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에 새 집을 짓고 이사온 이웃이 화단을 새로 만들고
꽃모종을 나누어 달라고하네요.
안그래도 이사온 이웃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했는데
빈 화단에 심을 꽃을 나누어 달라고하니
마침 잘되었다 싶습니다.
우리집 화단에는 늘상 비좁을 정도로 화초가 많아
아까워서 솎아내지 못하는 것들을 덜어 나눔하면 인심도 쓰고
화단정리도 되겠기 대문입니다.
한마디로 도랑치고 가재잡게 되었다는 말이지요.ㅎㅎ
나눔할 꽃을 고르기위해
새로 만들었다는 이웃 집 화단에 미리 가보았는데
화단이 해가 잘 드는 남향 목조주택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어서 꽃으로 치장하면 주택의 품격이 한층 더
높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단에 퇴비를 듬뿍 뿌려두라고 당부 하고선
나눔할 꽃들을 골라보았습니다.

한포기만 잘키워도 어른 키만한 꽃대가 열개이상 올라와
주렁주렁 꽃을 다는 디기탈리스는 나눔대상 1호.
숙근중에서도 추위에 강해서 한번 심어놓으면
매년 올라오고 또 씨앗이 떨어져 번식도 저절로 되지요.
아래는 지난 봄에 피었던 디기탈리스.

이번에 이사온 이웃 바깥주인은 디기탈리스처럼 키가 훤칠하답니다.
키만 큰게 아니고 인물도 미남배우 안성기보다 준수하고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누어보면 내가 마치 대기업 그룹회장 앞에선 과장처럼 느껴질 정도로
기품이 있는 멋진 남자입니다.
나이로는 내가 열살 가까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아네모네와 라넌큘러스 새순이 여기저기 올라오네요.
해마다 형형색색의 꽃이 풍성하게 피어서 정원가꾸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기특한 녀석들이지요.
라넌큘러스는 꽃이 화려한 반면 일찍 지고
아네모네는 수수하지만 꽃이 오래갑니다.
라넌큘러스 몇포기와 아네모네 몇포기 덜어냅니다.
아래는 지난봄에 피었던 라넌큘러스.

그러고보니 새로 이사온 이웃의 안주인은 라넌큘러스와 이미지가 비슷하네요.
라넌큘러스 군락속에 숨어있으면 찾느라 한참 헤맬 것 같습니다.

부추밭에 부추가 쑥쑥 올라왔네요.
약간 두툼해 보이지만 낫으로 베어 새콤달콤 무쳐 먹고
입맛에 따라 회처럼 초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을 것 같은 이 부추군단은 실은 부추가 아니라 수선화 새순입니다.ㅎㅎ
해가 거의 들지않는 음지에 있는 화단에서도
모진 겨울 추위를 견뎌내고
또다시 새순을 올리는 수선화 군단을 보니 기특하고 흐믓합니다.
나는 수선화 일개 연대 병력을 차출하여
이웃집으로 파견근무를 명합니다.
아래는 지난 봄에 피었던 수선화.

또 그러고보니 이웃집 늦둥이가 병아리색 입술을 가진 수선화를
빼어 닮았네요. 이제 막 유아원에 다니기 시작한 귀여운 공주는
타고난 탈랜트라고 합니다.
한번 노래를 부르면 하루종일 쉬지않고 콘서트를 한다는데
이 재능은 유전된 것으로 집떨이 때 마을주민들에 의해
확인되었답니다.

튤립새순이 길게 줄을 지어 올라온게 사단규모는
될 듯하네요. 튤립은 여러품종을 모아서 밀식하면 꽃들이
잘 어울려 보기가 좋습니다.
튤립이야말로 이웃집 화단에 어울리는 꽃이 틀림없습니다.
아래는 지난 봄에 피었던 튤립입니다.


발디딜 틈도 없이 올라온 상사화.
꽃농사 짓는 것도 아닌데 화단에 이렇게 많은 상사화가 필요하지는 않지요.
일전에 강건너 사는 이웃 집에서도 한삽 퍼 갔는데 들어낸 자리에서 더 많이 올라온 것 같네요.
큰 삽으로 시원시원하게 한삽 퍽 덜어내며
지난 여름 장맛비를 맞으며 곱게 피었던 상사화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상사화는 잎이 먼저났다가 시들고 나면 꽃대만 이렇게 올라와서 꽃을피우지요.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상사화라고 한다네요.


정말 지난 겨울처럼 추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화단이 매발톱 새순으로 넘쳐야 할 때인데
지난 여름 그 풍성했던 매발톱이 다 어디로 갔는지...
왕겨라도 넉넉히 덮어 주었으면 겨울을 넘겼을텐데
지난 추위에 풍성했던 매발톱들을 다 보내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 모진 추위를 견디고 드문드문 올라오는 매발톱이 있어 반갑고 고맙습니다.
몇포기 되지는 않지만 매발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 보내줍니다.
아래는 지난여름에 피었던 매발톱.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요.
그러고보니 우리가족이 지리산 골짝으로 이사온지도 어느듯 10년이 다되어 갑니다.
그런데 말과는 달리 강산은 변치 않네요.
강물은 여전히 흐르던 곳으로 흐르고 산은 그냥 그자리에 있던 그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만큼 긴세월이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막상 지나고나니
십년 세월도 지금 타이핑을 하는 내 열손가락 길이를 합한 것보다 결코 긴것 같지 않습니다.
새로온 이웃을 보니 우리가족이 이사올 때 생각이나서
세월타령이 나왔네요.ㅎㅎ
모쪼록 새로 이사온 이웃이 이 골짝 오지마을에서 꽃처럼 아름답고 꽃처럼 향기롭게
피어나기를 바라며 오늘 또 하루를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