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예전에 하이텔 시사랑(poem)에 올렸던 연재글 [독서노트]를 하나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 글은 제가 읽은 책 가운데,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소개하여, 즐거움을 나누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언급되는 책은 저의 관심사와 기호 범위 내의 것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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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01] 김은국의 소설세계
안정효씨의 경우는 하얀 전쟁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영어로 발표한 소설을 다른 사람이 우리말로 번역해서 보게 된 경우가 있다. 김은국, 미국에서의 필명이 Richard E. Kim인 그는, 우리나라보다 미국 문단에서 더 알려진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한국의 근세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주제에 있어서는 인간의 실존 문제 - 인간이 놓인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 - 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아서인지 그의 작품이 대중적 인기는 없지만, 까뮈나 싸르트르의 소설에 못지 않은 훌륭한 작품들이다. 일독을 권한다.
순교자 (원제:The martyred)
6.25 전쟁을 배경으로, 종교와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통해 인간이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소설에는 목사들의 순교 사건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데, 결국 밝혀진 것은 배교하면서 "개처럼 살려달라고 애걸하면서" 죽어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한국어판 발표 초기에는 보수적인 기독교 측으로부터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고, 일반인에게서는 종교소설로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순교라는 문제는 단지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김은국씨는 서울대 영문과 재학중 6.25가 발발하자 군에 입대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그의 전쟁 경험이 주인공의 모습 속에 많이 반영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 읽은 것은 삼중당에서 나온 세로쓰기로 인쇄된 것이었는데, 최근에 을유문화사에서 다시 번역된 것보다 어쩐지 더 글맛을 느끼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심판자 (원제:The Innocent)
순교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대부분 그대로 등장하기 때문에, 연작으로 착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은 전혀 별개의 작품이다. 5.16 군사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이상주의자와 그 이상을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반 이상적인 모순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내용 전개가 마치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소설처럼 빡빡하게(하드보일드) 전개되기 때문에, 한번 잡으면 끝까지 놓지 못하는 재미도 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74년에, 노란색 문고본을 발행하던 삼성문화재단에서 번역 출판한 이후로는, 다시 출판한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보려면 대학 도서관에서 빌리는 방법이 제일 좋으리라 생각한다. 필자에게는 순교자와 함께 인생의 전환점이 된 소설이다.
잃어버린 이름 (원재:Lost Name)
앞의 두책과 달리, 잔잔한 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소년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여준다. 여기서 "잃어버린 이름"이란 창씨개명으로 하여 빼앗긴 이름을 말한다.
20년 전 시사영어사에서 영문판과 번역판을 낸 후에, 최근에는 을유문화사에서 번역판을 냈다.
[노트 02] 엔또 슈샤꾸의 소설세계
일본작가 엔또 슈샤꾸는 카톨릭 신학을 전공한, 쉽게 말하자면 신부 지망생 이었던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이 점을 이해하면, 그의 대다수 작품의 배경이나 주제가 기독교라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전문가 적인 식견을 갖춘 것에 대해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오해의 소지를 없에기 위해 밝히자면, 필자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그의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매우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 일반인이나 진보적인 신앙의 독자는 "종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극찬하는가 하면, 보수적인 신앙의 소유자라면 "반 기독교적"이라고 한다. 필자도 [침묵]을 읽고 나서, 그 책이 성베드로사에서 출판된 것에 대해 한동안 어리둥절했던 걸 보면, 그의 소설은 분명 그런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우선 우리나라에 번역된 소설의 제목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위대한 몰락'을 비롯한 몇권의 책이 더 있지만 소개를 생략한다.)
침묵
우리나라처럼 일본도 개화기에 천주교 박해사건이 있었는데, 침묵은 이 사건을 배경으로 "신은 인간의 고통에 대해 왜 침묵하고 있는가?"라는 다분히 종교적인 질문을 던진다.
페레이라 라는 선교사가 지하선교 과정에서 겪는 인간적 갈등과, 기이찌로 라는 일본인 배교자의 내적 갈등이, 읽는이로 하여금 그들과 같은 갈등을 일으키게 한다. 그러면서도 하드보일드한 전개가 책의 마지막 장까지 붙잡게 만든다. 책장을 덮는 순간, 답은 얻을 수 없다. 단지 인간과 종교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만이 떠오를 뿐.
엔또 슈샤꾸의 책 가운데 이책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그의 후작들은 [침묵]에서 던지는 질문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생애, 그리스도의 탄생
마치 신학서적을 연상시키는 제목 때문에 일반인으로서는 선뜻 손에 잡기가 어렵지만, 사실은 대단히 재미있는 소설이다. 전자는 말 그대로 예수라는 인간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후자는 그렇게 살다 간 예수라는 인간이 어떻게 해서 신앙의 대상인 그리스도로 탄생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신학을 전공한 작가의 성서 지식에, 성서의 행간에 대한 추리가 덧붙여져, 소설로서의 재미도 쏠쏠하다. 세 권 모두 홍성사에서 나온 게 있으므로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 외 "사해 주변"(홍성사. 성바오로출판사에서는 "사해 부근에서"로 번역되었다.)과 소설로서 "여자의 일생", 위대한 몰락"(둘 다 홍성사 발행)이 있다.
[노트 03] 하드보일드 타입의 추리소설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흔히 셜록 홈즈나 아가사 크리스티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 소설들은 사건을 트릭을 얽은 재미는 있지만,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나 갈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제부터 소개하려는 하드 보일드 타입의 추리소설은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그런 류와는 격이 다르다.
우선 "하드 보일드(Hard Boiled)"라는 말의 원래 뜻은, 달걀을 완숙한 것처럼 빡빡하다는 뜻이지만, 소설의 성격을 말할 때는 "줄거리와 전개가 꽉 짜여진" 정도로 해석하는 게 적당하겠다. 그래서 한 번 잡으면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손을 못 놓게 만든다. 한마디로 재미가 있다. (앞의 연재에서 언급한 김은국이나 엔또 슈샤꾸의 소설은 추리소설이 아니지만 하드 보일드 타입이라 할 수 있다.)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사건의 전개가 복잡하고 등장 인물이 많은 편이라, 속된 말로 머리를 굴리면서 읽어야지, 건성으로 읽었다가는 재미는 커녕 무척 지루한 소설로 여길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지적 유희를 즐기는 독자에게 적당한 소설이라고나 할까. 일단 여기에 빠져들면 어지간한 추리 소설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는게 또 다른 단점이라면 단점.
혹시 문학성을 따지는 분이 있을까봐 연막을 치자면, 여러분이 잘 아는 "장미의 이름"이나 "영원한 제국"도 하드보일드 추리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명작이라 꼽히는 작품들은 문장의 맛도 훼밍웨이를 능가할 정도다.
이 분야에서 최고의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프레드릭 포사이드 이다. 그의 소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소재로 하는 게 특징인데, 작가의 치밀한 조사 때문인지는 몰라도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그의 작품을 들자면, 교황 암살을 다룬 "쟈칼의 날", 원폭으로 영국 상원 선거를 소련의 의도대로 끌고 가려는 음모를 다룬 "제4의 공포"(원제는 The Fourth Protocol. Proprotocol은 약조를 다룬 의정서 라는 뜻과 통신규약 이라는 두가지 뜻을 갖고 있는데. 둘 다 소설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나찌 잔존 조직을 추적하는 "오데사 파일", 소련미사일로 인한 KAL기 추락사건을 다룬 것이 있는데 책 제목이 생각 안난다.
아프리카 소국가를 용병으로 전복하려는 기업의 음모를 다룬 "전쟁터의 개들" - 필자는 이 작품을 그의 최고작으로 여긴다.
이 분야는 프레드릭 포사이드 외에도 많은 작가와 작품이 있어서, 50여권 정도는 꼽아야 하겠지만, 일단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작품으로 시작하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사건, 인물, 구성 등이 치밀하고 문학성도 뛰어나기 때문에, 추후 다른 작품을 읽을 때 지표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의 작품들은 추리문고(출판사가 기억 안남)에도 있고, 대작사에서 나온 "김성동 선작 세계추리소설 걸작선"이 있는데 후자를 권하고 싶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들어있는 "붉은 광장"을 최고의 작품으로 - 프레드릭 포사이드를 능가하는 작품으로 - 여기고 있다.
읽을 책을 선택할 때는작가나 작품의 수상 경력을 참고하면 크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노트 04]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
제목은 그럴 듯 하게 붙였지만, 실은 중국 현대사의 한 조각을 이해하기 위한 책의 소개에 불과하다.
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호우잉 저, 신영복 번역, 다섯수레)
이 책은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적 격동속에서 사랑과 우정, 이상과 신념이 어떻게 변해 가는가, 어떻게 껍질을 깨고 자라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작가 자신의 통절했던 체험을 통해 건져낸 인간상을 통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보여주는 애잔한 소설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쓴 신영복 교수가 번역했다.
각 장이 사람이름으로 되어 있는데, 각 사람이 자기 입장에서 글을 쓰는 특이한 형식(각인칭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처음 몇사람의 얘기는 영문을 잘 모른 채 읽어가게 되지만, 그 후로는 조각그림을 맞춰가면서 읽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좋은 시 열편을 읽은 듯한, 맑고 애잔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며,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교재로 권하고 싶은 책이다.
대장정 (해리슨.E.솔즈베리 저 범우사)
미국의 지원을 받는 장개석 군에 의해 밀려, 인류최장의 퇴각전(?)을 벌인 중국공산군의 장정에 대한 소설형식의 기록이다. 모택동이나 주은래 등의 혁명 1세대 들의 열정과 고난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로마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은 분이라면 흥미롭게 볼 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중국과 현대 중국에 대한 밑지식을 갖추는 데도 좋은 책이다. 지식도 지식이지만 재미있는 책이라서 권한다.
닥터 노만 베쑨 (테드알렌 저, 실천문학사)
신민주주의 혁명과 항일투쟁의 최전선에서 몸바쳐 싸웠던 카나다 의사 노먼 베쑨의 일대를 그린 책이다.앞에 소개한 대장정에 참여하여, 조국인 카나다로부터는 공산주의자로 매도되면서도, 자신의 신념에 의한 의료활동을 편 그의 행적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하긴 초기의 공산주의자들을 보면 이상주의자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는게 필자의 생각인데, 노먼 베쑨을 보면 순수한 이상주의자를 보는 듯 하다. (이런 모습은 레즈 라는 두 편으로 된 비디오를 통해서도 볼 수 있었다. 일반 비디오샵에는 거의 없고, 영화마을 체인점에 가면 구할 수 있을 듯)
[독서노트 05] 환경과 자연
80년대 전반기까지의 화두가 정치였다면, 그 이후의 화두는 환경이라 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면서 황폐화 되어감을 실감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오래된 미래 - 부제:라다크에서 배운다 (헬레나노르베리 저. 녹색평론사)
이 책은 언어학 공부를 위해 라다크를 방문했다가 그곳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매료돼 장기 체류하게 된 한 스웨덴 출신의 여성학자의 '라다크' 현장 보고서다.
라다크 사람들이 누리는 만족과 평화의 본질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친밀한 관계의 산물'로 파악하고 있다. 산업문화야말로 인류에게 주어진 최대의 저주이며 서구식 산업주의를 극복 할 수 있는 대안적 개념으로 '반 (反)개발'을 주장한다. (책 제목 "오래된 미래"는 "우리의 미래는 자연과 일치하는 전통의 방식에서 찾아보자"는 뜻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60년대 농촌 풍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필자로서는, 마치 필자가 살던 청계산 밑 저푸리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환경서라는 점을 제외하면 한편의 장편 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재미있고. 녹색평론사는 계간 녹색평론을 발행하는 곳인데, 책 발행에 재생지를 사용하며 표지에 비닐 코팅도 안한다. 미색지와 고급스런 장정에 길들여진 독자들은 내용과 함께 출판인의 의지도 읽으시기를.
식물의 정신세계 - 부제:식물도 생각한다 (피터 저. 정신세계사)
식물이 자신을 아끼는 사람과 해꼬지하는 사람을 구분한다면 믿겠는가? 이 책은“식물도 생각하고, 느끼고,기뻐하고, 슬퍼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전세계 연구자들의 실험 결과와 방대한 문헌에 입각해서 식물의 사고력, 감각과 정서, 초감각적 지각 등에 관해 자세히 논하고 있다.
소설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는 않으나, 읽고 나면 풀이나 나무를, 심지어는 먹는 음식 (곡식이나 야채)을 보는 눈마저 달라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막연히, 또는 관념적으로 나무와 대화한다는 말을 사용했던 사람이라면, 그것이 실제한다는 것을 배울테니까.
[노트 06] 일본과 문화를 보는 눈
전여옥씨가 쓴 [일본은 없다]를 흥미롭게 봤다. 그 이전의 책들(예를 들면 이어령씨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같은 책)이 "일본은 밉지만 일본으로부터는 배울 것이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책은 마치 "No 라고 말하는 한국인"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책들이 근본적인 면모보다는 겉 거죽을 핥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일본에 대해 좀더 깊이있게 알려면 아래의 두 책을 권한다.
한국인과 일본인 -부제:붓과 칼 (김용운 저)
한양대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계신 김용운 교수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랐던 분이라서 그런지 일본을 제대로 알고 있으며, 치우침 없이 보고 있다.
이 책은, 무사문화(칼)의 일본과 선비문화(붓)의 한국 두 나라의 외형적 차이점과, 고대.중세때 단일 문화권을 형성했던 한일 두 민족이 오늘날 이질성을 나타내기까지 그 근원 및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이십년전 민속학을 공부할 때 뿌리깊은나무에서 나온 책으로 봤는데, 다음에 소개할 [국화와 칼]에서 보지 못한 면들을 제대로 보게 해준 아주 고마운 책으로 기억한다. 또한 우리 문화와 일본 문화를 대비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비교문화적인 입장에서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기회가 되었다.
얼마 전 교보문고에 들렀을 때, 한길사에서 네권으로 다시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책을 발견한 곳은 팔리지 않은 책을 할인판매하는 코너였다. 필자가 읽은 일본 문화 관련서로는 최고로 꼽는 이 책이.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저)
맥아더 사령부가 일본에서 군정을 펼때다. 미국인으로서는 일본인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에게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대한 연구를 의뢰하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필자가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 책이 완전히 객관적 입장이라 생각했는데, 후에 김용운 교수의 [한국인과 일본인]을 읽고 나니, "아 미국인의 관점에서 일본을 본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점에 대해서는 베네딕트 여사도 노년에 자신의 실수였다고 인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상당 부분 그 관점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내 관점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저명한 문화인류학자가 한 민족을 대상으로 연구한 대표적인 저서이기 때문이다.(역사학에서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기초 필독서인 만큼 이 책은 문화인류학에서 기본적인 필독서로 꼽힌다)
둘째는 책 외의 문제인데,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도 그만큼 이해하려 했다면 우리의 근대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필자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미국에게 우리는 알아볼 가치조차 없었던가?"라는 의문을 강하게 품었다. 물론 이런 생각은 70년대의 정치상황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노트 07] 생활 공간과 심리적 공간의 이해
이번에 소개하는 책들은 앞의 연재에 소개한 소설과 달리, 흥미진진한 재미는 없겠지만, 문화를 보는 눈을 키우기에는 적절한 책이라고 생각하여 일독을 권한다.
뭔가 감은 잡히는데, 꼭 집어서 "이거다"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번 연재에서 다루는 공간학이 필자에게는 그러한 대상이다. 그래서 네개의 예문을 먼저 들겠다.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커피를 마시는 한 쌍의 남녀가 보인다. 그들은 나를 볼 수 있고, 나는 그들을 볼 수 있지만, 그들은 마치 나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다정스레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유리창이 없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넓은 곳과 좁은 곳에 같은 수의 쥐를 넣어두고, 양쪽 다 먹이를 충분히 주었을 때 어느 쪽 쥐가 잘 자랄까? 공격성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러면 이 실험결과를 사람에게 적용시킨다면?
일본의 노오나 중국의 경극은 무대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탈놀음은 무대가 없는 평면(마당)이다. 무대라는, 관객과 배우의 공간적 분리장치는, 관객의 개입 여지를 차단하지만 그 대신 극적 구성을 짜임새 있게 가져가며, 따라서 배우를 전문직으로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 우리나라의 탈놀음이 극적 구성이 느슨한 반면, 즉흥적인 요소가 많게 된 데는 이러한 공간적 요소가 작용되었다.
탈을쓰고 양반을 욕한다고 해서 누구인지 몰랐을까? 그렇지만 일반 생활에서와 탈놀음의 상황은 양반들도 구분해서 받아들일 줄 알았다. 물리적으로는 두 공간(탈의 안과 밖)을 나눴지만, 심리적으로는 나눠진 공간(이질감)을 해소하는 구실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탈은 얼굴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라 마음을 여는 도구로 작용했다.
여기서 말하는 공간은 물리적 공간 뿐 아니라 문화적, 심리적 공간까지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것이어서, 건축학도가 배우는가 하면 미학의 일부로 다루는 것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서 필자와 같은 비전공자가 함부로 언급하기는 곤란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다음의 두 책은 일반인이 충분히 소화할 만한
공간학 입문서이고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 주저없이 권한다.
공간학에의 초대 (아끼야마다까노리 저, 전파과학사, 2500 원)
보이지 않는 차원 (E.T.Hall 저, 세진사, 11000 원)
이 책들은 공간이(또는 우리가 갖고 있는 공간 개념이)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며, 그에 따라 인간의 행동과 사고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선 위의 두 책이 구하기 쉬운 것이니 한번 읽어보시도록.
[노트 08] 역사를 재미있게 읽는다
역사라는 게 어떻게 보면 딱딱하지만, 책만 잘 만나면 무척 재미있는 분야 같다. 원래 제시한 원칙에서는 잘 알려진 책을 피한다고 했는데, 이번 글은 할 수 없이 잘 알려진 책들로 채운다.
먼나라 이웃나라 (김윤복 저, 고려원, 전6권)
유럽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만화책. 김윤복 교수가 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통해 알게 된 여러 지식(역사와 문화의 배경, 민족성 등)이 재미있게 녹아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볼 수 있다. 만화책이라 읽기도 쉽지만 내용이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다.
세계사 편력 (네루 저, 일빛)
인도 독립을 이끈 네루가 인도 형무소에서 딸에게 편지로 들려준 세계사 이야기. 서양인의 눈을 벗어나 나름대로의 역사와 인생을 보는 눈을 길러주려는 네루의 생각과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로마인 이야기(시오노나나미 저, 한길사)
필자는 벤허나, 쿼바디스 등의 영화를 통해서나 로마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였는데, 이 책을 보고 나서는 생각이 대폭 바뀌었다. 우선 서양사의 주축이 되는 로마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접할 수 있었고, 로마의 성장사를 통해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다.
[노트 09] 양식비평을 아세요?
A. 연인간의 전화에서 "당신을 사랑해요" 했더니 상대방이 "알았어요" 라고 대답했다.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십중 팔구는 이렇게 되지 않을까?
"뭐라고? 사랑한다니까 고작 한다는 말이 '알았어요'야? 다시는 내게 전화도 하지마(쾅)"
사랑한다고 해서 알았다고 했는데 뭐가 잘못되었을까?
B. 두 개의 선전문을 보자.
1. 소화제는 위에서 녹는 것과 장에서 녹는 것이 있습니다.
훼스탈은 위와 장에서 녹는 소화젭니다.
2. (편지지 위에 쓴 글로) 철이엄마 요즘 날씨가 무척 쌀쌀해 졌죠? ....
판피린 에프.
1은 정보인가 광고인가? 2는 편지인가 광고인가?
우리는 알고 모르는 사이에 여러 가지 양식유형(Form)을 접하게 된다. 시나 소설, 편지, 독후감 등도 그러한 양식 가운데 하나이며,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은 양식에 따라 기대치가 달라지게 된다. "엣날에 옛날에~"로 얘기를 시작하면 '지금부터 옛날 얘기를-사실이 아닌 허구의 양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며, 괴기소설이나 추리소설을 대할 때는 긴장하게 된다.
이처럼 여러 양식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를 양식비평학이라고 하는데, 일반 문학에서 다루는 경우는 못 보았고, 성서를 연구하는 방법론의 하나로 소개되어 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일반인이 접하기 쉬운 번역 입문서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의 대부분을, 양식비평적 관점으로 성서를 분석한 예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자가 아닌 경우에는 거리감과 함께 책값의 상당 부분을 손해본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이 책이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공부해둘 만한 책이라는 점과, 내용이 쉬우며 구성이 재미있게 되어있기 때문에 보기가 쉽다는 점이다. 필자의 경우는 구비문학을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을 모색하던 중 이 분야를 접하게 되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지식은 나중에 여러 모로 유용했다.
당신은 성경을 어떻게 이해 하십니까? (G. 로핑크 저, 분도출판사)
일반인의 경우에는 앞부분 80여 페이지만 봐도 개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절대 겁 먹지 말것.
답A : 정보일 경우에는 "알았다"는 말이 대답이 되겠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고백이다.
고백의 양식은 고백으로 대답해야 한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고백을 정보로 혼동하면 엄청난 불행이 일어날 수 있다.
답B : 둘다 광고다. 다만 정보를 가장한, 편지를 가장한 광고일 뿐이다.
왜냐 하면 사용 목적이 광고이기 때문에.
* 이 책을 보다 보면 잘 모르는 말이 딱 한개 나오는데 설명이 안되어 있다.
현현설화 : 천사나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가 형상으로 나타나는 장면이 들어있는 설화.
* 양식비평은 후에 편집비평, 구성비평 등에 의해 수정과 보완을 거치게 되는데, 이는 너무 전문적이라 소개를 생략한다.
[노트 10] 동화쓰는 큰어른 권정생
아이들을 좋아하는 필자는 한 때 동화를 쓰려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창작과비평사에서 낸 아동문학 평론집 [시정신과 유희정신(이오덕 저)]을 보았는데, 거기에는 치열한 현실인식의 시정신으로 씌어진 작품과 재롱떠는 식의 유희정신으로 씌어진 작품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었다.
그 책에서 시정신의 작가로 권정생님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었기에, 그 분의 동화집 강아지똥(당시 세종문화사 발행)을 구해 읽었다. 그 때의 놀라움이란 - 그 책은 아동문학도 이런 세계가 있구나 하는 정도를 넘어서, 내게 글쓰는 태도와 삶에 대한 자세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후에 권정생님을 수차 접하면서 그의 글과 삶이 다르지 않다는 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필자는 여지껏 살아오면서 큰 스승으로 삼는 분이 둘인데, 신학연구와 삶을 일치시키신 고 안병무 님과 여기 소개하는 권정생님이다.)
강아지똥 길벗어린이 6800
게으름뱅이 (외) 사계절출판사 3000
금강산이야기 (외) 사계절출판사 3000
깜둥 바가지 아줌마 우리교육 6000
남북어린이가 함께 보는 전래동화 사계절출판사 3000
내가 살던 고향은 웅진출판(주) 5000
눈이 되고 발이 되고 국민서관 7000
떠돌이 다섯사람 (외) 사계절출판사 3000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외) 창작과비평사 2500
모자를 쓰지않는 역장외 (외) 금성출판사 6000
몽실언니 창작과비평사 3000
무명저고리와 엄마 다리 5500
바닷가 아이들 창작과비평사 2200
병풍속의 호랑이 (외) 사계절출판사 3000
부채귀신 잡은 이야기 (외) 사계절출판사 3000
사과나무밭 달님 창작과비평사 2500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지식산업사 5000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 종로서적출판 4000
오소리네 집 꽃밭 길벗어린이 6000
우리들의 하느님 녹색평론사 5000
점득이네 창작과비평사 2500
짱구네 고추밭소동 웅진출판(주) 4000
초가집이 있던 마을 분도출판사 4500
팔푼돌이네 삼형제 현암사 2800
하느님의 눈물 산하 3000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 산하 4000
한티재하늘 1,2 지식산업사 7500
할매하고 손잡고 올바름출판사 3200
훨훨 날아간다 국민서관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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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 읽어도 읽어도 좋은 책들
무우꽃 조회수 : 1,697
작성일 : 2004-05-19 11:21:43
IP : 210.118.xxx.196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강아지똥
'04.5.19 11:41 AM (218.49.xxx.136)제가 있네여...흐뭇....^^ 전 클레이에니매이션으로 보고 dvd로 갖구 있어여..ㅋㅋ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로버트 먼치, "아주 특별한 너를 위하여" - 맥스루카도 라 책이 있는데여..삽화도 좋고...내용두 간단하면서 넘 좋아서 제가 소중히 갖고 있는책이랍니다. 또한 태교용에도 애들한테 자주자주 읽어주어도 좋은책인듯하네여. 또한 어른들한테두여...^^2. 야옹냠냠
'04.5.19 12:24 PM (222.99.xxx.27)친구들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세 살쯤 되면 항상 '강아지똥'을 선물로 줍니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지요.
그런데 한 친구는 아들녀석에게 그 책을 읽어주니 끝까지 잘 듣고 아이가 묻더라는군요.
"강아지는 어디 갔어? 왜 안 나와?" ^^3. 기쁨이네
'04.5.19 2:23 PM (80.140.xxx.128)저도 순교자, 잃어버린 이름 제가 평생 꼭 간직하고 싶은 책이지요.
반갑네요, 여기서 다시 만나니~4. yoon
'04.5.19 3:14 PM (210.106.xxx.131)일본의 가톨릭 순교지에 다녀온 후 엔도 슈샤꾸의 '침묵'을 읽어야지 하고 벼르고만 있었는데 무우꽃님이 평을 올려주셔서 반가워요. 저는 열화당에서 나온 미술 관련 책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큰애(대딩 1)가 학교 도서관에서 이책 저책 잘 빌려다줘요. 무우꽃님 목록도 빌려달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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