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금요나들이-열하일기만보

| 조회수 : 1,070 | 추천수 : 45
작성일 : 2007-03-24 01:56:47


  목요일 밤

조금 무리가 될 듯 싶을 정도로 늦은 시간까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잠이 모자랍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주전 금요일처럼 기침이 다시 도지네요.

그때는 심해서 예약한 음악회표를 서울에 사는 오인순씨에게

대신 가라고 선물을 하고 내처 잠을 잤었는데

오늘은 홍은동에서 가까운 곳에서 하는 연극도 아닌지라

일단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도 산 다음

몸을 무장하고 기침이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출발을 했습니다.

어둑어둑한 예술의 전당길을 따라가다보니

아직 아트샵이 열려있네요.

지난 화요일부터 듣기 시작한 성곡미술관의 노성두 강의

세번째가 그리스 회화건축이라서

혹시 무슨 참고할 책이 있나 골라보려고

조금 남은 여유시간을 내어서 들어가보았습니다.

마침 한길 아트에서 번역되어 나온 그리스미술이 있네요.

책값이 만만치 않습니다.29000원이라

고민하다가 그래도 제대로 강의를 듣기 위한 사전작업이고

한 번 구해놓으면 그리스미술에 대해서 책을 읽을 때마다

참고자료가 되겠거니 싶어서 일단 한 권을 구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 주에도 이 곳에 왔는데 그 때는

아직 화요일 강의에 대해서 몰랐던 때라 그런지

그런 제목의 책이 진열되어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었습니다.

근대,그림속을 거닐다를 구한 것은 (그 주에는) 마침

반고흐에서 피카소까지란 제목의 전시를 본 뒤끝이라

인상파와 라파엘전파를 다룬 그 책이 저를 자극한 덕분이었는데

오늘은 화요 강의에서 도판을 본 뒤러의 책,다음 주에 공부할

그리스 미술에 관한 책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눈은 선별적으로 대상을 보는 것이란 생각을 다시 하게 되더군요.

더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메모한 다음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에 가니 벌써 밥이 다 떨어졌다고

더 이상 저녁밥을 팔 수 없다고 하네요.

어라,구내 식당에서 먹으려고 다른 준비없이 갔는데 아차

싶습니다.

마침 구내식당의 카운터 보시는 분이 음악당에 가면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김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뜸을 해주네요.

김밥을 먹으면서 꺼내 본 그리스 미술

글이 재미있어서 술술 읽히는 것이 일단 합격점입니다.

약까지 챙겨먹고 드디어

공연장으로 가던 길에 everymonth의 캘리님을 만났습니다.

반갑게 인사하고 커피 마시면서

들고 간 고미숙의 열하일기 책 읽겠느냐고 물어보니

마침 장바구니에 그 책을 담아놓고

고미숙의 강의를 인터넷으로 들을 것인가 책을 살 것인가

고민중이었다고 하네요.

저는 인터넷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깊이 읽기도

올라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카페에 올려달라고 부탁을 한 다음

언제 기회가 되면 미술사도 읽지만 역사책도 함께 읽을

시간을 마련하자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리가 서로 달라서

연극이 끝나면 다시 보기로 하고 극장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제 인터넷으로 검색한 내용으로 보면 이 연극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그대로 각색한 것이 아니라

극작가가 읽은 열하일기를 토대로

창작을 한 내용이라고 하는데 주인공 연암이 말로 등장하고

그 말의 역을 맡은 배우가 여성이란 것

말이 말을 하는 진기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

대강 그 정도의 사전 지식을 갖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자꾸 궁금증이 생깁니다.

도대체 말을 주인공으로 해서 이 극작가는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시킬 것인가 하고요.

약을 먹은 상태이고 하루 종일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조금 걱정이 되는 상황이었지만

무대가 열리면서 조금 지나니 언제 아팠던가 싶게

2시간 5분동안 무대에 빨려들어갔습니다.

커튼이 올라가자

열하를 상징하는 공간이 열리고

말이 등장합니다.

원래 열하로 가는 길에서 연암의 마부 역할을 했던 창대가

이 극에서는 늙은 주인이고

연암이 말이 되었는데

창대는 자신의 아들 미중이(이 극에서는 죽었는지

집을 떠났는지 분명하게 설정이 되어 있지 않더군요)와

이 말을 동일하게 생각하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말을

지켜보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마을이 어디 있는지 어느 시기인지 등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이 극은 일종의 알레고리적인 요소를 보여주고 있더군요.

두 명의 장로,그리고 촌장이 있고

그 아래로는 주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장로들은 이 마을이 외부에서 스파이가 침투하여

자신들이 미리 정한 규범적인 삶을 뒤흔들까봐 긴장하고 있습니다.

마침 말이 말을 한다는 기이한 상황에 처하자

장로들은 이 말이 바로 스파이가 아닐까 의심을 하지요.

이런 상황에서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연극은 상당한 집중을 요하는 극이더군요.

그저 웃다가 나오면 도대체 이 극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감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고도의 장치가' 여기저기

숨어 있는 극이기도 했습니다.

창대에게 말이 말 고유의 소리를 찾지 못하면 말을 추방하겠다고

장로들이 겁을 주는 상황에서 황제의 칙령을 들고 나타난

사신,이로서 극은 반전을 하면서 말을 희생양으로

제공하려는 장로들과

사신을 무서워 할 것이 아니라 (기이한 것을 제공하지 못하면

제국의 지도에서 지워버리고 사람들도 역시 죽음을 면키

어려울 것이란) 이쪽에서 아무 희망도 주지 못하는

이 고장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자고 말은 제안을 합니다.

다음 날 아침까지 모이기로 하지만

막상 시간이 되니 촌장이외에는 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 곳을 떠나지 못하게 되는데

바로 이 장면에서 극작가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은유와

질타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말을 하기 위해서 대본을 쓴 모양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미숙의 열하일기 읽기에서 탈주와 리좀,무엇무엇 되기

여행과 편력과 유목의 차이등의 개념을 통해서 열하읽기

읽기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런 개념들이

극속에서 묘하게 잘 녹아들어

아하,하는 탄성을 발하게도 하더군요.

절대적인 진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중심과 주변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각자가 자신이 사는 삶에서 중심이면서 동시에 주변일 수 있고

바로 그 자리에서 관계를 맺어가면서 사는 삶

목적을 설정하고 거기에 맞추어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포스트 모던의 논의가

이 극에서 잘 살아나고 있어서

보는 연극,동시에 생각하는 연극의 한 가운데에 있다가

온 느낌입니다.

우리의 의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밖에서 주어진 것에 대해 의심도 해보지 않고

그것이 옳다고 믿으면서 살아가는 삶

있지도 않은 것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으면서 살아가는 삶

스스로 만든 허상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그것을 오히려

굳건하게 굳히면서 살아가는 삶

여러 형태의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지요.

열하일기라는 텍스트는 하나이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자신만의 텍스트를

발견할 수 있겠구나

어느 한 가지만이 진짜가 아니라

각자가 만난 열하일기가 자신의 일기가 될 것이고

한 번 각인된 것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다시 만나면 그것이 다른 텍스트로

읽힐 수도 있겠다는 것을 경험한 한 주일이기도 했네요.

>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7125 단.무.지.와 깡통로봇... 7 망구 2007.03.27 1,597 13
    7124 우리집 강아지들이에요.. 12 이화진 2007.03.27 2,203 71
    7123 느낌있는 삶으로... / 강애숙 5 하얀 2007.03.27 1,162 20
    7122 서울에도 목련이 피기 시작했네요~ 8 안나돌리 2007.03.27 2,072 25
    7121 새참 드세요~ 5 싱싱이 2007.03.26 1,540 9
    7120 5살 울 아들... 3 부끄부끄 2007.03.26 1,390 20
    7119 저 언덕넘어에는... 4 하늘담 2007.03.26 1,245 58
    7118 어머님의 눈물 5 경빈마마 2007.03.26 1,929 22
    7117 함께 읽고 싶은 이야기 하나 1 intotheself 2007.03.26 1,601 55
    7116 봄비 내리던 날의 스케치 3 안나돌리 2007.03.25 1,270 47
    7115 디카메모리.. 2 나이스맘 2007.03.25 961 17
    7114 집집마다 <군자란> 꽃 피었나요? 7 콩이엄마 2007.03.25 1,507 21
    7113 성급한 벚꽃이 만개를 했습니다.~~~~~~~~~~~~ 1 도도/道導 2007.03.25 1,189 26
    7112 꽃이름 알려주세요(급) 3 권경희 2007.03.24 1,341 13
    7111 무스카리 1 remy 2007.03.24 1,267 48
    7110 성곡 미술관 강의 after 3 intotheself 2007.03.24 1,496 57
    7109 부산자갈치회센터불빛바뀌는 사진입니다^^ 6 컹컹이 2007.03.24 1,201 7
    7108 금요나들이-열하일기만보 intotheself 2007.03.24 1,070 45
    7107 봄의 아름다운 우리의 야생화 2 안나돌리 2007.03.23 1,182 19
    7106 해깽이의 수난~♡ 2 해꺵이 2007.03.23 1,048 21
    7105 새로생긴 부산자갈치회센터야경이에요~ 9 컹컹이 2007.03.23 1,336 8
    7104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미래알 2007.03.23 980 11
    7103 봄꽃이고 싶다... / 이채 7 하얀 2007.03.23 1,127 10
    7102 새들이 보고 있어요~ 2 싱싱이 2007.03.23 900 29
    7101 열하일기,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2 intotheself 2007.03.23 1,157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