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에 두고 하루에 조금씩 보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요즘.
세계 미술관 기행시리즈 중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편인데요, 사연인즉 이번 겨울에 아이들과
뉴욕 여행이 결정되었거든요. 내년이면 한 아이는 일본으로 한 아이는 군대로 집을 떠나게 되어서
셋이서 함께 여행하는 것은 앞으로 어렵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조금은 무리를 해서 표를 구했습니다.
일본으로 가고 나면 캐나다에 사는 이모집에 가 볼 기회가 점점 멀어진다고 가능하면 그 곳에 가서 이틀이라도
자면 좋겠다고 보람이가 제안을 한 덕에 토론토에서 이틀을 자고 나면 뉴욕에서는 꼬박 7일 정도 시간을
낼 수 있게 되어서 이왕이면 여행가기 전에 보고 싶은 그림도 제대로 점검해보고 동선을 줄일 수 있게
해보자는 생각도 있고 그런 시간자체가 여행안에 포함된다는 생각이기도 해서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렘브란트 그림 두 점을 보았습니다. 책에서
한 점은 늙은 나이의 화가의 자화상이고 다른 한 점은 호메로스 동상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명상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인데요 그 그림의 금줄에 매달린 메달리용에 알렉산더의 모습이 그려져 있더라고요.
그것은 그 그림을 보면서도 한 번도 발견해보지 못한 것인데 역시 설명이 있으니 더불어 바라보게 되었고
그림 찾으러 들어가니 메트로폴리탄 뮤지움의 그림 서비스가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렘브란트 그림은
다 이미지가 X표가 되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곳을 찾다가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알렉산더 그림이라서 혼자 웃게 됩니다.
아마 평소라면 그 그림은 한 번 보고 패스했을 것인데 아침에 읽은 글로 인해 다시 바라보게 되니까요.
금요일 간송 미술관 가는 길에 호호아줌마님이 제게 말을 하더군요.
목요일에 지리산 발해봉에 다녀왔는데 흐드러진 철쭉을 보면서 이 철쭉을 생애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노라고요. 이상하게 그 말이 가슴에 와 닿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더라고요. 그렇구나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듯이 , 나도 심하게 앓고 나서 다시 밖에 나가면 이 봄을 혹은 이 가을을
나는 과연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비감하게 생각하는 때가 있었지 하고요.
세상과 이별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중의 하나가 바로 렘브란트 그림을 제대로 보는 일도 포함이 되는데
이상하게 아직도 기회를 못 만들고 있네요. 사실은 이번에 네덜란드와 독일의 미술관을 보러 가야지 하고
이탈리아 가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행중에 제가 현대 미술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보던
outreach님이 제겐 뉴욕 미술관 관람이 딱이라고 강력한 추천을 해주기도 했고 저도 그 곳에 마음이
기울기도 했고, 더구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 네덜란드는 별로 매력을 못 느끼는 모양이라서 선뜻
포기하고 말았거든요.
그림보기도 인생과 참 닮았답니다.
처음에 무엇을 보려고 들어와도 꼭 그것만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불쑥 불쑥 나를 보라고
들이미는 작품들이 생기니까요. 그러다보면 처음 마음과는 달리 엉뚱한 그림속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파생되어 이미 처음에 무엇을 생각했던가와는 무관하게 다른 곳으로 막 끌려들어가니까요.
처음에는 그런 것에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해보고 나니 이것도 좋지 않은가, 그래서 넉넉한 마음으로
이렇게 저렇게 길을 만들어 따라다니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그림인데요 책속의 종이 질과는 달리 프린트가 흐려서 아침에 받은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지는
못하네요. 그래도 다시 한 번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중입니다.
문을 열어놓고 듣고 있는 오보에 소리와 그림 보는 시간의 몰입이 묘하게 어울리는 일요일 아침
오늘은 이 정도로 하루를 시작하기 전의 즐거움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