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를 해도 좋다...고 댓글 주신 극소수의 분들께 용기를 얻어 정말로 도배합니다.)
-----------------------------------------
아일랜드 테이블을 완성한 건 이미 한참 전이다.
엉망진창 주방이 공개되는 것이 부끄러워서,
주방 벽에 선반과 수납장을 달고 그 릇도 제자리를 찾아준 다음 포스팅을 하려고 차일피일 미루었으나,
그런 날은 정식 오픈 전에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오늘 깨달았다.ㅠㅜ
--------------------------------------
벽을 바라보는 싱크대를 두지 않고 거실 정중앙에 커다란 아일랜드 조리대를 만들었다.
렌지도 개수대도 여기에 설치했다.
장점은 부엌일을 하는 사람이 소외될 일이 없다는 거.
단점은 설거지감을 짱박아 둘 수 없다는 거. ㅠㅜ
당최 어질러 놓을 수가 없다. 아 망했어~~
이러저러하게 생긴 아일랜드 조리대를 만들어줘, 라며 대강의 밑그림을 건네자 남편은 단박에 거절했다.
"테이블톱 사주기 전에는 아무것도 안 만든다." 라고 남편은 단호히 선언했다.
테이블톱이란 톱이 장착된 테이블로서 큰 나무를 재단할 때 꼭 필요한 것이다.
남편의 도발에 나는 어떻게 대응하였나.
그냥 못 들은 척했다. 그리고 남편은 그날 밤부터 아무 말 없이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알흠답고 이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닌가? ㅎㅎ
그렇긴 하지만 테이블톱 없이 원형톱만 가지고 정밀한 재단을 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며 솔직히 말해 무식한 짓이다.
계량저울 없이 베이킹 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겠다.
가로 2m 40cm, 세로 88cm의 아주 커다란 조리대이다.
앞에는 자주 쓰는 것들을 두려고 양쪽에 선반을 달았다.
선반은 냄비도 거뜬히 들어갈 정도로 깊다. 그렇다고 냄비 자리는 아니고 뭘 두어야 하나...
뒷쪽으로는 서랍 3통과,
문으로 닫아 가릴 수 있는 2단 선반을 넣었다.
개수대 아래쪽은 뻥 뚫어달라고 했다.
설거지 할 때도 편하고 쓰레기통을 안쪽으로 쑥 밀어넣고 쓰기도 좋다.
예쁜 원단으로 미니 커튼을 만들어 달아주려고 한다.
타일 경험이 별로 없어서 삐뚤빼뚤...
모자이크 타일을 저렇게 대규모로 써본 적이 없어서 고생 좀 했다.
황금의 제국을 틀어놓고 차분히...
타일 작업하는 동안 1회부터 12회까지를 몰아보았다.
힘든 시간 함께 해준 고수씨 고맙소.. 내가 <피아노> 때부터 당신 좋아했는데 지금 이렇게 나를 도와주는구랴.
우리집 아일랜드의 포인트는 옆선이다. 타일을 상판의 윗면에만 붙이는 게 아니라 옆면까지 이어서 내려오게 하는 거.
계산은 잘 했는데 기술 부족으로 대략난감한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으나 줄눈으로 막 문질러서 감췄다.
언뜻 보면 잘 붙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렌지는 가스냄새나지 말라고 전기렌지를 넣었다.
(밀레 4구렌지 비싼데 남편친구 O규씨가 지원해주었다. 고맙삼~ 불안했는지 렌지후드 연통까지 택배로 보내주어서 감동 ㅎㅎㅎ)
오 완전 깔끔한데!
개수대가 작은 편이라 걸리적거리는 것 없게 세제통도 개수대에 넣고
수세미도 벽에 착 붙는 것으로 사놓았다.
싱크대 설치는 이번에 처음 해보았는데 별로 어렵지 않았다.
축사에 하나 더 만들어야겠다.
(남편아, 들었나?)
가구를 만들 때 남편의 크나큰 문제점.
원가절감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당최 생각할 줄 모른다.
저 서랍을 보라.
정녕 서랍의 옆면과 밑면까지 전부 자작합판을 써야했던가?
서랍은 물론이요 안 보이는 숨은 데까지 전부 자작나무다.ㅠㅜ
저 상판을 보라.
타일 붙이고 나면 보이지도 않을 곳에 24mm 집성판재를 통으로 썼다.
저거 한 장에 8만원이 넘는다.ㅠㅜ
잔소리 하면 나 안해 나 안해~ 하면서 금세 삐져버리기 때문에 뭐라 말도 못한다.
그래도 내 마음에 쏙 들게 만들어주는 사람은 남편뿐,
만드는 도중에 이랬다저랬다 몇 번을 맘을 바꿔도 욕 안 하고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도 남편뿐이다.
남편,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