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함께 한 자리에서 우연히 나온 바이올린 이야기, 그런데 고맙게도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성연씨가 자신의 아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바로 찾아가서 언어와 악기를 교환해서 가르칠 수 있는가
물었고 이야기가 잘 진행되어 월요일에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도 저는 사실 레슨을 피아노로
해야 하나, 새롭게 현악기를 배워야 하나 마음의 결정을 못한 상태였는데 갑작스런 만남과 더구나 그녀가
그 다음날로 레슨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에 고무되고, 또 한 가지는 일년째 배우고 있는 든든한 아군이 있다는 생각에 고민하다가 그냥 하다가 못한다해도 소리내는 법이라도 배울 수 있으니 그 또한 귀한 기회가 아닌가 싶어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헤어지고 나서 버스타고 수유너머에 가는 길,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듭니다. 아니, 이래도 되나?
또 새로운 일을 벌일 시간은 있는거야? 하다가 그만두면 꼴이 이상하게 되는 것 아냐? 마음속의 악마가
저를 유혹해서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하게 만들더군요. 공연히 연습용 악기를 샀다가 그저 장난감처럼
굴러다니고 마는 것 아니야? 그렇게 되면 아이들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을까?

머릿속에 공상이 가득해서 듣고 있던 불어 소리에도 집중이 되지 않더군요. 그 때 갑자기 everymonth의 artmania님이 오랫동안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연락을 해보았습니다. 혹시 연습용 악기가
남는 것 없는가 하고요. 마침 놀고 있는 악기가 있다고 해서 일단 빌리기로 약속을 했는데
오늘 점심 시간에 악기를 받았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 그 시간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그녀가 제게 준 용기가 가장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할 수 있다고, 평소의 태도대로 성실하게 연습하면 분명히 잘 할 것이라고
아직은 형체도 없는 ,아직은 시작도 못 한 일인데도 그 말이 주는 위로가 참 크구나 싶어서 신기하더군요.

시작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는 말이 마음에 확 와 닿는 날들이네요.
오늘 수업중에 올 연말에는 우리 집에서 송년회를 하자는 주장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올 연말? 그 때는 한국에 없을 거라고 했더니 꼭 그 때가 아니어도 앞뒤로 해도 된다고, 선생님이 음식을 두 가지
정도 준비하면 나머지는 우리들이 준비해와서 하면 된다고요.
올 해는 곤란하고 내년이면 가능하다고 했다가 돌아온 대답이었는데요, 아마 제게 오늘 요리책을 선물한
사람이 있어서 그런 이야기로까지 번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가 가능하게 된 것이야말로
올 해의 제게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지요.

사람이 사람과 만나서 만들어내는 놀라운 변화, 그것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로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고 또 다른 씨를 뿌리고 ,그런 즐거움을 누리는 날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나눈 이야기중에서 외국어를 배우고 싶지만 두려워 하는 사람들을 위한 링구아 포럼
이런 모임을 만들어서 새로 시작하고 싶어하는 언어에 입문하는 일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더니
artmania님미 그런 모임이 생기면 자신도 참가하고 싶다고 해서 웃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언어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그리고 악기와 친해지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2.3년은 걸리겠지요? ) 함께 연주할 수 있는 사람들과 접속할 것, 요즘 새롭게 제 관심영역안으로
들어온 두 가지 생각이 좋은 씨를 뿌리고 잘 자라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