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리심을 읽고 나서 혼자 걸었던 정동길
그곳과 금요일에 해설사님과 함께 한 정동길은
사뭇 달랐습니다.
우선 구한말 최초의 예배당이란 정동교회
말만 들었던 그 교회안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이 교회를 세운 선교사 아펜셀러와 그 교회 최초의
한국인 목사님을 조각상으로 세워 놓았더군요.
선교를 위해 먼 이국으로 온 사람,너무나 낯선 신앙체계를
온몸으로 받아들여 목회를 하게 된 사람
제겐 여전히 신비한 영역이자 잘 열리지 않는
영역에 들어선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혼란스럽더군요.

역사책이나 역사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름
경성구락부,아마 구락부는 클럽의 일본식 이름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이 역사적인 공간이 지금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어서 당혹스러웠습니다.
옛 삼전도에서 비문을 보던 공간이 지금은 어린이 놀이터여서
놀랐던 것보다 더 이 곳이 놀랍게 느껴지는 것은
이곳이 바로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라
더 그랬는지도 몰라요.
을사늑약,자연히 따라오는 상상,헤이그 밀사사건
그 곳에 고종이 보낸 세 사람
그것으로 인해 일본에 의해서 강제퇴위된 고종황제
그 뒤로 이어지는 구한말의 사건들
정동길에서 만난 역사가 마음을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원학교 길을 따라 올라가니 구 러시아 공사관 자리가
나옵니다.
르네상스식 건물이었다고 기록은 되어 있으나
달랑 남아있는 공간은 아주 작았습니다.
그 곳에서 아관파천에 대한 이야기
러시아에 기대어 활로를 모색하려던 민비에게 경각심을
느껴서 결국 민비를 시해하게 되는 일본
강대국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헤매던
우리들의 선조들의 삶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 위에서 내려다본 서울을 담아본 사진입니다.

거기에서 뒷길로 내려오니 바로 이 건물과
아하,소리가 나오는 이 조각을 만났습니다.

이 곳 지하에 바로 씨네 큐브가 말로만 듣던
그 영화관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궁금하지만 지금은 갈 수 없는 시간이라
그저 포스터만 한 번 더 바라보았지요.

신호등을 건너니 역사박물관의 전시를 알리는 팻말이
휘날리고 있습니다.
음,다음 주 산행을 한 다음 이 전시와 일민미술관의
전시를 묶어서 보면 되겠네 하고 마음속으로 찜을 했습니다.

지난 번 역사박물관에서 고분벽화전을 보러 왔을 때
잠깐 들러서 둘러본 경희궁
오늘은 해설사님과 함께 한 자리여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요,.
내부끝까지 둘러보기도 하고요.

서울 시내 다섯 궁중에서 가장 덜 알려져 있고
입장료도 없는 곳,경희궁이라고 합니다.
이 곳에는 원래 정원군이 살았었는데 왕기가 서린다는 말을
듣고 광해군이 이 곳에 왕궁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궁의 가장 뒷쪽에 가보니 큰 바위가 있었습니다.
정원군이 아니라 그 집안에서 나중에 인조가 왕이
되었으니 그 설은 맞은 것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인조가 왕이 된 것이 우리 역사의
비극적인 사건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마음이 개운치 않더군요.


처음 제대로 둘러본 궁인데 저는 이상하게 경복궁보다
이 곳의 기운이 더 따뜻하고 안온하게 느껴지네요.



대한제국의 역사와 만나리라고 예상하고 준비한 것과는
달리 오히려 광해군을 이 곳 저 곳에서 만난 날
역시 인생은 이런 변수가 더 재미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한 날
앞으로 역사속에서 선조,광해군,인조 시대를 만날 때
머리속에 생긴 지도로 인해 더 생생하겠구나
혼자가 아니라 현장을 잘 아는 사람과의 동행으로
가끔씩 이렇게 현장감을 익히는 기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낌 금요일의 나들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