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노동절 유감

무우꽃 조회수 : 1,079
작성일 : 2004-01-23 16:35:27
이번 설에는 한가지 배운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요.
어떤 분의 리플에 "노동절"이란 표현이 있어서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여기 저기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보니까 그것이 설을 풍자한 말이라는 걸 안 것이죠.
물론 전에도 TV 같은 데서 여자들의 그런 얘기("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저희 집이 여자 형제도 없고 차례도 간소하게 지내는 터라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었죠.
비단 명절 뿐 아니라, 이런 저런 손님치레가 여자 몫으로 인식되고 있는 사회에서, 저도 수혜자(?)인 남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렇게 불합리한 일이 어째서 지속되고 있는지 정말로 의아합니다.


제게 아주 가까운 여자 친구가 있는데 몇년 전인가 생일 때 일입니다. (지금 제가 사귀고 있는 사람을 처음으로 소개할 정도로 친합니다. 그 남편이 제 동문 후배인데 지방에서 근무할 때입니다.)
전화로 만날 약속을 잡으려는데 "그날은 내 생일 핑계대고 학교에서 친한 선생님들하고 집에서 저녁하기로 했어"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계네 집이 제 사무실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아이들이 보고싶으면 아무 때고 갔던 터라, 평소에 서로 생일 챙기는 일은 하지 않았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그날 음식은 뭘로 할거냐?"
"퇴근하면 저녁땐데, 중국집에서 한두가지 시키고 대충 먹지 뭐."
"야 그래도 생일이라고 모일건데 그럴 수 있냐, 모이는 자리는 음식이 있어야 하는거야. 내가 가서 해줄게."
"정말?"
"아무래도 집에서 하려면 네가 움직여야 하잖냐. 음식은 내가 할테니까 너는 손님들하고 즐겨."

이렇게 해서 제가 그날 출장요리사가 된겁니다.  (닭찜을 비롯해서 서너가지 했습니다)
장을 보고, 미리 가서 요리 준비를 하고 손님을 맞았습니다.
음식을 만들 때는 그 집 아이들을 곁에 두고, 요리법도 가르치고 음식도 나르게 했죠.
끝날 무렵 저를 불러 소개했는데 ...
"내 남자 친구야. 생일인데 음식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나는 손님들하고 놀라고 와서 해줬어."
그 때 사람들의 표정이란 ....
친구는 손님들을 배웅하러 나가고, 저와 두 시다 - 제가 애인이라고 부르는 그 집 딸네미와, 저를 삼촌처럼 따르는 아들네미 - 는 설거지를 했습니다.
"어때, 우리가 엄마한테 꽤 괜찮은 생일선물 한 거 같지 않아?"


제가 결혼하면 집사람의 친구들 모이는 집들이때도 이렇게 할겁니다.  제 아이, 그사람 아이 모아놓고 가르치면서.  그리고 두 해에 한번은 처가에 가서 그집 식구들을 위해 상을 차릴겁니다.  그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하면 그대로 해야지요.
세상 남자들이 다 지금의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다는 것, 친구네 아들네미처럼 한명 두명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아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면, 여러분의 딸들도 똑같은 세상에서 똑같은 푸념을 계속하게 되리라는 것도.

오늘은 남자된 입장에서 죄송하다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군요.
여러분의 힘들다는 글을 통해 제가 배워습니다.
민족 최대의 노동절을 치러낸 노동전사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IP : 61.111.xxx.218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아들 교육
    '04.1.23 7:34 PM (211.229.xxx.186)

    그래서 저도 아들 교육 시키려고 설겆이도 시키고 밥상 차릴때 수저라도 놓으라고 하는데 시어머니가 너무나 싫어하시고 마치 저를 아동학대, 미성년 노동착취의 원흉으로 보십니다.

    어찌할꼬?

    이러다가 우리 아들 장가도 못갈라....

    그랬더니 우리 아들 왈,

    "아빠는 장가 갔잖아?"

  • 2. 초은
    '04.1.23 10:39 PM (211.215.xxx.135)

    결혼하자마자 첫 명절 때..
    형제 셋 중 마지막까지 어머니 옆에 있었던 남편은 청소를 도맡아 했습니다.
    그래서 명절전날 음식하고 청소할 때 청소기 밀고 걸레질도 다 했었죠.
    근데 언젠가부터 어머님이 저희 세 며느리한테 걸레질을 시키시더라구요.
    열심히 일한 거.. 아시겠지만, 당신도 몸이 고단하시겠지만
    떡하러 다녀온 아들들은 그렇게 고맙고 미안하고 안 됐어하시면서 손도 까딱 않게 하시는 거 보면 열불이 납니다. 저희 큰형님은 정말로 화가 나셔서.. 이 관습은 꼭 고치고야 말겠다 하시더군요..

  • 3. 깜찌기 펭
    '04.1.24 7:55 AM (220.81.xxx.230)

    무우꽃님.. 울신랑 오늘 허벅지 멍들겠네요. --;

  • 4. 글쎄요...
    '04.1.24 11:32 AM (221.157.xxx.197)

    큰며느리입니다. 결혼한 첫해 명절에 우리 신랑이 상 치우고 설거지하고 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저, 시댁에 가면 신랑 설거지 절대로 절대로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저보다 먼저 시집온 아랫동서가 "어머, 아주버님이 설거지하시네.
    형님이랑 같이 하셔야지."하며 자기는 거실에 가서 tv를 보기 때문이지요.
    그 다음 명절 부터는 "아주버님, 설거지 안 하세요?" 하거나 우리 신랑에거 행주를
    갖다주며 상치우라고...
    시어머니 나서시기 전에 제가 먼저 난리납니다. 물론 둘째 서방님 일 절대로 안 합니다.
    우리 신랑 설거지 한다고 그러면 절대로 절대로 못 하게 합니다.

  • 5. 무우꽃
    '04.1.24 11:55 AM (61.111.xxx.218)

    여자를 옭아매는 데는 그렇게 살면서 길들여진 -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 여자의 영향도 있죠. 그런 생각들을 하나씩 바꿔가야 하지 않겠어요?
    일의 구별과 차별, 현실과 당위 ..... 참 어려운 문제들이죠.

  • 6. 괜히익명
    '04.1.25 11:07 AM (221.140.xxx.187)

    우리집은 제가 많이 아프고 나서부터는.. 남자들도 일 합니다.
    일꾼이 고장이 났으니...
    며느리들이 전부치고 어쩌고 일할동안 우리 어머님의 세 아들중
    두 아들은 열심히 청소하고 병풍닦고 제기그릇 챙기고........
    시 어머님의 심히 불편하신 표정! 에는 아랑곳 않고 그 잘나고 귀하디귀하신
    큰아들이 걸레빨아 엎드려 구석구석 걸레질 하는것을 보신 울 어머님!
    드디어 헐크가 되시어 난리가 났는데..... 그 아들! 더큰 목소리로써
    어머님을 이해? 시키는데 강제로 성공 하더군요.
    울 아버님! 드디어 세상에 종말이 온게 분명하다고 하시구요.

    이런 반란과 폭풍속에서 오후 늦게 동서들 친정에 간다하니....
    피곤한 남편들 일찍 쉬게 재울생각? 들은 안하고 처가집에 가게한다고..
    저*들은(며느리들) 언제나 철이들런지 모르겠다며 또 소리소리 치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부모님들을 배신하고 처갓집으로 향하는 아들들의
    (그래도잘난) 뒷통수를 보시며... 에구~ 불쌍한것들! 여편네들을 잘못만나서
    시달리며 산다고 불쌍해서 속상해 죽겠노라고 하시면서..........
    우리집 명절날은 막을 내렸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390 쭈니맘..돌아왔습니당!!!! 9 쭈니맘 2004/01/24 977
16389 한강이 얼었다죠? 13 무우꽃 2004/01/24 939
16388 설날아침 선물 5 깜찌기 펭 2004/01/24 968
16387 돈벌기 참 어렵네요. - 40kg BBQ 준비하기 2 한해주 2004/01/23 1,137
16386 82cook 회원 가입인사 드립니다. 2 이덕형 2004/01/23 664
16385 철없는 시어머니 9 들어주세요... 2004/01/23 1,851
16384 기차에서 만난 혜경선생님~ 2 야옹냠냠 2004/01/23 1,472
16383 온몸이 아픈 또다른 이유 5 글로리아 2004/01/23 1,204
16382 노동절 유감 6 무우꽃 2004/01/23 1,079
16381 고향이 그리울때... 1 사랑초 2004/01/23 888
16380 당신은 이런적이 있었나요? 1 수하 2004/01/23 890
16379 아싸~~ 이제 놀일만 남았다!! 3 카푸치노 2004/01/23 892
16378 웃으면서 한해 시작하자고요 - 차마 못올렸던 리플 7 무우꽃 2004/01/22 1,028
16377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ㅅ.ㅅ 1 2004/01/22 882
16376 낑긴 글 13 무우꽃 2004/01/21 1,387
16375 혼자 맞는 명절: 마음의 변화를 위한 요리법 8 나르빅 2004/01/21 1,007
16374 새해에는 더욱 건강해 지세요! - 요것들과 함께요! 4 한해주 2004/01/21 873
16373 절대 제 탓이 아닙니다. T.T 12 한해주 2004/01/21 1,049
16372 안녕 하세요..오~오~ 2 상은주 2004/01/21 881
16371 귀성길 참고하세요. 올림픽도로는 완전 정체 (22:00 현재) 2 키티 2004/01/20 881
16370 82cook 식구들, 좋은 추억 담는 새해 명절 보내세요 2 어주경 2004/01/20 897
16369 전국의 며느리님들을 위한 詩(펌) 15 경빈마마 2004/01/20 947
16368 이주노동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세요. 2 무우꽃 2004/01/20 879
16367 ♬ 구정, 잘 쇠고 오세요 ♬~♩~♪~♬. 16 jasmin.. 2004/01/20 1,120
16366 1) 가스보일러 사용시...2)레몬트리 선생님기사 4 제비꽃 2004/01/20 874
16365 설 잘 쇠세요.. 2 카푸치노 2004/01/20 879
16364 [re] 이것도 태몽에 끼워주나요? 예전의 내가.. 2004/01/21 887
16363 이것도 태몽에 끼워주나요? 3 또다른 익명.. 2004/01/20 919
16362 시부모님 안계신 시댁...꼭 가야할까요? 9 궁금해요 2004/01/20 1,369
16361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20 기가 죽어서.. 2004/01/20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