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전화를 받았습니다. 화요일 모임이 있는 마리포사님이 사정이 있어서 수업을 하기 어렵다고요.
보통때라면 그래요? 그럼 한 번 쉴까요? 그렇게 반응을 했으련만 그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라 머리를 짜냈습니다.
수업은 도서관에서, 그리고 요리는 우리 집에서 하면 어떨까? 하고요.
10시에 시작한 evovlving self. 내용에 관련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진도는 얼마 나가지 못했는데 벌써
12시 40분, 그래도 소규모로 모여서 마음속의 이야기와 더불어 진행이 가능한 수업이라 조금씩 진화하는 느낌이
든 날이었습니다.
미리 재료를 준비해주신 호수님 덕분에 집에 와서 날치 알밥 하는 과정을 배우고, 다섯 명의 여자들이 함께
준비하니 금방 점심 밥상이 차려지네요.

집에 처음 온 지혜나무님이 우리 집을 예상하길 책으로 뒤덮인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훨씬 여성적인 공간이라
놀랐다고 해서 웃었습니다. 여기 저기 걸린 그림들에 얽힌 이야기도 나누고, 마침 피아노를 마루로 옮기면서
자리를 잃어버린 로스코의 포스터 한 점에게 새로운 주인을 찾아준 날이기도 했지요.

밥먹은 뒤처리를 부탁하고는 피아노 레슨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넉넉한 것이 아니라서 모르는 곳만 색연필로
표시했다가 물어보려고 해도 중간에 악보를 보면서 바로 치는 일이 어렵다 보니 결국은 처음부터 다 치면서
레슨을 받게 되는데요, 그래도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도 피아노에 앉아서 칠 수 있을만큼 담이 생겼다는 것이
신기하네요. 궁금했던 부분을 해결한 다음 요즘 연습을 시작했으나 벽에 부닥친 perhaps love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물었는데 그 곳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치면 된다고 하면서 그렇게 머리 싸매고 고민하던 부분을 한 방에
해결해서 보여주는 것에 놀라고 한 번의 시범으로 제겐 그렇게 벽으로 다가오던 부분이 해결되는 것도
신기한 시간이었네요.

공동체나 공동체로 꾸려가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으면 늘 그런 곳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처음으로 내가 사는 이 곳을 공동체로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왜 혼자서 고민하는가
그런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이야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 이런 씨앗을 품게 된 것이
바로 화요일에 새로 시작해서 이제 겨우 세 번째 만난 이 사람들과의 시간이 준 힘이 아닐까요?
물론 그 이전에 목요일 수업을 통해서 오랫동안 알아온 힘이 작용한 것이겠지만 그 시간은 거의 공부만으로도
모자란 시간이라서 사적으로 구체적인 것을 나누기가 어려웠는데 밥을 함께 해서 먹는 시간이라 그런지
밀도가 다르다는 기분이 드네요.

화요일 멤버중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고 연습하는 사람이 있어서 제가 그동안 마음속으로 바라기만
했지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현악기 배우기도 정신적으로 실질적으로 뒤를 밀어줄 사람을 발견한 것으로도
마음속에 진전이 생기더군요. 그런 에너지의 흐름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날들이기도 하고요.

너무 큰 것을 바라거나 마음에 두고 , 그 일을 할 에너지가 생기지 않아서 늘 망서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내게 가능한 것, 내가 손내밀 수 있거나 내민 손을 붙잡을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것, 그런 식으로 마음을
바꾸고 나니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도울 수 있는 일이 정말 산처럼 많이 보이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 주일에 한 번씩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지, 그 만남에서 무엇이 새롭게 파생하게 될 지, 그리고 나는
어떤 식으로 변할지 기대가 되는 날, 선물받은 음반 노틀담 드 빠리를 틀어놓고 귀기울이면서 로스코의 그림을
고르는 평화로운 시간, 스피노자식으로 말하면 능동적인 정서가 늘어나는 시간이 되고 있다고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