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전체적인 내용이 눈에 쑥 들어오는 것은 아니나 희미하게 나마 윤곽이 잡히는것 같기도 합니다.
비록 틀린점이 있더라도 한번 정리 해둠으로 다음에 깨달음의 단초가 되고자 다시한번 정리해봅니다.
지난 12월 첫주모임에서 철학적사상도 결국은 나선형으로 돌고돌며 확대발전하는것이라고
어느분께서 들은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말이 공감되기도 하여 생각나는대로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위의 그림중 지난주 공부한것은 교부철학 부분이었습니다.
푸코가말했듯이
지식은 구분이요 ,배제이며. 그렇기때문에 곧 권력이다.
그리스도교의 경우도 교리상의 정설이 자리 잡기전까지는 이단이 존재하지않았다
특정한 종파를 이단으로 구분하고 배제하려면 즉 그종파를 추방할수 있는 권력을 확보하려면 정설을
만드는 주체가 필요하다.그주체는 바로 카톨릭 교회였고 그수뇌는 교황이었다.
(이상은 남경태님 철학 인용)
나무를 있는그대로 보고 느끼고 사용한다면 그리 궁금함을 많이 갖지 않아도 되겠으나,
우리의 차원으로 보고 느낄수 없는 idea 혹은 신이란 존재는 좀더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교부철학은 이데아, 신이란 방점을 찍은 중세에 이를 어떻게 설명해나갈까?에 대한 철학이라고
보면 될듯싶다.

실재론은 보편자가 있음을 규명하는것이고
유명론은 말그대로 이름만이 있을뿐이다라는것을 규명하려 한것이다.
아벨라르의주장은 실재는 개별자일뿐 보편자 같은것은 없다는것이다.
굳이 보편자를 말한다면 그것은 실체가 아니라 낱말일 뿐이다.
실재론자들은 개별자를 가리키는 낱말, 즉이름을 실체로 착각한것이다라고 말한다.
개는 짖어도 개라는 낱말은 짖지않는다.
실재론자들은 달리는개 , 짖는개 같은 개별자를 보고 개의보편자를 상상했지만 개의 보편적명사 즉 개념일뿐
실재하는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모든개(개별자)를 따로 이름지을수 없어서 개라는 명사를 사용할뿐이다.
문법적 습관때문에 생긴 착각이다.
보편자에대한 탐구는 많은 개별자(수천종의 개)관한 논의 방식 즉 언어와 논리를 분석하는것에 불구하다
(남경태철학 참조)
유럽에서 중세교부철학이 한창이던때...
개별자를 이야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서적은 중세 유럽에서 쫒겨나 이슬람쪽으로 가있다가
15세기에 스페인을 통해 다시 유럽으로 들어오게된다.


교부철학과 이슬람에 가있던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이 단초가 되어 스콜라 철학으로 발전하며
이는 실재론과 유명론은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근현대철학의 계보가 되고 있다.
요즈음 철학적 흐름이 어디서 출발하여 어떻게 흘러가게되었는지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되니 재미있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는 이미 제마음에 들어와 있는 나의 신의 존재에 대해 찾아가는여정이
엄마찾아 삼만리 이야기처럼 흥미롭기도 두렵기도 설레기도 재미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