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한번 외워봐..뜻도 모르고 '쇠소깍'이라고 하면..그게 외워지는지...
자꾸 소깍쇠 소깍쇠 한다고 어찌나 구박을 하던지...나두 12년전 14년전에는 총기가 총총했었는데..어흑..
내 속으로 그랬다는 거 아냐..'니들도 늙어봐라...'
쇠소깍이라는 곳은 계곡물이 바닷물과 만나는 곳이야.

계곡이 제법 깊은 듯, 아주 짙은 초록색 계곡물이 검은 모래사장을 돌아 바다로 들어가지.
파도는 계곡물을 환영하는 듯 넘실대고...너무 좋았어..근데 사진으로 도저히 그 아름다움을 담을 수 없었다는...
그래서 머리속에 콕 넣어가지고 오느라, 눈 크게 뜨고 바라보며 "좋다" "너무너무 좋다"만 연발했어.
근데 지금도 궁금해, 쇠소깍이 무슨 뜻인지...
쇠소깍에서 나와서 김영갑갤러리로 향했어...헤르미온느의 강추 관람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만을 렌즈에 담는 사진작가의 갤러리이며, 그 작가가 불치의 병을 앓고있다는 헤르미온느의 설명.
이제는 폐교가 된 학교를 개조해서 만든 그 갤러리는 길가쪽으로 나붙은 간판이 그리 크지 않아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어.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그러길래, 그저 그런 풍경사진인줄 알았는데..정말 감동적인 사진이었어.
당신도 알다시피, 나 옛날에 미술담당 기자해서, 그림이며 사진이며 꽤 보고 다녔잖아.
조금도 보태지 않고, 여태까지 본 사진작품중에서 제일이었어. 작가의 제주에 대한 애정도 느껴지고, 작가의 철학도 느껴지대.
사진작가가 아프니까 좀 도와주고 싶다는 그런 선입견, 전혀 없이도 정말 한점쯤 소장하고싶더라구...
해서 안내하는 사람에게 살그머니 물었지...작품가격은 얼마냐고... 그랬더니 미소를 지으며, 팔지 않는다고, 전시회때만 판다고...
좀 아쉬웠는데...한장 집어가도록 둔 엽서를 보니 마침 3월24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한다네.

이거 전시회 안내 엽서에 실린 작품인데...정말 좋지?? 우리..아무리 바빠도 그 전시회 꼭 보러가자... 작품값이 너무 비싸면 못사겠지만.
헤르미온느는 포스터 한장 사고..난 그냥 아주 소액을 관람료로 내고 나왔어...근데..잘못했어...좀더 낼 걸 그랬나봐...
내 감동을 돈으로 환산하면..그보다 훨씬 많이 냈어야 하는건데...
김영갑갤러리에서 나와 섭지코지로 갔었어. 알지? 섭지코지?? 왜...'올인'에서 송혜교가 살던 수녀원이 있던 언덕.
관광객들이 많지 않은 곳만 골라다녀서, 그동안은 관광객들 별로 못봤는데, 여긴 사람이 무지 많았어.
그 많은 관광객들 틈에 끼어 바람이 그리 세차게 부는 섭지코지를 올라가며 증거자료를 만들어가고 있는데..이게 웬일이래...
헤르미온느의 디카는 원래 밧데리잡아 먹는 하마라 그렇다 쳐도, 미스테리의 디카도 밧데리가 떨어진 거야.
내꺼보다 가벼운 지은이 디카 갖고 갔었던 지라...의기양양하게 디카를 내밀었는데...5장 찍으니까 밧데리가 떨어지더군...
난 지은이 카메라 밧데리 바꿔끼우는 것도 모르는데...
그래도 섭지코지는 몇장 찍은게 있어서 괜찮았는데, 그 담이 문제였지. 아, 입장료내고 들어가서 사진찍도록 되어있는 유채꽃밭에서는 사진 못 박았어.
헤르미온느가 다랑쉬오름이 굉장히 좋대. 그래서 갔었어. 가볍게 오름 올라가자나...그러자고 했지.
당신 걱정했잖아, 배 더 나와서 돌아오면 어떡하냐고... 당신 시름도 덜어줄 겸, 정말 끝까지 올라가려고 했는데..장난이 아니더만...
⅔쯤 올라갔는데, 왼쪽 발목이 시큰거리는 거야.
기를 쓰고 올라가면 갈 수는 있겠지만, 내려올 것도 걱정이고, 또 다리 아파서 내일 일정에 차질이 생겨도 안될 것 같고..
아, 젊은 애들이 지들끼리 그럴 꺼 아냐, 역시 노친네랑은 여행오는 거 아니라고..
내가 밤에 전화에..오름 올라갔다 왔다고 한거 뻥이었어..끝까지는 못갔어...
당신에게 정상까지 갔다왔다고 뻥칠라고, 핸드폰 카메라에 증거사진을 한장 남기기는 했으나...당신도 알잖아, 나 거짓말 못하는 거..거짓말하면 두드러기 나는거...
저녁은 돼지고기를 먹기로 했는데... 가시리의 나목도식당이라는 곳이었어. 돼지고기 구워먹었어. 그런데 사진은 없어..밧데리 때문에...
고기가 맛있긴 했는데, 그런데..내가 기대했던 그 고기는 아니었어. 내가 왜 얘기 했잖아..
2000년 겨울인가, 당신을 대신해서 당일코스로 제주도 볼 일 보러 왔을 때 먹었던 돼지고기..
산속에 달랑 그 식당밖에 없었는데...그 집에서 준 고기...
두툼한 돼지껍질에 굵고 검은 털이 듬성듬성 박혀있어서 징그러워 안먹었는데 하도 주변사람이 권해서 먹어보고는 반했다고...
그 집은 어딘 지 모르겠어...어떻게 알아봐야 하는건지...알아봐서 헤르미온느 올라오기 전에 알려주면 좋아할텐데...
나목도식당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후식이야.
그 집 맘 좋은 할머니가 "댕유지차 드시겠수꽈?"하는데...그게 뭔지 알아야지..
"그게 뭐예요"했더니 유자 비슷한거라고 해서 보니 진짜 유자차 비슷한 거야. 마셨더니 비슷하긴 한데 전혀 맛이 달라. 다른 향이야.
"입안이 개운해져서 너무 좋네요"했더니, 그 할머니 비닐봉지에 8개나 싸주는 거야..서울가서 차 담그라고...

옳다구나 하고 받았다는 거 아냐...다음날 안건데...그 유지라는 것이 유자의 제주도 사투리래, 댕은 당이래.
당유자(唐柚子)로 차를 담그는 방법은 유자랑 같은데..마실 때 그냥 더운 물을 부어서 마시는 게 아니라, 끓이는 거래.
당유자까지 노획물로 들고 숙소로 들어와서...우리 뭐했는 줄 알아...
하하, 얼굴에 팩 붙였다는 거 아냐...셋이 나란히 누워서...혹시라도 제주바람에 피부 상할까봐..큭큭...
체신머리 없이 별 짓 다했다고? 그러게..내 말이...
그래도 뭐 호프집가서 맥주마시거나, 노래방에서 노래부르거나, 고스톱 치거나...뭐 그런거 보다 훨씬 건전한 여행지의 밤..아니었나?!
아,아, 그런데, 뭐 그리 고요한 밤은 아니었던 것 같네...
서울에서...왜 희망수첩 안쓰냐고...별일 없느냐고... 너무 한다고..하는 전화가, 여기저기서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