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복 욕심이 좀 과합니다.
결혼 할 때 친정엄마가 '넌 새 한복 입고 싶어서 결혼하냐?'고 핀잔을 주셨을 만큼 한복집을 예닐곱군데를 돌아다녔죠. 아하하
아이 돌이 돌아오자 한복을 검색합니다...
제가 결혼할 때 맞췄던 곳은 너무 비싸고 또 한군데 아이 전통 돌복으로 유명한 데도 역시 비싸고...
싼 곳은 너~무 제 눈에 안 차고...
고민하던 차에 돌상 공부하는 카페에서 어떤 엄마가 돌복을 만들어 줬단 얘기에 눈이 번쩍!!
두 번도 고민 안 하고 바로 결제해 버렸습니다.
천 사들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거 같아서 재단까지는 다 해주는 곳에서 사다가 바느질만 하기로 한 거죠.
제가 정동에 있는 모 여(외)고를 나왔는데요, 고등학교 때 가사 선생님은 제 친정엄마 고등학교 때도 가사 선생님이셨던 나이 많으신 선생님이셨는데요. 말투는 참 엄격하신데 알고보면 따뜻하고 참 좋으신 분이셨죠.
암튼 가사 수업 시간에 한복만들기가 나오니까 그 선생님께서 '요새 옷은 다 사 입으면 된다'고 그냥 패스를..OTL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었는데 말이죠. 아하하 그래서 이 한복 만들기가 간단하게 박음질 몇 번하면 끝나는 배냇저고리 말고 본격적인 바느질로는 중3 때 1/2사이즈 블라우스 이후로는 처음이었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사실 들어간 공력에 비해 결과물이 좀 초라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초보니까~ 하면서 올려 봅니다.
저고리와 바지입니다. 좀 다려서 찍었어야 하는데 돌 촬영 다녀와서 찍었더니 많이 구겨졌네요.
고름은 흉내만 낸 돌림고름이고 풍차바지 대신 만들기 쉬운 고무줄 허리 바지에 대님도 생략하고 매듭단추를 만들어 주었어요. 동정도 어려운 동정 말고 흰색 천으로 흉내만 냈죠~
저고리 깃에는 삼색 잣물림 조각을 포인트로 붙여 주었습니다. 초보 주제에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건 많아서; 여기저기 한복 구경을 하다가 잣물림이라는 걸 보고 저도 해 보고 싶더라고요. 처음에 제가 본 건 잣물림을 깃에 빙 둘러서 촘촘히 달아 준 거였는데 딱 삼색으로 포인트만 줬습니다. 저거 해 보고 싶어서 저고리 만들다 말고 돌띠 재단을 했지 뭡니까; 돌띠에 오방색 복주머니 다섯개가 달리는데 그 복주머니 재단하고 난 자투리 천이에요. (바지저고리랑 전복만 재단이 되어 오고 다른 건 제가 재단했어요)
요게 잣물림 조각입니다. 자투리 천 조각을 저런 모양이 나오게 다림질 해서 박음질해서 원하는 곳에 달아 주시면 됩니다. 사실 위 잣물림은 살짝 실패여요. 박음질선이 완성선보다 좀 밑에 내려와야 달았을 때 이쁘게 달립니다. 저고리 사진 보시면 오른쪽 잣물림이 더 이쁘게 자리 잡혔죠? 위의 잣물림은 왼쪽에 붙은 애랍니다. (왼쪽 오른쪽은 옷 입었을 때가 아니라 그냥 사진으로 봤을 때요;;)
전복입니다! 이거 만들 즈음에 홍한이님께서 다림질 비법을 빙그레님 글에 댓글로 달아 주셨어요~
완전 초치기 폭풍 바느질 중이었죠. 애기가 한 번 입어서 구김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바지저고리 보다는 차분해 진 거 보이시나요? 아하하
금박이도 이쁘게 달아 주었습니다~ 앞섶에는 '수복강녕' 밑단에는 '효제충신', 뒷판에는 또 '인의예지' 허허 참 교조적인 전복입니다. 꼭 무슨 선거운동 티셔츠 같군요. 한글로 '차카게살자' 금박 같은 거 있어도 재미나겠어요~
전복 색깔이 원래 보다 밝게 나왔네요. 실제로 보면 좀 더 짙은 감색입니다. 더 밝은 색도 있고 파스텔 톤도 선택할 수 있었으나 (선준도령의 필이 충만한) 점잖은 색을 좋아하는 엄마의 취향에 따라... 쿨럭쿨럭...
마지막으로 복건입니다! 호건을 만들까 했으나 실력이 모자라는 사람은 화려한 금박으로 승부를 해야 할 거 같아 그냥 복건을 만들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실수투성이입니다. 귀퉁이는 날렵하게 안 뒤집히고 두리뭉실... 머리가 들어가는 부분에 주름은 또 너무 크게 잡아서 애 머리도 간신히 들어갈 판이고요. 아흑흑. 결정적으로 복건의 주인이신 아드님께서 머리에 뭘 쓰는 걸 너무 싫어하셔서 한 번 제대로 씌워 보지도 못했다는 슬픈 전설이 내려옵니다. 원래 디자인에는 뒷부분에 빙 둘러서 금박이 놓이는데 너무 지저분해지는 거 같아서 그냥 생략했습니다.
근데 아까 재단하던 돌띠는 어디가고 마지막으로 복건이냐고요? 후훗. 시간에 쫓겨 결국 돌띠는 못 만들었습니다. ㅜ_ㅜ 워낙 잠이 없으신 아드님이라 자는 틈틈이 만드는 것도 벅차더군요. (82자게에서 놀던 시간에 했으면 물론 뭐 한 다섯 벌은 만들고도 남았...퍽!)
장수를 기원하는 무명실을 목에 걸고 돌잡이 하는 장면입니다. '붓'을 잡으셨습니다.
다음 사진은 끝까지 복건을 거부하던 모습 ㅡ.ㅡ 이고요.
제 한복은 결혼할 때 맞췄던 한복이에요. 녹의홍상 한 벌에 짙은 색으로 치마만 한 벌 더해서 동생 결혼식, 심지어는 친구 전통혼례 결혼식에도 잘 입고 다니고 있습니다. 치마 두 벌 말고 저고리 두 벌을 맞추려고 했었는데 한복 색을 곱게 골라주신 선생님께서 저고리는 애 낳고 나면 못 입게 되기 쉬우니 치마를 두 벌 하라고 하셨거든요. 나중에는 빨간 치마에 어울리는 저고리만 한 벌 더 지어 입을 생각입니다. 왜 이렇게 한복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은지요~
미처 찍지는 못했지만 붓을 잡은 제 아덜램, 두 번째로는 '활'을 잡았습니다. 다른 연예대상은 안 봐도 '국악대상' 따위는 챙겨보는 엄마 취향에 따른 전통 돌상에 사실 애가 집고 싶어할 만한 게 붓이랑 활 밖에 없었다는 게 ㅡ_ㅡ;; 동생의 예리한 지적질입니다만 어쨌거나 '붓'과 '활'을 잡았으니 문무를 겸비한 훌륭한 (선준도령같은) 선비가 되겠구나.. 하고 마냥 엄마는 흐뭇해 했습니다. 캬캬캬
(뭐 개인적으로는 걸오사형 팬입니다만 아덜램의 미래로는 걸오 보다는 선준 도령이 흠흠...)
후아.. 원래 계획은 까치 오방장 두루마기에, 왕세자가 돌에 입었다는 사규삼에.. 만들고 싶은 게 널렸었지만...
내 능력은 여기까지야..하고 스스로를 토닥토닥해 줍니다. 뒤로 갈수록 박음질 해야 할 부분에 '뭐 한 번 입고 말 거니까..'하면서 작은땀 홈질을 하지를 않나.. 박음질 한 땀이 손가락 마디 만 하지 않나.. ㅋ 그렇습니다. 가끔 홈쇼핑에서 미싱 선전이 나올 때 마다 사까마까신을 뿌리치느라 또 혼이 났습니다.
돌을 넘기고 나니 뭔가 한시름 덜은 기분입니다.
먼저 연년생 아빠가 된 회사 동기가 '이제 한 7부 능선은 넘었군요'라고 응원아닌 응원을 해 줍니다.
곧 회사 복직하면 바느질이고 뭐고 정신없이 살아야겠지만 이게 데뷔글이자 은퇴(?)글이 되지 않길 빌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