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보나르, 그리스인 이야기 3부작으로 제겐 확 이름이 박힌 저자입니다.
처음 나왔을 때 사서 읽고 나서는 필요할 때마다 참고서적 삼아 들추어 보는 저자이기도 하지요.
그의 글을 읽다가 갑자기 보나르의 그림이 보고 싶어져서 일요일 늦은 아침 리히터의 연주를 켜놓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토요일 밤, 제겐 갈등의 밤이기도 합니다. 갈등하는 밤이라니?
일요일 오전, 늦게 일어나도 되는 날이라서 한 주일 동안의 꽉 짜인 일정에서 조금은 숨을 돌리고 토요일 밤은 몸이 허락하는 한
늦게까지 하고 싶은대로 살아보자 그렇게 저 혼자 마음을 먹은 날이지요. 그래도 역시 한계 시간이란 것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새벽 4시를 넘어서까지 깨어 있으면 다음 날 오전, 심지어는 오전을 넘어서까지 머리가 맑지 못해서 고생을 하거든요.
그것을 알면서 아주 가끔은 그런 한계를 넘어가네 넘어가지 말고 지금 자야 하는데 하면서도 (갑자기 노래 가사가 떠오르네요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 그 순간을 못 이기고 계속 깨어있게 되는 상황,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늦게까지 잤다면 문제가 덜 한데 이상하게 이런 날 눈이 일찍 떠지고, 그래서 악순환이 되풀이되지요. 후회하면서도 가끔 되풀이되는
이런 현상을 고민하다가 그러니까 사람이지 하고 마음을 돌려 먹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예술의 전당 서울 시향 연주회가 있어서 예술의 전당에 갔지요.그 때 음반점에 갔다가 이상하게 성악곡 앞을 서성이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 혼자 웃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단 한 번 노래 교실에 참가한 것인데도 사람은 자신의 기억속의 사건으로 장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구나 싶어서요. 결국 음반구입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어도 집에서도 성악을 틀어놓거나 어린이 동요집으로
오카리나를 불거나 피아노 곡에서 노래가 나오면 조심조심 불러보게 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왜 나는 고대 그리스에 그렇게도 끌리는가 가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자신들이 살아있는 그 순간에 격렬한 에너지를 담아서 살아간 사람들, 그런 격한 에너지에 응축된 다양한 감정들, 휘브리스를 넘지
않으려는 한계안에서도 아레테에 이르고자 전력을 다하던 사람들, 물론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 것은 아니었겠지만 제가 끌리는 부분은
바로 그런 점이 아닌가 싶네요. 보나르를 읽다가 보나르를 보는 아침, 사실 두 사람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도
지금 이 순간 저는 두 사람을 연관지어 생각하고 그림을 보고 있는 묘한 일치의 시간ㅡ 여기에 리히터의 연주까지 어울려 묘한
공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진한 커피 한 잔도 물론 어울려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