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어떤 그림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화요일의 경우라면
아무래도 오전에 읽는 두 화가중에서 한 명의 그림을 아니면 두 사람의 그림을 다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게 되지요. 오늘도 역시 화요일 수업의 after로 고야의 그림, 그 중에서도 그의 후기 그림을 찾아서 보게 되네요.
화가에 관한 책읽기 그 다음 일본문화사를 통해서 일본의 국학이 성립되어 나가는 과정을 살펴본 다음 다음 시간에는
모여서 겐지 모노가타리를 영화로 보자는 약속을 정하고, 점심에 등장한 새로운 메뉴와 봄방학에 가족끼리 스페인과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중이란 현아씨의 말에 평소에는 바로 집에 와야 할 시간, 이야기에 취해서 한참을 더 머물면서
다양한 정보를 나누었지요.
프라도에서 만난 고야를 생각하면서 그림을 골랐습니다. 후기의 그림에 끌리는 이유는 아마 인간성속의 어두움을
드러낸 그의 힘에 끌리기 때문이겠지요? 초기의 그림만 보아서는 그가 후에 어디까지 그릴 수 있을까 상상이
별로 진도가 나가지 않더라고요. 재능은 있지만 과연 어디까지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는데 갈수록 그는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 화가인가 관심이 생기던 때가 기억나네요,
타인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웃거나 분노하다가도 과연 그런 자격이 네겐 있는가 시선을 안으로 돌리게 되는 일이
종종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고야의 이 시기 그림을 보는 것은 제겐 그런 효과를 마음 깊이 느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reading입니다. 읽는다고 하는 일에 권위를 부여해서 아우라로 인해 독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모두 다 읽을 만한 것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글도 많이 있습니다. 누가 그것을 정하는 것인가
밖에서 읽어라 마라 정해주는 것도 질색이지만 제게 존재하는 독서의 편향에 대해서도 가끔은 이래도 되나
왜 어떤 분야에 대해선 진입도 못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접근을 막는 요소인가 생각하게 되는 적도 많은데
독서라는 제목의 이 그림앞에서 생각이 많아지네요.
바로 위의 이 그림은 프라도에서 마그네틱으로 된 것을 구해와서 냉장고 앞에서 매일 만나고 있는 중인데요
그 날 그 자리에서 고야의 그림으로는 이 것 하나를 선택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까맣게 잊고 있지만 그런 선택으로
인해 오늘도 고야는 일상에서 만나는 화가가 되고 있는 셈이로군요.
너무나 강렬하고 그 자리에서도 마음이 오그라들게 하던 이 작품,아마 고야가 그린 것이라는 것을 몰라도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아, 이 그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어 라고 말할 것 같은 작품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의
장면을 그린 것인데요 그리스 신화가 수많은 신화중에서도 어린 아이들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끔 듣습니다. 이제 이 나이가 되니 어두운 그림은 싫다고, 아름다운 그림만 보고 싶다고 하는 소리를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면서 과연 사람은 아름다운 것만 만나고 살게 되는 것일까요?
여기저기서 들리는 실직이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진 사람들 이야기,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하기 어려운 천재지변
신문을 펴들자마자 달려드는 눈감고 싶지만 감을 수 없는 기사들, 이런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 눈감고 싶어도
감을 수 없는 것들과 이 그림들은 정면으로 마주보게 하는 묘한 힘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