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나오면서 전공에 관련된책을 다 없애버렸습니다.
그 때는 왜 그렇게 단호하게 책을 버렸을까?
지금도 가끔 생각하게 될 때가 있지요.
아마 다 마치지 못한 공부에 대한 미련때문에?
혹은 괴로움때문에 ,아니면 다시는 돌아갈 일이 없을 것이란
점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확인을 하고 싶어서?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겠지요.
그런데 어제 오전에 영어책 읽기 모임에서
everymonth의 자전거님이 묘한 말을 해서
혼자 깜짝 놀란 기억이 나네요.
자신이 잘 아는 사학을 전공한 사람은 그 이후에
사학에 대해선 한마디 말도 없이 주로 심리학책 이야기만 하고
제 경우는 영문학을 했으면서 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고
주로 역사나 미술사 이야기를 한다고요.
그렇네요,잘 생각을 못했었는데 하고 말았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제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을까요?
미국에 공부하러 갔다가 방학중에 와 있는 한 아이가
돌아가면 읽게 될 다음 학기의 소설인
톰 소여의 모험을 함께 읽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함께 읽고 싶다니 무슨 의미냐고 물었더니
어머니께서 이야기하더군요.
아직 어려서 *우리 나이로 하면 중학교 일학년* 특히
우리식으로 하면 국어를 힘들어한다고요.
그 쪽에서도 리딩에 더 신경을 써서 준비해서 보내라고
메모가 온 모양입니다.
그러니 미리 예습차원에서읽을 수 있었으면 하고
연락을 한 것이지요.
번역본 책을 읽어본 사람들에겐 그 책이 주인공 톰이
학생시절에 벌이는 기발한 모험담이 이어져서 재미있지만
사실 남부식의 사투리와 한없이 이어지는 모험담이
읽기 쉬운 책이라고 할 순 없지요.
화요일에 처음 인사하러 온 아이에게 조금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빌려주면서 읽을 수 있는 만큼 읽어오라고
그냥 읽지 말고 가능하면 인물들 상호간의 관계,작품구성에
관해서 고민하면서 한 번 읽어보자고 주문을 했습니다.
사실 저도 너무 오래 전에 읽은 소설이라
새롭게 읽으면서 이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외국싸이트에 들어가서 문학작품을 분석해놓은 과정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게 되고 그러다보니 오래 전 대학원에서
작품 분석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되더군요.

이번 여름은 참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소설을 분석하면서 아이와 함께 읽어보는 시간
미국사 수업을 준비하면서 질문을 하는 아이를 만나는 시간
9월학기 영국의 대학에서 처음으로 미술사 강의를 들어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 아이와 미술사를 함께 읽는 시간
영국의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와 함께
서양사 전반에 관해서 함께 읽는 시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 속에서 의문이 생겨납니다.
왜 이런 과정을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거나
공부하려고 준비하는 아이들과만 해야 하는가?

거의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세계와 다시 만난 날
문학작품에 대한 접근을 통해서 아이들과 어떻게 만나면
좋을까를 생각해보게 되는 실마리가 생긴 기분이어서
어리둥절하네요.
마음을 열고 돌아보면 길아닌 것이 없구나
갑자기 그런 마음이 생겨서 마음이 뭉클하기도 합니다.

이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 전시에 온 라투르의 작품인데요
이렇게 보니 현장에서 제대로 본 것과는 다른 느낌이지만
그래도 반갑습니다.
여성의 표정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그림을 보던
시간이 떠오르는군요.


처음 수업을 하게 된 오늘
소설을 한 번 다 읽어온 아이에게
주인공이 경험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정리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를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렵게 생각하던 아이가 조금씩 힌트를 주면서
이야기를 전개해보게 하니 의외로 재미있는 글을 써나가네요.
덕분에 저도 참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네 덕분에 선생님의 옛날 학창 시절이 생각나서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논어를 읽기 시작하면서 제겐 늘 기호처럼 보여서
도망다니던 한문 원문에 조금 더 마음을 열고 다가갈 기회가
생겼듯이
이번 수업을 계기로 문학작품을 그냥 읽는 수준에서
한 발 더 나가서 아이들과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를
더 고민하게 되고 어떤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저 혼자만의 커리큘럼이 아니라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고민해보아도
좋을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한 발 더 생각이 나가게
된 것이 바로 호모 쿵푸스의 세계를 제게 보여준
수유 공간너머 사람들의 덕분이겠지요?

누구 덕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제겐
물론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래 전 세상을 뜬 ,그래도 글에서 만나서 제게
평생 영향을 준 사람들
지금 이 세상을 살면서 글을 통해서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요.
오늘 밤,이상하게 덕분에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들라크루아에게 경의를 이란 제목의 그림입니다.
당시 화가들에게 선배인 그 화가가 끼친 영향이 대단했다고
하더군요.
제 마음속에 누구 덕분에 하고 생각하는 순간
발견한 그림이라 반가워서 올려놓았습니다.

다 끝났다,이제는 나에겐 인연이 없는 일이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없는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 하루,
마음을 조금 더 열어놓고 살아야 하는 것이로구나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한 하루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