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주산겐도를 보고 나서 찾아보고 싶었던 것은 고시라카와 상황이 말년을 머물렀다는 호주지였는데
일행이 먼저 발견한 것은 요겐인이었습니다 . 어라 들어본 이름인데 하고 다가가보니 노부나가의 조카이자
히데요시의 측실, 나중에 히데요리를 낳은 차차가 죽은 아버지 아자이 나가마사를 공양하기 위해 지은 절이라고
하네요.
차차가 자식을 편하게 낳을 수 있게 지은 곳이 요도강가에 있어서 그녀 이름이 나중에 요도부인이 되더군요.
오이치( 차차의 어머니)의 세 딸 차차, 오하츠, 그리고 오에요 세 사람의 인생을 다룬 사극 공주들의 전국이란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드라마의 이름이 고우일까 지금도 의문인데요 실제로 막내딸의 이름이 고우가
아니라 오에요라고 사료에는 나와 있더라고요. 고우는 오히려 가가 백만석의 주인이 된 토시이에의 딸이름이고
자식이 없었던 네네 ( 히데요시의 정실)에게 토시이에와 마츠가 양녀로 보낸 딸이기도 한데 무슨 사연일까
궁금해하던 생각이 납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이 곳에 다와라야 소타츠의 역동감 넘치는 코끼리와 상상의 동물인 기린을 천장에서 바라보도록
그린 그림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소타츠 그림을 다른 절에서 보고 인상이 걍렬해서 다시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여행당시에는 사실 그런 세세한 것까지기억하기가 쉽지 않지만 돌아와서 다른 글을 읽다가 아하 하고 깨닫거나
어라 왜 놓쳤을까, 동선을 왜 그렇게 짰을까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토는 일산보다 따뜻해서 그런지 여기저기 꽃이 피어 있는 나무가 많아서 눈이 즐거웠습니다.
요도부인이 세운 절에 왜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이 걸려있나 했더니 요겐인은 화재로 소실이 되었다고 하네요.
나중에 요도의 막내 여동생이자 히데타다의 정실 부인인 오에요의 발원으로 다시 지었기 때문에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이 걸려 있는것이라고 합니다. 이 곳은 히데요시가 죽고 나서 히데요시를 따르는 사람들과 도쿠가와쪽의
싸움이 있었을 때 당시 이에야스가 거처하던 후시미성의 싸움에서 이에야스의 부하들이 마지막까지 성을 지키다가
최후를 맞이한 후시미성의 잔재를 옮겨 지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들의 뜻을 잃지 말자는 의미일까요?
이 나무 역시 후시미성에 있던 것을 옮겨 심었다고 하니 나무의 나이가 400살이 넘은 셈이네요.
인간이 죽어서 신이 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나라, 그래서 교토에는 히데요시 신사가 있더라고요.
우리들에겐 정말 생소한 생각인데 일본만이 아니라 로마에서도 황제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신으로 숭배받은 것을
기억해보면 이것이 일본만의 특색은 아닌가 봅니다.
임진왜란의 악연으로 히데요시하면 우리에겐 중립적으로 그에 대해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이지만 일본인에겐
백성에서 간파쿠까지 올라간 희망의 상징이었다고 합니다. 처음 일본에 갔던 오래 전, 교토의 박물관에서 가이드가
일본인이 좋아하는 인물의 순위에서 히데요시와 이토 히로부미를 꼽는 것을 보면서 두 나라 사이의 거리에 대해
생각하던 때가 기억납니다.
오다 노부나가 밑에서 일할 때 표주박 모양을 표식으로 이용해 전쟁에서 크게 이긴 후 노부나가로부터
표주박을 문장으로 쓰도록 허용받고는 그 때부터 히데요시의 상징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었는데 여기 오니
표주박 모양에 가득 적힌 사람들의 기원이 주렁주렁입니다 .
사실 이 곳은 호코지를 찾아가다가 도중에 만난 곳인데 호코지를 찾으려니 잘 보이지 않습니다.
호코지, 큰 절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곳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 곳이라서 당연히 규모를 크게 생각하고
찾았으나 나라의 고후쿠지처럼 이 곳도 전란의 와중에서 소실이 되었는지 아니면 도쿠가와 가문에 의해서
터를 빼앗겼는지 범종 말고는 절로서의 기능이 별로 없어 보이더군요.
히데요시가 남긴 금이 너무 많아서 히데요리에게 모이는 세력을 견제하려는 도쿠가와 가문에서는 호코지의
재건을 부추겼다고 합니다 . 히데요리는 갖고 있는 재산중에서 상당한 액수를 써서 호코지를 재건하는 와중에
이 종을 주조했는데 여기에 쓰인 문구를 트집잡습니다. 이에 배알이 틀린 요도 부인측은 히데요시에게 도움을
받은 다이묘들과 더불어 이에야스측과 싸우고, 싸움에 져서 도요토미 가문은 멸망하고 맙니다.
종을 보려고 하니 다가와서 참배를 위한 돈을 내야 한다고 알려주더니 일행이 들어오니 설명을 해주더군요.
그런데 이 절에서 일해서 그런지 아무래도 히데요시쪽에 유리한 해석을 해서 재미있었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포즈를 딱 잡아주네요. 우리들 말고도 사진을 부탁하는 사람이 많았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지요.
그 다음 찾아간 곳이 귀무덤이었습니다 .오래 전 가보았지만 함께 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찾아간 곳에서 뜻밖의 장면을 만났습니다.
여자 분 둘이서 아리랑을 틀어놓고 노래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살짝 들여다보니 가사는 일본어로 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이 뒤에서 묵념하는 사이에도 노래소리는 계속 이어졌지요. 발음으로 보니 한국에서 온 여행객은 아닌 모양이고
그렇다면 이들은 재일 조선인일까, 사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아무리해도 끝나지 않는 노래, 그런데 이상하게 발걸음을 뗄 수 없는 겁니다. 실례인줄 알지만 노래도중
말을 걸었지요.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와서 아리랑을 부르는지, 혹시 재일 한국인인지
그러나 그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일본인이라고, 그럴까, 아니면 무슨 사연이 있을까 고개 갸웃하면서 자리를
떴지만 그 날 내내 귓가에서 그녀들이 부르던 아리랑이 맴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