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전, 짧은 시간동안 여러가지 일을 하는 조금은 분주한 날입니다.
지혜나무님과 함께 읽는 화가이야기, 그 전에 조금 일찍 가서 바이올린 연습을 하지요.
화요일에 배운 기법을 유념하면서 복습을 하는 아주 짧은 시간이어도 그 시간의 그런 집중이 하루를 여는
즐거운 신호가 된다고 할까요?
연습중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월요일에 이 수업에 대해서 말을 듣고 흥미를 보이던
혜정씨가 연락도 없이 바로 온 것입니다. 역시 그녀답다고 속으로 감탄했습니다.

셋이서 오늘 읽은 화가는 지노 세베리니, 로스코, 에곤 실레, 그리고 포포바였습니다.
물론 아주 간단한 바이오그라피이지만 디자인 전공인 지나씨의 설명, 그림을 자주 보러 다녀서 이런 저런
뮤지움에서 만난 작품이 눈에 익은 저,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일이 인생의 나머지 기간중에 꼭
하고 싶은 일의 하나라는 혜정씨, 이렇게 모여서 화가에 관한 글을 읽다보니 반응이 즉각적이고
활발해서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미래파 활동에 참여한 작가라는 정도로만 알던 지노 세베리니, 그런데 지난 밀라노 여행에서 시립미술관의
미래파 그림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서 큰 도움이 되었지요. 그리고 나서 다시 읽는 글은 훨씬 풍부한
느낌으로 들어와서 역시나 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화가 네 명을 읽고 나니 벌써 10시, 사실은 10시까지 들소리에 북치러 가야하는데 늦어버렸습니다.
늦었다고 포기할 순 없지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빼곡히 가득찬 연습실, 벌써 북소리가 가득하네요.
수업을 마무리하고 나니 즐거운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이 마침 고양시 사물놀이 경연이 있는 날이라고 하네요. 들소리의 강사에게 배우는 정발 고등학교
사물놀이 팀이 마지막 마무리 연습을 하러 왔었고 우리들에게 미리 선을 보여준 것인데요
상쇠의 구령에 맞추어 인사를 한 다음 가락이 다 끝날 때까지 서로 흥을 돋우면서 북, 장구, 징, 깽과리가
서로 어우러지기도 하고 엇박으로 들어가면서 서로를 자극하기도 하는 연주였습니다.
앉아서 구경하는 우리들도 덩달아 무릎에 손바닥을 두드리면서 온몸으로 반응하기도 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미리 잡힌 점심 약속만 아니라면 어울림 누리에서 진행된다는 공연에 가고 싶다고 느낄 만큼
제 안에 잠재하던 기운을 뒤흔들어버렸습니다. 혹시 사물놀이를 하는 팀은 없는가,새로 시작하는 팀은
하고 물었지만 역시 날짜를 맞추는 것은 어렵더라고요. 마음이 들썩여서 북채를 사들고 왔습니다.
집에서 연습하면 좋겠다 싶어서요.

수유너머에서 만난 은유씨,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 지금까지 계속 만나는 사람인데요
이번에 그녀가 고양 민우회의 글쓰기 강좌 강사를 맡았다고 하길래 오늘 점심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지헤나무님은 7주간 북 연습을 쉬고 글쓰기에 참가하는 바람에 그녀와 은유씨는 강사와 학생으로 만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세 명이서 함께 만나 맛있는 점심, 그보다 더 맛있는 수다가 이어졌네요.

만남은 그것이 책이건 사람이건 자신의 닫힌 부분을 한꺼번에 격파하는 힘이 있는 경우 그 인연이
더 오래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런 만남이 꼭 첫 눈에 반해서 이루어지는 것만도 아니란 것은 은유씨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첫 세미나에서는 그저 맹숭맹숭한 관계였다고 볼 수 있었는데 두 번째 세미나에서 우연이 옆 자리에 앉게 되고
그렇게 안면을 튼 다음 서서히 접촉의 빈도가 늘어나면서 어라, 어라 하는 사이에 제 생활에 상당히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셋이서 만나는 자리가 처음인데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피어나는 이야기,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싶더라고요.
릴케의 로댕에 관한 이야기를 했더니 은유씨가 바로 어제 밤 우연히 잠에서 깨어 새벽에 그 책을 다시
읽었노라고 정말 좋아하는 책이라고 해서 놀랐습니다.
천년습작을 읽다가 어딘가 책장에 있던 릴케의 로댕을 꺼내 놓았거든요. 다시 읽어보려고.
오늘 바람이 서늘한 벤취에서 릴케의 로댕을 읽고, 저녁에 지혜나무님이 지혜와 둘이서 함께 바이올린을
배워볼까 한다는 전화를 받고, 이런 저런 보이지 않는 실들이 아름다운 협주곡을 만들어가는 상상을
했습니다. 기분좋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