으로 경찰이 바보같은 판단을 한 까닭도 있다.
(바보같은 판단인지 야비한 계략인지는 모르지만!)
세종로나 안국동 등 경찰이 한쪽에 몰려있고 시위대가 반대편에 있을땐
전선이 하나로 모아져 어쨌든 그 좁은 전선앞에서만 뭔일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청앞 도로 전체를 전선으로 만들어놓고 시민들을 자극했으니,
그 긴 전선 앞에서 얼마나 많은 불상사가 일어났을것인가 말이다.
프레스센터 앞 경찰의 저지선 앞에는 가로 30미터 세로 10미터의 대형 천이 바닥에 놓여있고
커다란 붓을 든 몇 명이 그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명박의 얼굴이었다.
집회 말미에, 후방에 위치해 있던 이 그림을 시민들이 찢는 행사가 있었다.
대열의 앞쪽에 있던 나는 그 모습을 구경도 못했지만 통쾌한 순간이었다.
7가 되어 집회가 시작됐다.
7시쯤 사회자는 인원이 10만명 가량 된다고 했다.
사회자는 모두에게 핸드폰을 들며 불을 반짝이자고 했다.
우리는 모두 핸드폰을 들어 지인에게 집회참여를 독려하는 전화를 했다.
집회가 끝날 때 쯤, 참여자는 20만명으로 늘어났다고 했다.
집회는 평소보다 짧았다.
한시간 반 정도 자유발언과 노래등이 이어졌다.
공주에서 아이 셋을 데리고 올라온 유모차부대의 주부와
18일째 단식중인, 그리고 1040일째(?) 투쟁중인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발언이
인상깊었다.
8시 반, 청와대를 향한 행진이 시작됐다.
나는 안국동으로 갈 생각을 하고 을지로 쪽으로 빠지는 대열에 합류했는데,
종로까지 나온 대열이 다시 광화문 세종로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세종로쪽으로 전선이 만들어진것이다.
그런데, 행진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그러니까 시위대와 전경간에
대치가 벌어진지 몇분 되지도 않아 살수차가 물을 뿜기 시작했다.
이날 경찰의 목적은, ‘해산’이 아니라 ‘진압’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고 여자고 노인이고 그런건 눈에 뵈지도 않는듯 했다.
시작부터 어린아이들과 유모차까지 잔뜩 몰려있는 앞쪽에 대고 무지막지하게 물을 뿌
려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추가협상 이후 여론이 어느정도 호의적으로 돌아섰다고 판단한 이명박 정부는
그릇된 자신감에 차 있다.
내일이 되면 저들의 나팔수 조중동은, 폭도들에 대한 강경진압이었다고 나불대겠지.
나는 오른쪽에 치우쳐 인도로 올라와있었는데도 물세례를 흠뻑 받았다.
엄마아빠 손을 잡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물을 잔뜩 뒤집어 쓴 채 뛰어나오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였다.
하지만 이곳 상황은 시청앞 상황에 비하면 약과였다.
10시 30분 쯤 시청쪽으로 갔다.
살수대첩!
시청앞은 완전 물의 전쟁이었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 내가 지금 80년대 한가운데 서있는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었다.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비는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오락가락 하는데, 뜨거운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조선일보 쪽 살수차에선 쉴새없이 물이 쏟아졌다.
살수할 때 물의 각도라든가 하는 원칙같은건 찾아볼 수도 없었다.
시위대가 프레스센터 앞 소화전에서 소방호스를 끌어냈다.
무거운 호스를 수많은 남자들이 어깨에 짋어진채 줄을 섰고
맨 앞에는 젊은이 한명이 그 끝을 잡고 경찰쪽을 향해 들이댔다.
곧 살수차 못지않은 압력으로 물줄기가 뻗어나갔다,
시민들이 함성을 질렀다.
차라리 저놈들이 일본놈이나 오랑캐라면 맘 편히 기쁘기나 하겠다는 생각이
순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우리앞의 적들은 일본놈이나 오랑캐가 아닌, 우리의 젊은이들,
내 동생뻘인 전투경찰들이었다.
밧줄을 당겨 전경버스를 넘어뜨리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줄 당기는 사람들을 향해 머리위에서 쏟아지는 살수차의 물이 점점 거세어지고,
시위대쪽의 소방호스가 두 개로 늘어나고,
소화기가 미친듯이 뿜어져 도로가 온통 하얗게 뒤덮였다.
양쪽에서 물병들이 날아다녔다.
내 바로 앞에 있던 젊은 여자가 아령을 들고 뛰어왔다.
경찰 쪽에서 이게 날아와 바로 자기 발 앞에 떨어졌다는것이다.
주변에서 한숨과 욕설이 튀어나왔다.
저놈들이 사람 죽이려고 작정했나 외치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부상자가 속출한다고, 진행방송차량에선 계속해서 의무대를 찾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분위기는 격앙되어갔다.
이리저리 올겨다니다보니 대책위 방송차량 바로 옆에 있게됐다.
구호를 외치며 현장상황을 알려주던 진행자의 말투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너무 놀라 말이 안나오는것 같았다.
누군가 전경쪽에서 날아온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왔는데,
한쪽에 날선 톱이 달린 창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
여자 진행자의 목소리가 떨렸고.. 분노는 곧 너나할것 없는 모두의 외침으로 변했다.
살인경찰 물러가라!
이명박을 몰아내자!
자정이 다다올 무렵, 시의회 별관 쪽 골목에서 전력이 밀려올거라는 소리가 들렸다.
방송차량으로부터 그쪽으로 가 길을 막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시의회 쪽 골목으로 옮겨갔다.
나도 영감의 손을 잡고 골목안쪽으로 갔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자정 쯤.
먼저 큰길 쪽에서 일단의 전경들이 함성을 지르며 몰려나왔다.
그 기세에 시위대가 놀라 뒤로 흩어졌고 중앙에 있던 시위대들 중 일부가
몰려나온 전경들에게 잡혀 얻어맞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곧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몰려들어 이들을 잡아떼어냈고,
오히려 전경들이 포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대로에 방패소리 비명소리가 넘쳐났다.
그러나 곧 시의회 골목 쪽에서 수많은 전경이 몰려나오기 시작했고,
시청앞 대로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도가니에 빠져버렸다.
전경들은 살기가득한 기세로 달려나와 마구잡이로 시위대를 잡아챘다.
나는 도망가다 한쪽 담벼락밑으로 몰렸는데 옆의 할아버지가 이마에 피를 흘리며
다가왔다. 손을 치우고 보니 이마가 15센티미터 정도 찢어졌고
살이 벌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급하게 손수건을 대어드리고 의무대를 찾았다.
곧 십자완장을 찬 의무대가 와 붕대를 매드렸다.
어찌하다보니 나 있는곳이 의무대의 간이 아지트가 되어버려
순식간에 수많은 부상자가 들어왔다.
의무대의 부탁으로 119에 전화를 했지만 차가 진입하지 못해 들어갈 수 없다며
환자가 시청후문까지 와야한다는 것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걸어서 엠블런스있는곳으로 가셨지만
다음부터 들어온 환자들 가운데는 걸어서 차까지 갈 수 없는 사람이 더 많았다.
주로 머리가 찢어진 사람들이었다.
방배에 찍히거나 곤봉에 맞아서 그런것 같았다.
젼경 한명도 시민들의 부축을 받고 왔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외상은 없는데 어지럽다는 것이었다.
겉옷과 보호장구 벗는걸 도와주며 얼굴을 내려다봤다.
20살 갓넘은 청년인데, 그러고 앉았는게 불쌍해 이마를 짚어줬다.
이마가 차가왔다.
그 자리에 더 있다가는 내가 쓰러질것 같아 그곳을 나왔다.
그런데 몇발자국 가지 않아 또 내 앞에서 어느 아저씨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마치 술취한 사람처럼 천천히 눕길래 다가가 물었다.
어디 아프시냐는 물음에 그냥 힘이 들어서.. 라며 말을 흐린다.
겉으론 상처가 없길래 탈진인가 보다 하고 부축해 한쪽 벽에 뉘이고 의무대를 찾았다.
그런데 잠시 뒤 다가온 젊은 의사가 급하게 들것을 가져다달라고 외친다.
머리 뒤쪽이 많이 부었고 몸을 잘 못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러자 곁에 있던 다른 아저씨가 외쳤다.
그 아저씨 아까 전경들한테 머리를 엄청 두들겨 맞았어요!
아저씨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 채 다시 그곳을 나왔다.
지옥속을 헤매는것 같았다.
대로에는 여전히 전경들이 날뛰고 사람들이 도망치고 넘어지고 있었다.
몇발자국 옆에서 벌어진 일들이 언제든 나에게 다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무섭지도 않고 겁나지도 않았다.
그냥 꿈속에서 지옥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게 뭔가, 이게 도대체 뭔가.
내 생존에 관계된 권리를 찾겠다는 국민들에게, 이게 무슨 짓인가.
이명박은, 이러고도, 대통령직을 계속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늘 여기 온 사람들이 20만명이다.
아프리카로 이 상황을 지켜보는 네티즌은 수백만일 것이다.
이 많은 국민을 상대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여놓고,
그는 그 자리에서 무사할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느새 상황은 변해서 광장도로를 전경들이 다 접수했다.
시위대는 한쪽으로 밀려 덕수궁부근까지 흩어져있었다.
1시가 넘었고... 상황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나는 자리를 떴다.
전경이 몰려나오자 갑자기 박차고 뛰어나가 가열차게 몸 푼 영감이
몹시 피곤하다며 주저 앉았기 때문이다.
몸이 예전같지 않아...를 주절거리며 집으로 왔다.
오늘, 시위대의 감정이 어느때보다 격앙되어있으리라는건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시위하는 자신들도 알고 경찰도 알고 이명박도 알았을것이다.
그런데 경찰은 조선동아 쓰레기 신문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앞장서서 시청앞 일대를 전장으로 만들어놨다.
그건, 내가 보기에 어느정도 의도적인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도, 두고보자는 심산이었을것이다.
내일아침, 월요일 조간이 뿌려지는 시간부터 저들은 외쳐댈것이다.
도를 넘은 폭도들의 난동,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폭력,
강경진압으로 몽땅 쳑결하겠다.... 뭐 이런 개소리들.
그래, 속 들여다보이는 작전으로 계속 나가라.
그렇게 계속 밀고나가다가, 너희는 아마도 곧 큰 파도를 만날 것이다.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국민저항의 거대한 해일을 만날것이다.
잘못 선택된 정권이 어떻게 국민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지,
똑똑히 보게 될것이다.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6월 28일 시청앞, 살수대첩
오디헵뽕 조회수 : 468
작성일 : 2008-06-29 19:02:18
IP : 125.128.xxx.78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정말
'08.6.29 7:04 PM (116.42.xxx.53)살수대첩이였지요...끔찍합니다.
2. mimi
'08.6.29 7:04 PM (61.253.xxx.187)참.....이런 전쟁터속에서.....이렇게 돌맞고 머리깨지고 방패로 찍혀서 부러지고 찢기고하면서도 노래부르고 율동하면서 그래도 즐겁게 시위를 만드는모습은 정말 눈물나게 아름다워보여요~~ 어느나라 시위대가 이런모습일까.....
3. 이긴다.
'08.6.29 7:11 PM (125.187.xxx.16)살수대첩.... 눈물 납니다. 꼭 이깁시다.
4. ...
'08.6.29 7:17 PM (117.123.xxx.97)정말 죄송합니다. 지방이라고 일찍 돌아와서 달게 자고난 저.. 부끄럽습니다.
5. 미네르바
'08.6.29 7:30 PM (123.143.xxx.18)아 정말 너무나 화나는 군요
6. ㅠㅠ
'08.6.29 7:41 PM (118.216.xxx.41)새벽에 '바위처럼'노래부르면서 엉덩이 흔들며 율동하던 모습보고 울컥 했습니다.
정말, 어느나라시위대가..7. 아찔
'08.6.29 7:48 PM (125.177.xxx.47)살수를 무려 네시간 넘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우르르~~~ 뛰쳐나와 때리고 난리도 아니었죠..8. 새미
'08.6.29 7:53 PM (221.142.xxx.201)그대로 복사해서 아는 분들께 돌리려구 합니다. 이젠 인터넷을 안 보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널리 알리려구 해요. 오디**님 괜찮죠?
9. 어휴...
'08.6.29 8:55 PM (116.125.xxx.208)다치신 분들...정말 걱정되네요...어쩐대요...ㅠㅠ 영감님이랑;; 수고많으셨어요.....감사합니다...
10. 눈믈나요
'08.6.29 9:54 PM (116.41.xxx.234)생방송만 보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제발 다친 분들 빨리 회복되셨으면 하고 어제 현장에 계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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