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닝 스톤 - Raining Stone]
- 사회적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바라보고 살 수 있겠는가?
감독 켄 로치 / 각본 짐 앨런 / 촬영 배리 애크로이드 / 편집 조너선 모리스 / 출연 브루스 존스, 줄리 브라운, 리키 톰린슨, 톰 히키 / 음악 스튜어트 코플랜드 / 1993년 영국 BBC작품 / 러닝타임 90분
실직자인 '봅'에겐 '콜린'이란 딸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랑스런 딸이 곧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성찬식을 맞게 됩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봅'의 가정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콜린이 일생에 한번뿐인 성찬식 때 입을 드레스 비용을 마련할 길은 묘연하고 친구의 잘못으로 유일한 밑천인 자동차를 잃어버리기까지 합니다.
결국 무리하지 말라는 신부의 권유도 뒤로 한 채 대출회사에 빚을 지고 드레스는 마련하지만 그 빚을 제 때 갚지 못하자 악덕 고리대금 업자에게 걸리고 맙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고리대금업자를 사고로 위장해 죽게하고는 결국 딸의 성찬식에 자리합니다.
제목 '레이닝 스톤'은 영국 북부 하층민의 고된 삶을 비유하는 매우 상징적인 말입니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비가 오듯 돌덩어리들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그 돌들을 피해 살아남아야 하는 어렵고 힘든 삶을 의미하는 말인데 이것은 성서적인 의미마저 담고 있습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봅에게 하늘에서 비오듯 쏟아지는 돌들을 피해가며 살기란 최악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비참함을 대변하고 이런 불가능한 상황속에서도 어떻게든 삶을 이어간다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이적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대변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봅이 고리대금업자를 죽게 한 뒤 신부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할 때 그의 입을 통해 나온 말들은 동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한국을 보는 것과도 같습니다.
"...저는 부지런하고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살아왔어요, 교회에도 부지런히 다니고 기도 생활도 열심히 하지만... 그런데도 빵을 먹기가 힘들어요..."
이토록 절망적인 삶을 켄 로치 감독은 전혀 과장됨이나 특별함 없이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그러한 정적인 연출은 오히려 격정적인 영화적 효과보다 훨씬 주인공의 삶을, 이 시대의 고통 받는 노동자와 실직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관객들로 하여금 동화되게 만들고 잔잔한 가운데 가난을 극복하려 애쓰는 한 가장의 눈물겨운 투쟁을 감동적으로 전달합니다.
감독 켄 로치는 1950년대 영국 프리 시네마(다큐멘타리 수법으로 노동계급의 삶을 거짓없이 그리려 한 영화운동)의 기수요, 현재까지도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파 감독들 중의 한사람입니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1968년도 작품인 "불쌍한 소" 이후로는 주로 극영화 대신 TV 드라마 위주로 작업을 해 왔는데 그의 작품 연보로써는 오랜 만에 나온 극영화일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큰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 "자유와 땅 - Land And Freedom" (1995)과는 다르게 90년대의 시작을 잔잔하고 작은 일상의 느낌과 삶을 다룬 작품으로써 그 무산계급의 절망과 희망을 새삼 생각하게 하는 수작입니다.
비록 우리 나라에서 개봉 일자는 늦었지만 90년대말 당시 I.M.F. 구제 금융 수혜의 아픔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총체적인 국난의 우리 사회에 작지만 매우 극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아이엠에프 시절보다 훨씬 살기 힘들어진 현재, 사회적 정의가 빛을 잃고 오직 돈과 권력을 탐하는 자들에 의해 대중의 당연한 행복추구권이 무자비하게 부정되는 2009년 대한민국에 던지는 뼈아픈 사회에 대한 질책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우리 보다 한 발 앞서 I.M.F. 구제 금융 수혜를 경험한 영국이 비싼 돈 들여 우리에게 과외공부 시켜준 셈인데 우리는 아직도 그들보다 훨씬 낙후된 상황에서 어쩌면 이리도 무지한지...
이걸 그저 안타깝다고 해야할지...
현재 비디오로 나와 있는 영화들 중에 하층민의 삶을 가장 감동적으로 그린 현대 영화의 걸작이라 생각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