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칸딘스키와 클레에 관한 책을 읽다가
클레가 튀니지에 가서 색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클레만이 아니지요,튀니지에 가서 색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했다는 화가들이.
갑자기 그곳이 궁금해집니다.
나는 그 곳에 가면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공상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밤에 음악을 듣고 있는 방에 보람이가 들어오더니
말을 합니다.
엄마,가고 싶은 나라가 너무 많아.
그런데 엄마 유럽에 언제 또 갈 계획이 있어?
글쎄,이제는 엄마가 너희들 다 데리고 갈 형편은 못 되고
가도 혼자 가게 될 것 같은데
이제는 네가 알아서 가야지.
어릴 때 그 정도 함께 다녔으면 엄마가 할 몫은 다 했다고
대답을 하니 그 아이 말이 걸작입니다.
'
그러게,가긴 갔는데 기억이 별로 나지 않아,
공연히 그 때 갔나봐.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절실히 원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려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차라리 마음속에서 차오르는 욕망으로 원하고 또 원할때까지
왜 기다리지 못했을까 하고요.
지나간 시절에 대한 후회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긴 하나
그래도 앞으로도 생각할 거리이니 그냥 지났다고
버리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보람이가 요즘 덴마크식 다이어트를 한다고
식단을 인터넷에서 복사해서 아주 열심히 지키고 있네요.
더불어 밤에 나가서 줄넘기를 하는 바람에
저도 따라 나가서 한 이틀 가만히 서 있기 아까워서
동네를 속보로 돌아다니다 줄넘기도 하고 들어오니
몸살이 날 것 같으면서도 몸이 개운한 느낌이 듭니다.
덕분에 토요일 밤,브람스를 틀어놓고
그림을 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클레와 함께 튀니지에 간 아우그스트 마케의 그림입니다.

그와 프란츠 마르크는 일차대전이 발발하자
군대에 가서 둘 다 전사를 하지요.
이 그림이 1913년 작품인데 살았더라면 그는 어떻게
변하면서 그림을 그렸을까 혼자 공상을 해보게 되네요.


사람과의 만남이,혹은 책에서의 한 구절과의 만남이
혹은 자연과의 만남이 한 인간의 생을 완전히 바꾸는 경우가
있지요,튀니지에 간 화가들을 그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그 곳의 빛이 무엇일까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느낌이 절로 드네요.


한 작곡가의 음악을 무대에서 듣는 일은
그것이 한 번으로 끝나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빠르면 일주일,아니면 한 달 정도 오래도록
그의 곡을 찾아듣고 그에 관해서 좀 더 찾아보고
다양한 연주자들에 대해 알아보게 되는
그런 시간들이 주어지는 것이 좋군요.

이 그림이 바로 튀니지 근처에서 그린 모양입니다.
아,좋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림이네요.
원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치는 그림이기도 하고요.


1914년에 그려진 leave-taking이란 제목의 그림입니다.
아마 군대에 들어가기 직전의 그림이 아닐까
혼자 추측을 해봅니다.
원래 오늘 그림을 보기 시작했을 때는 마케의 그림을
이렇게 많이 만날 수 있을지는 상상하지 못하고
여러 화가들의 튀니지이후를 보려고 했는데
마케의 그림을 많이 발견하는 바람에 이 화가
한 사람만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배가 부른 상태가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