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책을 읽으러 온 쫑마마가 제게 그림 한 점을 보여주더군요. 구글을 검색하던 중인 모양이었는데
렘브란트 자화상이 한 장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림 뒷 배경에 글씨가 있어서 보니 구글이 박혀 있더라고요.
어라, 내가 검색할 때는 없던데 네 화면에는 렘브란트가 뜨니? 알고 보니 오늘이 (15일) 렘브란트 탄생 407주년인가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튼 생일이라고 하네요.
이런 날, 아무래도 렘브란트 그림을 보고 싶어지네요. 태어나서 사람의 마음을 확 잡아당기고, 잊혀지지 않는
여러 점의 그림을 남긴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은 날이기도 하고요.
물론 렘브란트만은 아니었습니다. 라파엘로의 그림 한 점, 화가 이름도 몰랐던 그림 한 점 나중에 알고 보니
티치아노였더라고요 그리고 파리의 오랑주리에서 만난 모네, 그 때 처음으로 낯선 세계로 진입하고 있구나 내가
그렇지만 이 매력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 같구나 그런 예감이 확 들더라고요. 이성적으로 든 생각이라기 보단
이질감이 들면서도 앞으로 확 밀치고 그냥 살기 어려운 한 세계와 만나고 있던 그런 묘한 예감이라고 할까요?
희미한 예감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질긴 인연이 계속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었습니다.
돌아보면 15년, 그림과 끈질긴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미술시간의 빈 도화지만 보면 어찌 할 바
모르고 당황하던 사람이 이제 거의 매일 그림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러니 인생은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네요.
베토벤 트리오의 연주를 들으면서 보고 있는 렘브란트, 그러고 보니 네덜란드에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곤 있지만 계속 우선순위에 밀려 가 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로마로 가던 중 비행기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서 암스테르담에서 하룻 밤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딱 하룻 밤의 인연. 새벽에비행기 타러 가는 길, 여기가 렘브란트와 고흐의 나라로구나, 언제 그들의 그림을 만나러 올 수 있을까? 언젠가 꼭 올 수 있겠지, 그렇게 수런거리던 기분이 기억나기도 하고요.
당시의 책읽는 여성은 당연히 성경만 읽었을까요? 아니면 이렇게 몰두해서 읽게 만드는 다른 소재가 있었을까요?
이번 금요일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함께 읽는 날이라 아무래도 초대 기독교의 형성에 관한 글을 함께 읽게
되네요. 그리스 로마적인 문화에서 기독교 문화로의 이행과정, 일단 국교로 확정이 되고 나서의 변화, 이런 것들을
추적하면서 읽다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고, 아하 그래서 하고 드디어 해결이 되는 부분도 생기네요.
무덤에서 살아나온 예수가 엠마오에서 제자들과 저녁식사 하는 장면, 이 장면을 그린 수없이 많은 화가들중에서
렘브란트,그리고 카라바지오의 그림이 제겐 가장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예수를 부활한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겐 성화를 보는 기분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지만 제겐 신앙이 없어도 그림을 자꾸 보게 만드는 두 명의 화가
렘브란트, 그리고 샤갈의 성화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가끔은 카라바지오의 그림도 .
오늘 밤 쫑마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 만났더라도 구글의 그림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보니
우리가 하는 선택이라는 것이 과연 나만의 것인가 생각지 않을 수 없네요. 덕분에 즐거운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