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에 아내가 깨는 바람에 덩달아 잠을 깼다.
아내는 화장실에 가고 따라 일어난 나는 목이 말라 주방으로 갔다가
놀라 뒤로 넘어갈 뻔 했다.
싱크대 구석에 있는 전자레인지 뒤에서 시커먼 쥐가 한마리 쓰윽 나와 펄쩍 펄쩍 튀더니
냉장고 뒤로 후다닥 숨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 나는 허억하고 뒤로 물러서면서 미친듯이 뛰는 가슴을 진정 시키려고
숨을 고르는데 화장실에서 나온 아내가 왜그러느냐고 묻는다.
본대로 얘기하면 아내도 충격받을 것 같아서 나는
침착하게 돌려서 말을 하려는데 꽉 잠긴 말이 목구멍을 넘어오지 못한다.
<믹믹..믹키 마우스가...> 까지만 겨우 목구멍에 올려놓고,
< 집..집안에 들어왔나봐...>는 턱을 떨며 입모양으로만 떠듬떠듬 말했더니
아내가 <난 몰라 >하고는 잽싸게 안방에 들어가면서 문을 쾅 닫는다.
솔직히 남자로 태어난게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고백컨데 나는 세상에서 쥐가 제일 무섭다.
건드리면 물컹한 그 느낌 때문에 집게로 죽은 쥐도 집어들지 못한다.
그런데 그 무섭고 징그러운 쥐가 집안에 들어와 있고
남자인 나에게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나는 바깥으로 쫒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거실문을 활짝 열어놓고
손에 잡히는 대로 진공청소기를 돌리면서 냉장고를 쾅쾅 두드렸다.
그런데 그 쥐가 열린 거실문을 통해 밖으로 튀었으면 서로에게 쉬웠을텐데
유감스럽게도 냉장고 밑에서 튀어 나오더니 거실을 가로질러 소파밑으로 숨어버렸다.
그 넘도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당황했는지 활짝 열어둔 문을 보지 못하고
당장 숨을 곳만 보이는 모양이다.
여름 밤 열린 문으로 나방이랑 딱정벌레가 얼씨구나 날아 들어와
그야말로 파티를 벌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고 용감하게 쥐와 맞서기로 했다.
근데 뭘로 맞서지? 진공청소기로 쥐를 빨아들일 수는 없는지라
마당에 나가서 내 키보다 큰 대나무 막대를 하나 주워가지고 왔다.
내가 소파 위로 올라가서 펄쩍펄쩍 구르며 막대기로 소파를 탁탁 두드리니
쥐가 놀래서 튀어나와 다시 냉장고 뒤로 숨는다.
땀을 뻘뻘 흘리며 냉장고와 소파 사이를 오가는 상황을 몇번 반복하다가
밤새도록 이럴 수는 없다 싶었는데 묘안이 떠올랐다.
(그래... 코시랑 협공을 하면 쉽게 잡을 수 있는데...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나는 즉시 마당에 있는 코시를 불러 들이고 역할을 분담했다.
내가 몰이꾼을 할테니 너는 사냥꾼을 하라구...알았지!
코시는 집안에 들어서자 마자 상황을 파악하고 사태를 장악했다.
(역시 사냥개는 다르군...ㅎㅎ 진즉 불러 들일걸...)
코시가 소파 밑에 코를 박고 소리를 지르며 꼬리를 흔드는데
얼마나 격렬하게 흔드는지 엉덩이가 같이 흔들린다.
엉덩이 춤을 추며 기쁨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니
아마 코시는 소파밑의 저 쥐와는 이미 초면이 아닌 모양이다.
결국 내가 막대기를 탁탁 두드리며 쥐를 몰아붙이자
쥐가 겁을 먹고 다시 냉장고를 향해 튀고, 기다리고 있던 코시가
앞발로 보기 좋게 한방 먹여 상황 종료~
이게 내가 원헸던 시나리오였다.
유감스러운 것은 쥐가 이 시나리오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냥꾼보다 몰이꾼을 더 만만하게 본 쥐는 나를 향해 달겨들었고
깜짝 놀라 펄쩍 뛰는 내 다리 사이로
쥐가 먼저 코시가 이어서 휙 휙 지나갔는데
마치 톰과 제리를 보는 것 같았다.
꽤많은 제리는 계단을 타고 이층 아이들 침실로 달아나고
톰이 신바람을 내며 바짝 뒤쫒아 따라가는데...
나도 화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후다닥 이층으로 쿵쾅쿵쾅 올라갔더니
맙소사~쥐가 잠자는 아이들 침대를 밟고 창문 커텐 뒤에서 어른거리는게 보인다.
아이들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고...
그래...독안에 든 쥐는 아니지만 이제 방 안에 든 쥐다 싶어
나는 아이들을 조용히 깨워 내보내고 문을 닫아버렸다.
방안에 있는 은폐물은 침대 두개, 옷장 하나뿐.
나는 침대를 하나 세워서 공간을 확보하고 다시 코시와 작업에 들어갔다.
쥐가 뛰어 다니는 바닥을 맨발로 서 있으려니 발바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아
나는 침대위에서 대나무 막대기를 어슬프게 휘두르고
톰은 옷장에서 침대로 침대에서 다시 옷장으로 오가며 제리를 쫒아다니는데...
아마 한 시간 이상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완죤 땀에 젖은채 헐떡거리다가
나는 코시가 상황을 즐기고 있을 뿐 쥐를 잡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리고 이대로 날이 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기쁨에 겨워 괴성을 지르며 쥐를 쫒아다니는 저 멍청한 녀석이
고양이가 아니라 개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내가 한심해졌다.
문밖에서도 아이들이 잠을 못자고 쥐가 튀어 나올 경우를 대비해 나름대로
계단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는 모양인데...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과감하게 코시를 내보냈다.
그리고 바닥에 내려서서 용감하게 막대기를 찌르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상황을 빨리 종료하고 내일 학교가는 아이들을 재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의 무거운 책무가 어깨를 누르자 두려움이 사라졌다.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 톰과제리는 끝났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미키마우스가 얼마나 컸던지 묻길래
나는 아주 작고 귀여운 녀석이었다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순전히 나의 희망사항이었지만...
바보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