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누리 도서관에 간 날,사실은 미술에 관한 책들을
마음에 두고 서가를 뒤적이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혹시나 해서 역사책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는데
눈에 띈 책이 바로 이 책 박제가와 젊은 그들이었지요.

누구에게든 그런 분야가 있을 것 같아요.책을 읽는 사람들에겐
이 장르라면 혹은 이 시기라면 아니면 이 사람이라면
두 말할 것 없이 뽑아서 읽게 되는 것
제겐 한국사에선 바로 정조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박제가를 주로 다룬 책은 처음이라 관심이 갔지만
저자의 이름이 생소합니다.박성순이라니 누구지?
그 책옆에 같은 저자가 쓴 조선시대의 유학이 서양 학문을
만났을 때를 다룬 책이 한 권 더 있네요.
그렇다면 조선 후기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사람인 모양이다
일단 합격점으로 하고 책을 빌렸습니다.

지난 번에 읽은 바람의 화원도 역시 정조시대를 다룬
소설이지만 아무래도 주인공이 김홍도와 신윤복이다보니
검서관으로 발탁된 박제가,이덕무,유득공 이런 인물들이
언급될 일이 없었지요.
오늘은 거꾸로 박제가를 비롯한 백탑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니 화가들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습니다.
같은 시대라도 누가 주인공인가에 따라서
그림이 얼마나 달라지는 것인지요.



오늘 밤 들어와서 검색해본 박제가의 그림들입니다.
아니,북학의의 저자가 그림도 그렸어? 하고 의아한
사람들도 있을 것 같지만
그는 시,서,화에 능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글씨는 어린 시절부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즐겁게 꾸준히 썼다고 하는데요
그가 바로 어린 김정희의 자질을 알아보고 제자로
삼았다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조선시대에 서자로 태어나서 산다는 것은
홍길동이 말한 말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설움에 대해서요
단지 그것만이 아니겠지요?
그런 시대에 서자로 태어난 박제가는 그래도 어린 시절에는
그의 뛰어난 재질을 알고 협력한 아버지 덕분에
상당히자유롭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여기 저기 이사를 다니면서
경제력이 없는 어머니가 삯바느질로 아이들을 키웠는데
밖에서 보면 어머니 혼자 살림으로 키우는 아이같은 테가
나지 않았다고 하니 어머니의 고생이 손에 잡힐 듯 하지요?
손 위 누나가 그를 정신적으로 정말 열심히 후원했으나
역시 누나 마저 결혼하고 나니 외로운 시절,배고픈
시절을 뼈저리게 겪은 그에게
백동수라는 좋은 이웃이 생깁니다.
백동수는 정조시대에 무예도보통지 (제목이 가물가물해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선의 무예를 그림과 더불어
정리한 책의 저자로 무예로도 인간관계로도 이름을
날린 사람이라고 합니다.그에 대해서는 방각본 살인사건이란
소설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그 뒤로 유심히 보니
정조시대의 글메서는 자주 등장하더군요)
그를 통해 박제가는 이덕무를 알게 되는데요
두 사람의 우정은 정말 아름답구나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이 서구,유득공,여기에 연암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박제가가 연암을 찾아간 날,반가운 마음에 연암이 제대로
의관을 갖추지 않고 달려나가
그에게 음식을 장만해서 대접하는 글을 읽으면서
저는 연암의 그릇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연암이 등장하면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바로 홍대용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의 사람들중에서 관심이
깊은 사람이 바로 홍대용이라서
그에 관한 기록이 나오면 눈을 크게 뜨고 읽어보게 됩니다.
그가 중국의 천주교당에 가서 파이프 오르간을
처음 보는 악기인데도 원리를 파악하고 바로 연주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원체 음악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연주를 즐기는 그였기에
가능한 에피소드겠지요?
박지원과 홍대용의 우정,홍대용과 중국에서 만난 학자들과의
사귐,그리고 백탑파들의 우정을 나이를 초월한 우정에
관해서 읽으면서 만남으로써 서로를 확장하는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읽을 때마다 감동하는 저를 보는
것도 이 시기의 독서에서 재미있는 현상중의 하나이지요.
홍대용은 정조가 아직 어린 시절
정조의 스승 역할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 두 사람의 만남이 당연히 열매를 맺었을 것이고
홍대용은 정조에게 젊고 패기있으면서 문장에도
조예가 깊은 이들을 넌지시 추천을 했다고요
그래서 정조가 왕이 되고 나서 그들중 박제가와
이덕무에게 중국에 가는 사신들틈에 끼어
연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새로운 지식,백성들의 삶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지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그 곳은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바로 북학의이고
이 책은 박지원이 읽으면서 바로 내 말이 이 말이라고
즐거워 했다는 북학파의 포문을 여는 글이기도 했다고 하는군요.
요즘에는 쉽고 아름다운 우리 말로 번역되어 나온
북학의도 있으니 구해서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들을 알아주는 정조라는 큰 그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여러가지 새로운 생각들
그러나 정조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1800년
그 이후로 정조의 모든 정책을 갈아엎은 정순왕후와
그녀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인해
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지요.
저자는 박제가 한 개인에게서 실학의 발아와
여물어가는 과정,그리고 급작스러운 몰락과정까지
그 모든 일들이 다 드러난다는 점에서
지금의 우리가 그를 읽고 발견하면서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박제가와
젊은 그들이 아직도 유효한 독서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더군요.
아,나도 이 시기에 관심이 있는데,그러나 전문가를
위한 책은 어쩐지 접근이 어려워라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면서도
저자의 생각이 잘 드러난 대목이 있는 이 책이라면
길잡이로 넉넉한 독서가 될 것이라고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수없이 연행길을 오고 간 사대부들이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지만 새로운 눈으로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제대로 바라본 사람들만이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저 역사의 어느 시기를 장식하는 그런 기록이 아니라
지금 읽어도 가슴뛰는 그런 기록을요
박지원의 기록,홍대용의 기록,그리고 박제가의 기록들
그런 기록들이 지나간 세월의 흔적으로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마음뛰는 독서가 되는 것
그것이 고전이 지닌 매력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