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금요일,인사동에서 예술사 이야기를 읽는 날입니다.
인사동에서 내려 살짝 학고재 안을 들여다보니
일층에서 색다른 느낌의 전시가 있습니다.
점심 먹고 들러야지 마음에 꼽아두고
인사아트센터에선 무엇을 전시하는가 궁금하여
밖에 소개된 전시제목을 읽어봅니다.
눈길을 끄는 일층 전시가 있어 들어가보니
하이퍼 리얼리즘에 일루전을 가미한
담배와 사탕이란 소재로 그린 그림이 눈길을 끕니다.
한 번 다 둘러보고 역시 이 곳도 한 번 더 오겠다고
마음먹고 민예총으로 갔습니다.
오늘은 로마네스크를 두 사람이서 발제하는 날인데
둘 다 처음 하는 발제라 준비를 엄첨나게 해왔더군요.
덕분에 공부가 많이 되었고
모르던 것이 연결되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하고
말을 하려고 입을 떼었다가 역시 기억이 나지 않아
당황한 일도 있지요.
자주 경험하다 보니 절망감이 덜 하긴 하지만
역시 기분이 좋을리는 없는데
이상하게 그 당시에 그렇게 떠오르지 않던 말이
점심식사를 하는 중,혹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혜성처럼 떠오르는 일이 있더군요.
로마네스크하면 주로 로마식을 따른다고 간단하게 알려져있지만
비잔틴양식,북방 노르만 양식,카롤링거 르네상스시기의
양식,거기다가 오토황제의 신성로마제국시기의 게르만적인
요소에,스페인의 경우 무어인의 지배하에 이슬람식까지
그러고보면 문화란 한가지 양식이 아니라
지역에 뿌리내린 지역색에 이방에서 전해오는 주요한
영향이 합쳐지는 참 다양한 무늬를 형성한다는 것
그렇게 달라서 더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폐허가 된 서유럽에서
그래도 통합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로마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의 지배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권력이 한 군데로 모이면 그것이 갖는 순기능외에도
역시 역기능이 있는지라
문화의 창출과 문화의 파괴,이 두가지 역할을
중세기독교는 다 수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군운동의 파행성,그러나 그 덕분에 서유럽은
다른 문화,더 고급한 문화에 눈을 뜨게 되고
그것이 이후 서유럽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 채찍이
되니 한 현상이 오로지 좋다,나쁘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어제 수업시간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수도사들이 먼 지역까지
파고 들어가 원주민들의 저항에 대비하느라 견고한 성채를
지은 것이 로마네스크 양식이라면 (그래서 일종의
농촌의 경제를 반영하는 건물이기도 하고,내 주는 성채되시니
하는 루터의 찬송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채의 개념이라면
고딕식은 이제 도시에서 번영을 구가하게 된 상인들
즉 부르조아들이 자신의 세력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신에게 헌납한 건축양식,즉 도시의 삶을 보여주는 건축양식이라고
아주 간단하게는 정리할 수 있겠지요?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왜 투박한 건물을 올릴 수 밖에 없었는가
그것은 건축기술의 유무와도 상관이 있었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으면서 의문이 풀리는 것이
역시 함께 하는 수업의 큰 장점이 아닐까요?
점심식사 후 갈래 갈래 나뉘어 헤어진후
정각심님,켈리님,피오니님,민트님 그리고 저
다섯명이 그림을 보러 갔습니다.
인사아트센터,그리고 학고재의 4층을 다 둘러보았는데
학고재에서는 전시실을 지키고 있는 작가에게
설명을 부탁해서 자세히 작품과정을 듣기도 할 수 있어서
참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인사동에 간 날
별 일이 없군,늘 같다 이런 느낌으로 돌아오는 날은
단 하루도 없는 것 같아요.
늘 새로운 전시가 있고 그래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과 만나고 그리고 나서 그 곳을 떠날 때면
조금은 새로운 생각을 품고 돌아오게 되니까요.
그 다음 간 곳이 코엑스에 있는 영화관인데요
미리 캐롤님에게 소개받고
꼭 보고 싶어서 작정한 포 미니츠란 영화를 보러 간 것인데요
독일에서 있었던 실화를 다룬 영화,그리고 음악이 주인공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속에서 흐르는 음악이 그렇게 격렬하고
그렇게도 슬프고도 비장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그런 피아노 소리를 잊기는 쉽지않을 것 같네요.




영화를 본 다음 다른 일행과는 헤어지고
그 안에서 저녁으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켈리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이번 일년 거의 금요일 마다 음악회를 함께 다니면서
이제는 상당히 친숙해져 글보다는 말이 서툰 저도
입이 많이 열렸다는 것을 느낍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들으러
가는 날, 제대로 즐기면서 들을 수 있을까?
이제까지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레파토리라 기대반
걱정반으로 들어선 곳에서
베르디의 운명의 힘과 엘가의 첼로 협주곡
(첼리스트의 첼로소리도 일품이었지만 나중에
청중들의 환호에 두 곡이나 앵콜곡을 연주해주는 메너도
좋았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 이번 음악회의 메인인 교향곡 5번 연주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몰두를 했는지 다 끝나고 나서는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다 듣고 나서 다음에는 스트라빈스키와 브루크너를
들어보면 좋겠다,그리고 조금 준비하고 공부해서
내년에는 통영 윤이상 음악제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나오는 길,우리는 마치
산 하나를 넘은 기분을 느꼈다고 이야기를 했지요.
점점 다양해지는 레퍼토리로 인해서
음악회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고
그렇게 한 번 연주를 듣고 나면
집에서 다시 듣는 음반이 얼마나 새롭게 들리는지
정말 신기한 경험을 새록새록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것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고마운지요.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잠을 조금 잔 뒤에 가우디 임팩트를 읽었습니다.
로마네스크에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바르셀로나의 가우디를 만나는 시간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니
정말 하루가 풍성한 잔치처럼 느껴지는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