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바로 구상이 아닌 것이 추상이다,동어반복인 것같지만
맞는 말이지요?
추상이 to abstract에서 나온 말인데 원 뜻이 요약하다
응축시키다이지요.
그러니 추상회화는 사물을 요약,응축하는 것이라면
방법에 따라서 추상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데
그 점에서 차가운 추상,뜨거운 추상이라고 흔히
이야기되는 두 가지 추상이 가능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몬드리안하면 차가운 추상의 대명사처럼 이야기되고
칸딘스키는 뜨거운 추상의 대명사처럼 언급이 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뜨거운 추상에 끌리는 편이지만
요즘 그림을 보면서 차가운 추상에서도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을 보니
취향이란 늘 한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몬드리안은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인데요
그는 사실주의 전통이 풍부하게 살아있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엄격한 종교적인 전통하에서 자랐다고 하네요.
그가 영향을 받은 화가는 세잔과 마티스라고 하니
현대미술에서 세잔은 약방의 감초처럼 많은 화가들에게
그는 우리의 아버지란 말을 듣는 것이 허명이 아님을
알 것 같아요.

우선 그의 자화상 먼저 봅니다.
자화상을 통한 인상이 꼭 그림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자화상은 우리가 만나게 될 그림에 대한
인상을 예시해주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우리가 어린 시절 미술책에서 보는 화가의 그림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단 한 점의 그림이나
많아야 서너점의 그림을 보게 되지요.
그리곤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할 정도로 거기에서 머물고
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요즘 전시회에서 가끔 한 화가의 일대기를 볼 수 있는
귀한 전시를 만나게 되면
이렇게 만나는 전시야말로 보물이구나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네요.
오늘 아침 반 룬의 예술사이야기를 읽느라 만난
자전거님과 함께
수업 시작하기 전 에르미탸쥬 미술관 도록을 보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녀가 이번 여름 미국에서 그림만 보러 다닌 시간이
아주 귀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속에서
느끼겠더군요.
처음에서 마지막까지 그렇게 다양한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미국 갤러리를 열 곳이 넘게 다녔으니
그녀 눈에 이제는 화가의 특성이 잡히고
바로 바로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보아야 보인다는
르 코르뷔지에의 말을 새삼 실감했지요.
그런 인용구가 있다는 것을 모른채 그 이야기를 하길래
건축가 코르뷔지에도 바로 그 말을 했다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1900년에 그려진 이 그림만 보아서는 우리가 아는
몬드리안이라고 상상하기 어렵겠지요?



저는 이 시기의 몬드리안도 좋습니다.
특히 색감이

불과 몇년만에 그의 나무 그림이 이렇게 변화합니다.
무엇이 그를 변하게 했는지 조금 더 디테일한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어지는 대목이지요.

여기에 이르면 대상을 추측할 수 있는 근거는 캔버스에서
사라지게 되는데 수업중에 이런 현상을 reduction이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줄이고 줄여서 남는 것,이 곳에서는 수평과 수직의 선이
남게 되는 셈인가요?


흔히 라파엘로를 색의 마술사라고 평한다고 하더군요.
아직 색채심리학이란 과목이 생기기 전에도
그는 색의 배합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었다고요.
찬 색,따뜻한 색의 배합
색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색은 주변에 어떤 색이 존재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는 구성연작으로 들어가면서 아주 간단한 조형에 이르지만
그것을 색으로 보완해서 캔버스 자체가 새로운 우주를
형성하는 느낌을 보여주네요.

같은 캔버스라 해도 수직과 수평을 어디서 자르는가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조함이 가능한가와 얼마나 다양한 색의
배합이 가능한가가 중요한 것이로군 하고
생각해본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화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나면 간단한 것같지만
텅 빈 캔버스앞에서 선을 긋는 순간까지가 어려운 것이겠지요?

같은 규격의 캔버스라 해도 방향을 조그만 돌리면
그 곳은 다른 공간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감각적인 것,장식적인 것을 다 빼버리고 남은 골격
그것이 수평과 수직이라면 그것에 삼원색을 더해서
만들어낸 공간들,그것은 작가와 무관한 작품 자체의
공간이 되고 작품은 우리를 초대한다고 할까요?
이리 들어와서 함께 공간을 이해하자고.
공간을 느껴보라고.

바우하우스에 모였던 예술가들
그들은 히틀러가 보기엔 모범적이긴 커녕 퇴폐를 조장하는
작가들이었겠지요?
퇴폐미술전까지 열면서 그들의 경향을 공격받자
바우하우스에 있던 사람들은 각자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는데요
몬드리안이 택한 나라는 미국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특히 뉴욕의 아름다움,그리고 재즈의 멋에
취했다고 하더군요.

그가 좀 더 살았더라면 뉴욕에서의 그가 파악한 삶이
그림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도 1944년
전쟁의 끝을 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강의를 듣고 나니
네덜란드의 드 스틸 운동과
신지학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고 싶고
몬드리안이란 화가 자체에 대해서도 관심이 더욱
깊어질 것 같은 즐거운 예감이 드는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