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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의 노래

| 조회수 : 2,390 | 추천수 : 32
작성일 : 2007-06-22 16:15:42

남은 자의 노래



그 날은
성진 부두로 가는 길에 눈이 내렸다.
3일 안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믿지 못하는 어머니는
동구 밖에 서서 울고 계시고,

국토는 분단되고
민족은 분열되고
자유는 박탈되고
동족상잔의 전쟁이 터지고
더 참을 수 없어 분연히 일어서
자유와 정의를 선택한 156명의 젊은이들,

가칠봉, 949고지, 662고지 등에서
23연대 수색중대로서
혁혁한 무공을 세웠으나
얻은것은 통일 없는 휴전 뿐
고향은 더욱 멀어만 졌다.

총성 멎은 산하에는 세월만 흐르는가
3일의 약속은 반세기가 지나고
전사하고 병사하고
남은 자도 늙고 병 들어
이대로는 죽을 수 없어
제2의 고향인 23연대 동산에
돌 하나를 세우고
그 날의 이름들을
기억을 더듬어 여기에 새긴다.



-------------------------------------------------------------------


3일 약속 전우회의 추모 행사에 어머니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늘 가게에만 메어있어 쉬운 외출이 아니었지만 열 일 제쳐두고 이른 새벽 집을 나섰습니다.
버스에 오르자 모처럼의 여행이라 마음이 설레입니다.




아버지께서 소속되었던 부대가 정확히 어느 부대인지 오늘에야 알게된것이 부끄럽습니다.
막연히 전방 어디쯤의 부대일거로만 생각했지 그 악명(?) 높은 3사단 백골부대,  그 중에서도 수색대에 계셨을줄이야......

북으로 북으로 한참을 달려 도착한 3사단 23연대.




20여년만에 다시 들어와 보는 군 부대인지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마침 오늘이 연대 창설 기념일이라는군요.
연병장에선 기념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뒷 모습이 늠늠 합니다.
저 또한 저런 모습이었던 때가 있었지요. 기억이 아련합니다.




군기가 바짝들은 빨간 군악대의 모습도 멋집니다.




부대 창설 기념식이 끝나고 3일의 약속 전우회 추모행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3일의 약속 전우회'는, 6.25가 한창이던 1950년 12월 함경북도 성진에서
남으로 진격해 들어오는 북한군에 쫒겨 급하게 후퇴하는 국군 제23연대에
학도병 등으로 현지 입대한 200여명으로부터 전설이 시작 됩니다.

이들은 급하게 탈출하느라 부모에게 제대로 이별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어머니께
3일만 기다리면 곧 돌아오마고 작별인사를 나누었건만 그 약속은 57년이 지났건만 지금까지 지켜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1950년 12월 9일에 눈내리는 성진항에서 LST wind호를 타고 군번도 없이 현역으로 입대한 이들은
별다른 훈련도 없이 홍천 북방 38선 방어작전에 투입되어 첫 교전을 치렀습니다.
입대한지 겨우 11일 만인 12월 20일의 일 이었습니다.




이후 원주, 제천, 단양, 봉화, 영월, 정선, 평창, 횡성, 오대산 전투에 투입되었고
1951년 6월 1일에서야 비로서 156명이 육군 이등병으로 현역이 되고 군번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이전에 군번도 없이 전사하여 이름모를 산하에 묻힌 수많은 분들은 어찌 되었을까요...?




휴전이 임박한 1952년 2월 16일 662고지 전투에선 전 부대가 전멸하고 고작 11명이 살아 남았고,
그 해 여름 휴전이 되었습니다.




조총 발사와 함께 엄숙하게 식이 시작 되었습니다.




살아남은 늙은 노병의 눈이 촉촉해 집니다.



전우여 편히 쉬시오......




이 자리에 아버지께서 서 계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두 달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와 제가 참석했습니다.
추모비가 세워진지 3년. 그 사이 생존해 계셨던 분들 중 아버지 포함하여 벌써 세 분이나 돌아가셨습니다.
눈물 많은 어머니, 오늘도 기어이 눈물을 훔치시더군요.




추모비 옆에 또 하나의 큰 기념탑이 있습니다.
'국군의 날 제정 기념' 탑 입니다.
이게 무슨 말 일까요?




10월 1일. '국군의 날'이 제정된 사연을 아십니까?
예전 학교에서 어렴풋이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국군이 최초로 38선을 돌파하여 북진한 날을 국군의 날로 삼았다는......
그런데 그 부대가 바로 아버지의 부대였다는것 또한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새삼 자랑스럽습니다.




식이 모두 끝나고 사병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취사병들이 정성껏 준비한 진수성찬이 정말 꿀맛 같았습니다.
물론 특식이었겠지만 예전 군대의 짬밥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더군요.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오는 길.
햇살이 따사롭습니다.





에필로그

'3일의 약속'은 1950년 그 날, 성진 항에서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입대하신
재미 의학박사이신 정동규님의 자서전으로 1990년에 미국에서 영문으로 최초 출간 되어
전쟁의 살아있는 기록으로 전 미국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 후 1991년 KBS 2TV 에서 월화 드라마로 50회 절찬리에 방송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그동안 생사 여부를 모르고 지냈던 노병들이 KBS의 주선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노병들의 정기적인 만남이 이루어졌고,
2004년에 이분들의 제2의 고향인 23연대에 추모비를 세우고 매년 추모제를 올립니다.


오늘 추모제에 참석하신 노병은 아홉 분.
이 분들께서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함께 하실 수 있으실까요.

전후 세대인 제가 참석한것이 그렇게 기쁘신 모양입니다.
앞으로 계속 참석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스스로 다짐을 했습니다.
내년 6월 20일에도 저는 23연대에 있을겁니다.


이 추모제는 꼭 '3일의 약속' 전우나 그 유가족만의 행사는 아닙니다.
전쟁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든 이들이 함께 하길 소망 하는 작은 행사입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보다 더 실감나게 살아있는 전쟁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곳,
이곳에 와보고 싶은 분들은 연락 주십시요.
내년에 제가 꼭 초대하겠습니다.


강두선 (hellods7)

82cook에 거의 접속하지 않습니다. 혹, 연락은 이메일로...... hellods7@naver.com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레드문
    '07.6.22 9:32 PM

    6.25가 얼마남지 않았군요
    노병들의 주름진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훌륭하신 아버님을 두셨어요..

    저희 아버지도 백골부대 출신이시랍니다. 57년 큰오빠를 낳고나서 얼마후 입대하셨었대요.
    최고경영자과정 수료하시면서 쓴 자서전에 군이야기를 어찌나 재미있게 쓰셨던지....
    남자들의 세계에선 옛날이나 지금이나 군 이야기는 그리도 신이난 모양입니다.
    옛날 사진첩에서 백골부대 깃발아래 멋진 폼? 잡고서 찍었던 희미한 흑백사진의 젊은 아버지 모습이 기억나네요.

    아버지께 전화한통 드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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