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에 이어서 ........
그런데 고흐의 일생에 아주 중요한 동료 화가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폴 고갱이지요.
전직 선원船員과 증권거래소 출신인 고갱은 35세에 뒤늦게 화가의 길로 들어선 인물이며
후에 고흐와 고갱은 둘 다 서양미술사에서 위대한 후기 인상파 화가로 자리매김합니다.
예술을 통해서 만나게 된 고흐와 고갱이지만 서로의 성격과 사고체계는 판이하게
달라서, 마치 역사 <드라마>에서 주인공과 반대 개념의 인물이 꼭 설정돼 등장하듯이 그
와 같은 애증愛憎의 관계로 이해하시면 되겠어요.
폴 고갱의 기념비적인 명화로 1897년 ~ 98에 걸쳐 완성, 139.1×374.6cm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질문과 철학적인 주제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그림이지요.
<꽃밭> 1883년 작
이 작품은 본래 고흐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색채 표현과
붓질에서 여성적인 주의력과 섬세함이 진중하게 전달돼 오지요?
다른 작품들의 붓 터치에 비하면 그 대조적인 화풍으로 인해 한 화가에게서 사물의
다양한 표현방식을 보게 됩니다.
고흐의 강한 개성이나 인상으로 볼 때 그는 남성적인 야성과 굵고 거친 표현력으로
인해 비유한다면, 마치 막 베어낸 생생하고 거칠거칠한 ‘통나무’ 같다고 할까요?
그의 손길을 거친 화면에 나타나 있는 굵직하고 에너지 넘치는 붓 자국들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여성이 화장대 앞에 앉아서 화장하듯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붓질
을 하며 작업했을 것으로 짐작이 되네요. 파스텔 톤의 곱게 가라앉은 색채에 정감
情感이 느껴지고, 꽃향기가 화면 밖으로 번지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아비뉴의 가을 포플러 가로수 길> 1884년 작
가을은 계절의 황혼으로서 만물이 자연의 질서에 의해 걷어 들이고, 묵은 것은 떨구어
내며 갈무리하는 계절이 되겠지요. 그래서 만나게 된 인연은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게 되는,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불교적 진리가 엄격히 적용되는 시간이 오게
된 것입니다. 익숙했던 것은 떠나보내야 하고, 정들었던 인연과는 서로 풀려나야 하는
‘시절인연’이 돌아온 것이지요.
가을 가로수 길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쓸쓸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여인의 긴 그림자가
더욱 무거운 듯이 보입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겨울을 지나서 오는 새봄이 새 소생을 가져다 줄 것이기에, 정작
아쉬움은 다시 ‘환희’로 바뀌게 되겠지요. 죽음 같은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대지에는
또 다시 생명의 맥박이 약동하는 대자연의 소통이 시작됩니다.
<붓꽃, 아이리스Irises> 1889년 작
1889년 5월 8일, 고흐는 생 레미Saint Remy에 있는 가톨릭 정신요양원(원래는 수도원이
있던 건물)에서 1년간 입원할 때 요양원 내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실을 제공
받게 됩니다. 그때 요양원의 정원에 한창 피어나고 있던 <붓꽃, 아이리스>을 강렬하고도
선명한 색채로 표현해서 그렸는데요,
고흐는 이 <붓꽃>이 사악한 영혼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 ‘자연의 형상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해서, 그 의미를 화폭에 담고자 노력하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현재 이 작품은, 세계의 가장 비싼 미술품 순위에서 한화韓貨로 <1,210억 원>에 가격이
매겨져 있다고 하는군요.
<해바라기> 1887년 ~ 1889년 사이 작
한 예술가의 대표작은 그 사람의 이미지를 상징하는데 고흐에게 있어, <해바라기>가
그랬습니다. 1887년부터 1889년 사이에 고흐는 모두 11점의 <해바라기>를 그렸다고
해요.
파리 시절에 그린 <네 송이의 해바라기>는 활짝 핀 해바라기 꽃잎이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해서 정열적인 매력을 전달하고 있기도 하지요.
원래 해바라기는 색채나 생김새로 볼 때 이글거리는 태양을 연상시키는 화사한 큰 꽃
인데,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는 특히 원시성의 생명력으로 꿈틀거리며 시각적인
율동까지 화면에 개성적으로 표현되고 있어서 입니다.
아무래도 고흐의 “정열적” 이미지는 해바라기 연작에서 비롯되었을 거란 생각입니다.
위의 노란색 배경의 <해바라기> 그림은 고갱이 마음에 들어 했던 작품으로 “빈센트의
양식을 보여주는 완벽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9월 작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과 함께 고흐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고흐는 사흘 밤, 잠도 자지 않고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혼신을 다한 걸로
알려지고 있지요.
이 카페는 오래 전부터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였고, 토론장이었으며 주정꾼들의
은밀한 장소이기도 했답니다. 고흐는 “나는 간혹 낮보다는 밤이 더 생동감이
있어 색채가 넘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라고 말했는데요,
이런 일상적 삶의 공간이 회화의 주제로 자리 잡은 건 인상주의 시기에 들어와서
부터라고 합니다.
“이번 주에 그린 두 번째 그림은 바깥에서 바라본 어떤 카페의 정경이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옆으로 별이 반짝이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밤 풍경이나 밤이 주는 느낌, 혹은 밤 그 자체를 그 자리에서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
― 1888년 9월 ―
이 시절은 가스등의 불빛이라서 밤하늘의 별이 반짝이는 걸 볼 수 있었나 보네요.
그런데 화가들 중에서 고흐만이 유달리 밤풍경의 명화가 많지 않은가요?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1886년 작
경제적‧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든 시기로, 화면에 네덜란드 시절의 칙칙한 색채
가 두드러지게 남아 있어서 어두운 시절의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데요,
<자화상>은 한 인간, 겉모습의 실상을 그리지만 내면의 보이지 않는 심상心象을
현실에 그대로 반영反影하고 있을 겁니다.
“종종 나 자신이 엄청난 부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단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만의 일을 찾았기 때문이야(어쩌면 지금 이 순간만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내 마음과 영혼을 바칠 수 있고 삶에 의미와 영감을 주는 그런
일 말이다.”
“.....예술이란 인간을 항구로 태워가는 강력한 조류 같은 것이라는 어떤 확신이야.
물론 인간 자신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말이야. 어쨌거나 사람이 자신의 일을
찾는다는 건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나 역시 불행한 인간은 아니지.”
― 1883년 3월 11일 ―
<귀를 붕대에 맨 자화상> 1889년 작
◆ 고흐가 귀를 자르게 된 사연 ―
고흐는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과 그림에 대해 마음껏 토론하고 예술의
미래를 변화시키며, 최고의 가치가 돈이 아니라 예술적 창의성이라고 믿는
예술가의 공동체를 꿈꿔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각자의 개성은 다를지라도 자신이
좋아했던 고갱을 우선적으로 마음에 두었겠지요.
마침 태양을 따라서 남프랑스로 옮긴 고흐는, 벗인 고갱에게도 남프랑스에 올 것을
권유하여 그의 청을 받아들인 고갱이 오게 되자 두 사람의 공동생활이 시작되었죠.
그러나 두 사람은 원래 성격과 생활방식이 다르고, 예술관도 달랐기에 자연히
갈등 관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고갱은 금전적인 면에 집착이 있었던 듯하고
게다가 고흐에 대해서는 “내가 너보다 한 수 위다.” 이렇게 은근히 무시하며
자신의 예술적 우월성을 의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가운데 1888년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두 사람은 심하게 싸우게 되었고,
그 결과로 정신적인 발작을 일으킨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는 불행스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는군요. “자신의 그림을 혹평하는 자의 말이 듣기 싫어 잘라버렸다.”
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흐의 말년기 작품들에서 ‘녹색’이 주조主調를 이루며 화면에 나타납니다.
이 시절, 그는 녹색의 매력에 푹 빠진 듯 적절하면서도 절묘하게 표현하는 연출
능력을 보이죠.
어떤 심리적인 문제가 있거나 혹은 치료 중이라서 정서적 안정을 위해, 힐링 컬러
(Healing Color)라고 할 수 있는 색감인 녹색을 자주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신적으로 불안 증세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상처를, 자연의 대표적인 색
인 녹색을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위안을 삼았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녹색은
시각적으로 긴장되거나 상처받은 마음을 이완하고 치유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림 배경에 일본 후지 산이 보이는 <우끼요에>를 그려 넣었군요.
<편백나무와 별이 있는 길> 1890년 작
하늘 저편에 별 하나가 빛나는 편백나무 그림을 아직 갖고 있네. 최근에 시도한 그림
이지. 밤하늘에 희미한 달이 떠 있고 칙칙한 땅 그림자 위로 가느다란 초승달이
보일락 말락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바삐 지나가는 구름 낀 군청색 하늘에 떠 있는
연분홍과 녹색의 별 하나가 놀랄 만큼 찬란한 빛을 발한다네....... 낡은 여인숙
창문은 오렌지색 불빛으로 밝혀지고, 우람한 편백나무 한 그루가 아주 어두운 모습
으로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어.
길 위에는 흰말이 끄는 노란 마차와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두 인물이 보이지. 어찌
보면 아주 낭만적인 모습이며, 또한 프로방스의 전형적인 풍경이기도 해.
― 1890년 6월 ―
<생 레미 요양원>에 있던 시절,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그린 이 편백나무 풍경
역시 녹색이 음악의 리듬처럼 전체적으로 번져나가 소용돌이 현상을 이루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성서가 있는 정물> 1887년 작
화면에 펼쳐진 성경은 <이사야 53장>이고 성경 앞쪽으로 노란 표지의 소설책은 동시대의
프랑스 작가인 에밀졸라의 소설, <삶의 기쁨>이라고 합니다.
성聖과 속俗이 한 작품 안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대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이사야 53장> 일부 ―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성서적 의미는 그리스도를 예견하고 있으나, 이 구절을 읽으면서 고흐 자신이 처한 심경을
삭이거나 감정이입 되면서 ‘성서적 위안’ 을 얻으려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운동하는 죄수들> 1890년 작, 모스크바 <푸쉬킨 미술박물관> 소장
<감옥의 뜰, The Prison Courtyard> 혹은 <갇힌 자의 순례>
이런 그림은 따뜻한 자비심의 인성이 돼 있지 않으면 절대로 그릴 수 없는 그림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흐의 ‘눈’은 다른 화가들이 생략하거나 미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세계와 사물에까지 사랑의 눈으로 깊이 있게 보고, 그들의 한 순간을 작품화
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와 희생의 시간들이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네요.
고흐가 자살하기 7개월 전에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데요, 사람들은 누구나가 상황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대부분 <현실>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유형流刑 생활을 하는,
존재들이기도 하지요. 누구나 스스로가 원해서 오게 된 세상은 아니기에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라든가 희망이 늘
상존해 있어야 하고, 또한 <자유>가 궁극적인 지향志向이 되어야하는 이유이겠지요.
<네 그루의 나무가 있는 가을 풍경> 1885년 작
저는 이 그림을 <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이라는 책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그때까지도 고흐에 관한 많은 책들에서 이 작품은 소개되지 않았었는데, 비로소
가을 맛과 그 스산한 정취가 살아 있는 <네 그루의 나무가 있는 가을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어찌나 감동했던지!
“아, 고흐도 이렇게 가을의 풍취가 물씬 풍기는 멋진 풍경화를 남겼다니........ ”
하면서요. ‘갈색 톤tone’에서 다양한 채색을 길어와, 리듬감 있는 붓 터치로 ‘덧칠’에
변화를 주면서 가을나무의 분위기를 한껏 감칠맛 나게 살려냈습니다.
미술 작품에서 1)좋은 구도 2)색채력 3)묘사력
이 세 가지가 한 작품 안에서 조화를 이루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네 그루의 나무가
있는 가을 풍경>에서는 어떤 한 가지의 흠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요?
즉 구도와 색채력은 뛰어나지만 사물의 묘사력(객관적 표현력)이 서투른 작품이 있고
묘사력은 탁월하지만, 구도와 색채력이 미숙해 작품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으며
색채력과 묘사력은 좋은 반면, 구도에 취약성이 있는 작품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대개가 기초에 관한 것으로, 새내기 작가들에게나 해당되겠지요.
<자고새가 있는 밀밭> 1887년 작
한 때, <종달새가 있는 밀밭>으로 알려진 그림이지요. 이 작품은 고흐가 1886년부터
2년 동안 파리에 머물러 있을 때 그렸다고 합니다. 고흐에게 있어 파리 시절은
자신만의 색깔과 그 작품세계를 찾기 위해 노력한 시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는 틈틈이 자연을 찾거나 시골의 전원으로 나가 관찰한, 인상적인 정경을 캔버스에
담았을 것입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이삭이 익어가는 밀밭, 한바탕 휘몰아치는 바람에 춤추듯
출렁이는 밀 숲 위로 기운차게 날아오르는 자고새의 날개 짓을, 생동감 넘치는
화풍으로 표현해낸 작품이라 할 수 있지요.
밀 줄기 중간과 하단 부분의 붉은색 점들은 <양귀비꽃>이라고 하는군요.
그림을 보기만 하여도 바람 이는 소리하며, 바람에 일렁이는 밀 이파리들이 이리저리
쓸리고 밀치는 시원스러운 자연음自然音이 들리는 듯합니다.
<종로서적> 1982년 초판발행
고흐의 <자고새가 있는 밀밭>을 처음 본 것은 80년대 초에 출판된 시집의 겉표지
에서였는데요, 종로2가에 소재해 서점과 출판업을 겸업하던 <종로서적>에서
펴낸 《세계의 명시》라는 시집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헌책방에서만 구할 수 있는 옛 책이 되었지만, 한 시절 손때가 묻을 정도로
자주 펼쳐보며 밤을 지새우곤 하던 책이었죠. 그때에는 표지 그림의 ‘작가’가 누구
인지를 몰랐었는데 후에 <고흐 화집>을 펼쳐보면서 알게 된 것입니다.
고흐와 동생 테오의 무덤: 《오베르 공동묘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년 3월 30일~1890년 7월 29일) 화가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 1857년 5월 1일~1891년 1월 25일) 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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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당신이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이 말들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 1879년 10월 15일 ―
“해방은 뒤늦게야 오는 법이다. 그동안 당연하게든 부당하게든 손상된 명성,
가난, 불우한 환경, 역경 등이 그를 죄수로 만든다. 이 감옥이란 편견, 오해,
치명적인 무지, 의심, 거짓 겸손 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
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 1880년 7월 ―
빈센트, 당신은 <상처 입은 치유자>
당신의 작품인 수많은 《그림》들과 편지의 그 《글》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사람들의 몰이해가 정신적 상처를 주고, 고독과 가난이 삶을 더 힘들게
했을 것이지만 후세인後世人인 우리는 당신의 그림들을 보고 편지를 읽으며
위로받고, 위안을 얻습니다.
당신의 삶은 생전에 돌려받아야 할 영광이 제거된 온통 천형天刑으로 얼룩진
상처들뿐이었는데.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정녕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
자기 속에 ‘새 인간’이 탄생 되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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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에서 열리는 「빈센트 반 고흐」 명화 전람회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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