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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 세개

며느리 조회수 : 1,142
작성일 : 2007-09-27 15:51:49
추석행사 끝나고 가족들이 한시간 거리의 콘도에 놀러 가 1박 2일을 지내고 왔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모니고 사는 둘째 며느리이거든요.

형님과 아주버님은 추석 당일 아침 바쁘다고 가버리시고
직장 다니는 저는 휴일이 아니라 노동일만 남은 셈이고 해서 답답하긴 했지만
며칠 보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남편이 우리 너무나 오래 가족이 같이 시간을 못 썼다고 하루 나갔다 오자고 했습니다.
대입 준비하는 딸과 곧 군대 가는 아들과 늦둥이 막내 까지...

어머님과 같이 가는 것을 저는 반대하지는 않지만 원래 공주과 이시라
최고급이 아니면 같이 다니기도 싫어 하시거든요.
어머님도 굳이 같이 가실 생각이 없으시다고 해서 급히 짐을 챙겨 나왔습니다.


어머니께 쇠고기며 다른 반찬이 어디 있다고 말씀드리고.
(저 시집온지 20년이 넘는데어머니 음식솜씨 모르거든요. 말로만 하셔서.... 음식하는 것을 못봤습니다.  음식을 하시지는 않아도 아침정도는 혼자서 해 잡수시니까 별 걱정을 안했습니다.)

어젯밤 돌아오니 집안에 음식 쓰레기 냄새가 가득하고 설겆이  통도 컵으로 가득했답니다.
빈 컵라면 세통이 나란히 쌓여 있고....

음식하다가 태워버린  냄비 세개와 국그릇, 밥그릇 상한음식이 들어 있는 반찬통,
분리수거도 안하고(바퀴벌레 나올지도 모른다고 쓰레기통 근처까지도 안 가십니다.)
놓여 있는 만 하루 동안의 어머님의 자취를 보니 참 착잡하더군요.

어쩌면 이럴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아침에 한시간을 청소했습니다 부엌만.)
늙으면 저렇게도 귀찮아 지나하는 생각에 측은하기도 하고그랬습니다.

우리어머니는 원래 밥물도 못 마춘다고 하시고 손을 까딱안하십니다. 20년 전부터.
그런데 제가 음식을 해좋으면 음식 타박을 하시거든요.
일껏 공드려 해 놓고 다른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면
"이거 별거 아니다.하기도 쉽다. 원래는 이렇게 하는게 아니다."
하고 제 마음에 돌을 던지시는 분이시지요.  
우리 남편 녹두 빈대 떡을 저하고 결혼하고 처음 맛을 알았다고 하는 것 보면
뭐 명절때도 음식을 안 해 보신 것 같더라구요.
식혜도 안 해 보셨고, 수정과도 안해 보셨고....

우리 어머니는 형님한테 제가 우리집 공주라고 하셨답니다.제가 좀 아프거든요.
갑상선도 안좋고 우울증약도 먹고  최근에 종양 수술도 했고.


하여간 저는 어제 참 착잡했습니다.
"명절에 어머니를 두고 나가서 컵라면만 잡수시게 했구나!"하는 착한 며느리 컴플렉스와
그리 깔끔한척하시고 제방 서랍까지 뒤집어 놓아야 속이 시원하신 분이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왔다갔다 합디다.

판단은 유보하고 딸아이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고.
내가 할수 없을 때 무조건 다른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자신의 방식으로 해내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늙으면 힘들고 서럽겠지만 (저도 늙어가는 나이입니다.)
그래도 자기 한몸 주변을 처리하는 것이
동창회 모임에는 가도 사돈 장례식에는 안가는 식의 자기중심주의는 대접을 받을 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시어머니가 동창회는 꼭 가셔도 다리가 아파서 운동도 못한다고 하실때
우유도 못 데워 먹겠다고 하실 때
친구들과 전화로 몇시간씩 수다는 떨어도 귀찮아서 아이한테 옛날 이야기한번 해주지 않으시는 것을 볼때
동정이 안가는 것은 제가 며느리이기 때문은 아닌것 같습니다.

정말 나이 들어서 수족이 불편하면 나 자신을 위해서 입은 닫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또 한번 해 봅니다.
IP : 203.230.xxx.110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청웅사랑
    '07.9.27 4:21 PM (61.39.xxx.200)

    헉-_-;;

  • 2. 어이쿠
    '07.9.27 5:06 PM (203.170.xxx.99)

    강적 시어머니시다...

    힘내세요..ㅜ.ㅜ

  • 3. 흠..
    '07.9.27 5:14 PM (125.186.xxx.134)

    저도 우리 친정 아버지 돌아가셨을때 어머니 안오셔서 마음속에 서글픔으로 남아 있네요.
    차로 15분 거리였는데 말이죠.

    사람 맘이 치사해 지는게 그 서러웠던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어 나도 그렇게 해 주리라하는 유치한 생각이 들더군요.. ㅜㅜ

    그래도 원글님 시어머니 같은 분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또 한편으로는 드네요..

  • 4. ..
    '07.9.28 2:05 AM (222.235.xxx.67)

    님이 우울증약을 왜 드시는지 알 것 같네요..
    근데 문제는.. 그 어머님이 앞으로의 20년도 그렇게 계속 가실 수 있단 말씀이지요...
    님의 현재의 문제는 울엄마가 20년 전에 안고 있었던 문제거든요. 20년 이후인 지금도 상황은 똑같죠. 울 할머니 내년에 백살... -.-;;; 엄만.. 내년에 칠순이신데.. 정말 어찌할 지를 모르겠어요.

  • 5. 그런말이
    '07.9.28 1:56 PM (211.107.xxx.98)

    있지요..

    나이들면서 지갑은 열고, 입은 굳게 닫아야 사람대우 받는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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