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의 성곡미술관 강의
첫 강의는 아직 그런 것이 있는지 몰라서
그리고 한 번은 잠이 드는 바람에 못 가고
오늘까지 10번을 들었습니다.
제겐 상당히 의미있는 수업이 되었는데요
학교를 나오고 나서 처음으로 강의료를 내고 등록해서
들어본 강의였고
그것을 통해서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해도
하고 싶은 공부를 어떻게 더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일종의 실험이 되었던 수업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이번 강의를 통해서 강사인 노성두선생님과 이야기가
되어
곰브리치 미술사에서 쟁점이 될 만한 그림들을 모아서
4번 everymonth의 멤버들,그리고 도서관 멤버들과
함께 (관심있는 다른 분들의 참석도 가능합니다.)
강의를 듣기로 한 것도 제겐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이학기에 성곡미술관에서 어떤 강의가 개설될 지
8뭘말이 되면 알 수 있다고 하니
그것을 계속 들어볼 것인지,아니면
화요일의 유혹이라고 이름붙였던 고전읽기 강독에
참여할 것인지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만 논어에 관한 책을 한 권 구해서
혼자서 조금씩 반복해서 읽어가고 있는데
이 작업을 계속 할 수만 있다면 일년정도
그렇게 미리 공부하고 다른 스터디에 참여해도
좋겠구나,그런데 문제는 그 두꺼운 책(논어에 관한
해설서라고 할 수 있는 책의 두께가 무지막지 해서)을
과연 혼자서 제대로 다 읽을 수 있겠는가가 문제로군요.
성종에 관한 책을 읽다보니 성종도 연산군도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논어를 교재로 삼아서 읽는 것을
보고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수업의 after로 렘브란트와 17세기 정물화를 보러
들어왔으나 이야기를 하다보니 사설이 길어졌습니다.
이상한 일이라고 늘 생각하는데
말로 하려면 수다가 나오지 않아서 곤란해하는 제가
글을 쓰려고 앉아 있으면 한없이 수다가 늘어나는 이
현상을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요?
렘브란트
모네와 더불어 제게 그림보는 재미를 선사한 화가이지요.
자주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이상하게 일년에
여러차례 이런 저런 인연으로 그의 그림을 보게 됩니다.
오늘은 북유럽 바로크의 대가로서 렘브란트를 조명하는
수업이어서 여러가지 그림을 해설과 더불어
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 야경입니다.(nightwatch)
그런데 제대로 그림을 분석하고 때를 벗겨보니
사실은 야간 순찰이 아니라 주간 순찰이었다는 뒷이야기
그리고 민병대의 집단 초상화라서 16명이 똑같은 돈을 내고
주문한 그림이 당대의 집단초상화처럼 일열로 늘어선
같은 눈높이의 똑같이 배분된 그림이 아니라서
지금은 아주 중요한 작품으로 주목받는 이 그림이 당시에는
2년에 걸쳐서 그림값을 받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림을 걸어놓을 장소와 그림의 크기가 맞지 않아서
그림을 자를 수 밖에 없었다는 뒷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신화와 역사화에서나 있었던 이야기의 줄거리를
초상화에도 도입한 렘브란트의 실험정신이 돋보인다고
강사가 여러가지 예를 들어서 그림을 해설하는 덕분에
이 그림을 새롭게 보는 날이어서 좋았습니다.

명암법의대가 렘브란트라고 흔히 불리지요.
우리는 명암법하면 빛과 그림자의 대비라고 흔히 간단히
알고있지만 실제로는 빛과 어둠이 그림의 주제와 줄거리를
추동해서 그림을 끌고 가는 힘이 있을 때를 말한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유래한 돌아온 탕자이야기
당시의 그림 소재로 자주 등장했다고 하지요.
특히 바로크 미술에서는 카톨릭과 개신교의 싸움에서
이 그림을 통해 탕자는 개신교,탕자를 받아들이는 아버지는
카톨릭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그려진 적도 많았다고 하네요.
특히 이탈리아 화가들이 경우가 이렇다고 할 수 있겠지요?

같은 소재라고 해도 판화에서의 느낌은 또 다르구나
신기해하면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인데요
저는 이 그림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슬라이드로 본 판화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아하,그래서 판화만으로도 렘브란트를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구나 이해가 가더군요.

당대에 유명했던 TULP교수의 해부학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것은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의사나
레지던트가 아니고 시청 공무원들이라고 하네요.
그들의 집단초상화인데 당시에 해부학 강의를 듣는 것이
일종의 교양강좌였다고요.
그런데 그들의 시선이 교수의 손놀림이 아니라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이유가 오른쪽 아래에 희미하게 보이는
책으로 시선이 향한 것이라고요.
베살리우스의 책인데 그 책에서 주장하는 것과
이 교수의 설명이 달라서 놀라고 있는 표정이라고요.
그런 이야기와 곁들여서 그림을 보니 그림이 새롭게
보여서 신기했습니다.

한번도 외국에 가 본적이 없는 렘브란트
그런데도 그가 이탈리아의 풍경을 그려넣고
독서하는 성 제롬을 그릴 수 있는 것은
그의 두 스승이 이탈리아 유학파인데다 카라바지오를
숭배하고 따르는 파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라파엘로부터 시작한 명암법이 카라바지오를 거쳐
렘브란트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는 다시 벨라스케즈나 고야에게 영향을 준 것을 보면
직접적인 대면만으로 혹은 수업을 통해서만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네요.
렘브란트 이야기를 하면서 그림을 보려니
보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데 쿵쾅거리면서 들어온 아들
엄마,아들 왔는데 나와보지도 않아? 할 것 같아서
오늘은 이것으로 그치고
내일 시간나면 다시 자화상과 나머지 그림들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