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도서관에서의 일입니다.
음반을 쌓아놓은 곳에 먼지가 가득한 느낌이어서
(아무래도 손이 자주 가는 음반과는 달리 오랫동안
그냥 그대로 있는 음반에는 저절로 먼지가 생기네요)
먼지를 털면서 오랫만에 무엇을 들어볼까 하고 뒤적였습니다.
그 안에서 발견한 오래된 음반하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리스트,풀랑,드뷔시,에릭 사티를
연주한 음반인데요 음반을 샀을 당시에는 그 음반에
마음이 확 열려서 들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한 구석에 몰려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겠지요?
그 이후에 세월이 흘러
음악에 점점 더 마음이 열린 저는 요즘 선곡에서도
달라진 저를 실감하곤 하는데요
오늘 아침,마루에 나가서 조금 볼륨을 높이고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스터디를 하기 전에도 마음이 동해서 진도보다 먼저
막 읽어나가는 책이 있습니다.
제겐 스캇 팩의 the road less traveled가 바로 그런
책인데요,어제 읽다가 neurosis와 character disorder의
차이에 대한 글이 마음에 와 닿더군요.
neurosis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이 내게 있다고 과도하게
자신을 책망하는 경우이고 character disorder는 모든 것이
네 탓이다,사회탓이다 환경탓이다로 돌리는 경우라고요.
우리 모두에겐 두 가지 성향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눈뜨고 성찰하는 힘을 갖는 것,그것이
심리치료의 목적이기도 하고,심리치료를 못 받는 경우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정직하게 돌아보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먼지속에서 나온 음반하나와 심리학 책은 어찌보면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묘한 상징성으로 아침부터
생각을 자극하게 되는군요.
음반을 들으면서 저와 음반의 인연을 살피게 됩니다.
살 때는 너무나 즐겁게 듣다가 이제는 거의 손대지 않게 된
음반도 있고,살 때는 무슨 마음으로 샀는지 그 다음에는
손이 가지 않다가 오히려 어떤 인연으로 그것을 다시 들을
마음이 생기고 그 이후로 계속 가까이 하게 되는 음반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만나고
그 사이에 그 음반속에 있는 작곡가를 알게 되어
새로운 귀로 듣게 되는 음반도 있구나,
어찌보면 이는 사람이 사는 삶하고도 비슷한 패턴이로군


그림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요?
원래는 리스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난 화가가 르동이었습니다.
이 분위기에 어울릴 그림이 아닐까 싶어서 그를 검색하고
들어왔는데 다른 이름들에 끌려서 미국의 상징주의 화가
알렉산더의 그림을 처음 보았고
그 다음 그의 그림을 검색하던 중 다른 콜렉션에 들어와
오랫만에 디벤콘의 그림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목표를 정하고 한 길로 매진하는 삶에도 아름다움이 있지만
돌아가는 길에도 그 길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날들입니다.


오늘 수업하러 도서관에 가면 음반의 먼지를 더 털면서
무엇을 새롭게 만날까 기대가 되네요.
음반의 먼지만이 아니라 여러가지로 먼지를 자주 털면서
살아야 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