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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세 자매 중 장녀십니다. 지금은 환갑을 훌쩍 넘기셨구요.
19살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는 삯바느질 하셔서 세 자매를 모두 고등학교까지 공부시키셨어요.
이북서 피난 와서 아무 것도 없이 사시느라 모두 고생 많이 하셨죠.
그리고 외할머니는 우리와 함께 20년 정도 같이 사셨습니다. 우리 아버지, 장모님을 마치 어머니처럼 모셨어요.
우린 하도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와 같이 살았기 때문에,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죠.
사실 자식이 부모 모시고 사는 거, 너무나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할머니와 엄마의 사고방식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데 있었습니다.
어린 제가 보기에도 우리 할머니, 문제가 참 많은 분이셨어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실 수 있을까 하고 놀랄 정도로 '기발하고' '엽기적인' 분이거든요.
그에 반해 우리 엄마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분이세요.
그러니 부딪힐 수밖에요. 게다가 엄마가 몸이 좀 허약하셔서 우릴 키우느라 늘 허덕허덕하셨기 때문에
아침에 우리 도시락 싸는 거며, 장 봐서 배달시키는 걸 대개 할머니가 하셨어요. 울할머니, 무지 건강체질이시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주부들의 본능(?)인지, 우리 집엔 보이지 않는 주도권 싸움 비스무리한 것도 있었어요.
물론 우리 할머니, 천성이 참 선한 분이세요. 근데 곱상한 겉모습과는 달리, 알고 보면 상당히 터프하시고
당신의 의사를 관철시키고야 마는 데는 탁월한 재능을 타고나셨고, 그것도 항상 은근히 우리 엄마한테만
터무니없는 고집을 피우시는 통에, 우리 엄마 20년 만에 두손 두발 다 들고 마셨어요.
이모들이 좀 자주 할머니를 모시고 가서 몇 달씩 있다 왔으면 정말 고맙고 좋으련만, 둘 다 꿈쩍도 않는 거예요.
엄밀히 말하면 우리 집은 친정도 아닌데, 툭하면 자식들 데리고 와서 며칠씩 놀다 가기 일쑤고요.
어떨 땐 여행도 세 집이 다 같이 갔다니까요. 저랑 언니는 한창 사춘기 때 그게 얼마나 싫었나 몰라요.
하지만 우린 하다못해 산책 나갈 때도 꼭 할머니를 모시고 다녔기 때문에, 할머니와 같이 놀러가는 걸 너무나 당연히 여겼어요.
어떤 집이 할머니만 집에 남겨놓고 휴가갔다 왔다더라 얘기 들으면, 그런 천벌 받을 집이 있나 했을 정도니까요.
암튼 그랬는데, 식구들 모르게 엄마만 엄청 맘고생을 하신 거였어요.
커서 알게 된 거지만, 그릇 좀 사려고 하면 할머니께서 '얘, 그릇이 이렇게 많은데 뭘 또 사니?' 하시는 바람에 못 사고,
집 좀 넓은 데로 이사가려 하면, '얘, 너희 다섯 식구한테 여기가 딱 맞는데 뭐하러 집 넓히니?' 하셔서 또 주저앉고...
그 당시엔 막내 이모까지 있어서 모두 7식구였는데 방 3개 짜리 25평에 살았거든요.
사실 우리 아버지, 소위 능력있는 분인데 친가 쪽 형편이 다들 그래서, 고모 삼촌네 집을 아버지가 다 사주시고도
그분들보다 좋은 데 살면 안 된다고 집 넓힐 생각도 안 하셨거든요.
거기다 할머니까지 그러시니 엄마가 무슨 힘이 있어요...
'요즘 같았으면 내 맘대로 좀 해봤을 텐데, 그땐 왜 그렇게 엄마 말을 꼭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몰라' 우리 엄마, 요새 이러세요.
결국 몇 년 전 부모님이 서울 외곽 도시로 이사하시면서, 할머니 살림을 따로 내셨서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할머니를 위해서였어요.
우리 엄마는 할머니랑 같이 있는 게 싫다는 그 사실 때문에 말도 못할 죄책감에 시달리셨어요.
자기를 낳아주신 엄마를 싫어한다는 게 얼마나 큰 죄겠어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싫은 거 10%에
그에 대한 죄책감 90%가 더해져서, 할머니를 대할 때는 엄마 얼굴이 말이 아니었어요.
당연히 무뚝뚝해지고 눈도 안 마주치게 되고 말도 잘 안 하게 되는 거죠.
엄마는 이렇게 살면 우리 불쌍한 할머니, 자유도 없이 엄마 밑에서 주눅들고 사셔야 한다고 막 우시는 거예요.
그렇다고 집 얻어서 내보내려니까, 또 엄마를 내쫓는 기분이 들어서 것도 못할 짓이었지만,
모두를 위해서 '당분간만' 떨어져 살아보자고 결론을 내렸죠. 그리고 아버지는, 할머니 사실 집인데 전세는
절대 안 된다면서, 원래 살던 동네에 방 2개짜리 아파트를 마련하셨어요.
물론 이런 가슴아픈 내막을 할머니는 모르세요. 원래 그 분, 동서남북 구분 못 하시는 형이거든요.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우리가 어떤 맘으로 할머니 살림 나게 해드렸는지를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오래된 아파트라 어디가 어떻고, 경비 아저씨가 어떻다는 둥 불평만 하시더라고요.
우린, 특히 우리 아버지는 기가 막히셨지만, 워낙 그런 분이니까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자, 뭐 그런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저 건강하게, 재미있게, 자유롭게 사시기만을 바랐어요.
벌써 몇 년이 흘렀고, 처음엔 혼자 자려니까 '귀신 나올까 봐' 무섭다고 하셔서 엄마 억장 무너지게 하시는 것도
덜 하시고 많이 안정되신 듯 하더니, 또 몇 주전부터 다리가 후들거린다, 심장이 쿵쿵 뛴다 하시면서
갑자기 엄마, 아빠를 불러내서서 응급실로 모셔가게 하시질 않나, 자꾸만 전화로 '힘이 없어서 살 수가 없다'고 하신대요
요샌 제 남동생이 직장이 근처라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거든요. 동생 말로는 전혀 문제 없어보인다는데...
무거운 것도 번쩍번쩍 잘 드시고, 안방에서 부엌으로 베란다로 씽씽 날듯이 다니신대요, 물론 동생이 안 볼 때만요.
엄마가 한달에 한번 병원에 모시고 가도, 엄마 안 보이는 때는 (무심결에) 힘차게 걸으시고, 엄마만 옆에 서면
갑자기 휘청휘청하신다는 거예요. 엄마 생각엔 젊어서 워낙 힘이 장사였던 분이라 80대 중순에 오니까
예전처럼 기력이 없는 게 답답해서 그러신 것 같다는데, 한편으론 걱정이 많이 되는 게 사실이에요.
이제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대요. 몇 년 사이에 우리 아버지도 할머니의 '실체'를 너무 많이 보셔서
이젠 같이 살기 힘들 것 같대요. 예전에 아버지는 할머니가 그저 고상하고 얌전하고 이해심 많은 분인줄만 아셨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할머니한테 좀 심퉁맞게 굴면 막 야단치셨더랬어요)
제가 부모님 사시는 아파트 옆 동, 작은 평수로 하나 마련해서 거기 모시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엄마는 차마 아버지한테 더는 그런 말 못 하겠대요.
쓰고 보니 너무 길어졌는데, 아무튼 우리 엄마, 너무 불쌍해요. 남들이 보면 뭐 그런 문제가지고 그러냐 할 텐데
우리 엄마 혼자 해결해야 하거든요. 이모들은 할머니 쳐다보지도 않아요. 당연히 '돈 많고 첫째인' 우리 엄마가
할머니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대놓고 얘기해서, 우리 엄마 심장 떨려 몸져 누운 적도 있거든요.
우리 엄마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 바로 우리 할머니래요. 저도 우리 할머니 안됐고 불쌍해요.
온갖 고생 다 해서 딸들 잘 키우셨잖아요. 우리도 알아요, 우리 할머니 안 된거...
하지만 우리 엄마가 할머니 불쌍하게 여기는 것처럼, 나도 우리 엄마가 불쌍하다 이거예요.
왜 우리 엄마만 할머니한테 들볶여야 하고, 왜 우리 엄마만 할머니한테 죄책감 느껴야 하는 거죠?
제가 보기에 우리 엄마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엄마는 아니라고 하시지만, 전 그게 엄마의 한계라 생각해요.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었던 거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니라구요.
근데도 우리의, 동서남북 구분 못 하시는 할머니께서는, 아주아주 가끔 찾아와서 이리저리 비위 맞춰주는
이모들만 이뻐하시고, 우리 엄마한텐 온갖 투정과 엄살만 부리세요. 옆에서 보는 저, 돌아버릴 것 같아요.
전 우리 엄마를 힘들고 아프게 하는 사람, 싫다구요!!! 왜냐하면, 우리 엄마니까요!
요새 저는 자주 할머니와 이모들 꿈을 꿉니다. 막 설명하고 이야기하다가 결국 소리소리 지르는데
목소리가 안 나와서 어찌나 갑갑한 지 몰라요. 울다가 깨어나기 일쑤예요.
제가 이 정도니, 우리 엄마 속은 지금 어떻겠어요...
우리 엄마, 어쩌면 좋죠? 80대 중순 할머니와 60대 중순 우리 엄마... 두 분 다 불쌍하고 안타까워요.
엄마와 딸 사이가 이렇게 안 맞을 수도 있나요? 혹시 우리 엄마, 주워다 키운 딸 아닐까요?
어쩜 이렇게 사고방식과 취향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르죠? 어떡해요? 어떡해요?
1. 김혜경
'03.7.10 10:38 AM (211.201.xxx.55)아마 할머니가 어머니를 이라기보다는 남편이나 아들처럼 의지하시는 것 같네요.
80대 중순의 연세시면 이제 판단력도 많이 흐려지시고...
섭섭하겠지만. 제가 입바른 소릴 하자면...
외할머니 이제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어요? 여태까지도 참고 사셨는데 조금만 더 참으세요. 그리구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세요...만약에 치매에라도 걸리셨으면 어떻게 했을까?
건강하시니까, 응석을 부리려고 그러시는 거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솔직히 저 이렇게 말은 하지만 저도 화가 많이 납니다.2. 키티
'03.7.10 5:46 PM (220.75.xxx.42)세상에...
딸셋이 아니라 며느리 세명인것 같네요.
이모들도 너무하고...어머니 맘고생이 심하셨을것 같네요.
엄마사랑님이 어머니를 많이 위로해드리세요. 달리 별 방법은 없을듯 하네요.
너무나 오랜시간 그렇게 사신분들이라서....3. Jessie
'03.7.10 8:20 PM (211.42.xxx.106)아이고... 참 눈물나는 사연이네요. 예전 어르신들 그렇게 살아오신 분들 많지만,
저역시 맏딸로 모든 것을 참고 양보하도록 배워서 어떤땐 내가 왜 이렇게 뭐든 양보해야해? 싶어도
양보안하면 또 죄책감에 시달리거든요.. 세뇌라는 거죠.. -_-;
그 어머니 심정 이해가 가네요. 그리고 이 글 쓰신 따님 심정도 이해가 가고.
이제와선 어쩔 수 없어요. 엄마가 죄책감 안느끼실만큼만 할머니를 버려두는 방법 밖엔.
그게 할머니가 감당하셔야할 자기 운명이라고 엄마에게 끊임없이 암시를 거세요..^^ 역세뇌죠..
만약 시어머니면 오히려 감정을 끊기가 쉬울텐데..
제 친정엄마 역시 환갑된 처지에 90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거든요. 그래도 50 넘으시면서 부터는
나도 내인생이 필요해..하면서 조금씩 독립하시더군요.. 40년을 같이 살아왔으니 독립해봐야 그게 그거지만.
웃기는 건 엄마가 그렇게 독립적이 될수록 할머니쪽에서도 엄마에 대한 심리적 폭력이 줄었다는 겁니다.
엄마가 변하기 시작한지 십여년이 된 지금.. 두 분 관계는 옆에서 보기엔 꽤나 합리적이 되었답니다.
엄마는 그래도 할머니때문에 자다가 심장이 빨리 뛰어서 놀라 일어난다고 하시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두분은 저를 맏이한테 시집보내느니 혼자 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덕분에 전 6남매의 막내랑 결혼했고
형제간의 서열이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극적으로 바꿔 놓는지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하는 중이죠!4. ,맑은날
'03.7.11 12:37 AM (211.201.xxx.153)엄마사랑님, 님의 아픈 마음도, 어머님의 할머니에 대한 애증의 마음도 충분히 알것같아요.
우리 할머니가 생전에 참으로 이상한 구석이 많으셔서...
아버지가 가슴이 터진다고 울며 붙잡고 하소연하기도 하고
달래시기도 하고 하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그래도 어머님은 행복하신 분이에요..
100%어머님 편이 되어주는 '자식'인 엄마사랑님이 계시잖아요
할머님은 '자식'인 세자매가 다 가슴아픈 표현이긴 합니다만
돌아서 있는 상황이잖아요.
물론 그럴수밖에 없는 상황인건 알아요.
할머님께서는 맏따님에게 모든걸 의지하고 계신것같습니다.
너무너무나 사랑하기때문인데, 그 표현이 그렇게 나오는거지요......
어쩔수 없지만 조금만 더 할머님을 배려해드림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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