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문화재 해설사인 두첨지님과 약속이 되어 있는
금요일 오후
3시에 덕수궁의 대한문 매표소에서 만났습니다.
everymonth에서 오전 수업을 함께 한 저와 캘리님
그리고 cutepond님,도서관 모임의 백명자씨,이해정씨
이렇게 다섯이서 함께 덕수궁안으로 들어갔지요.

사실 이런 답사코스를 택한 것은 얼마전에 읽은 리심덕분인데
조선말기의 역사속 현장을 거닐면서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어서였지요.
덕수궁에는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살고 있었다고 하네요.
월산대군,역사책속에서이름으로만 만났던 그
자신의 동생이 한명회의 사위라는 이유로
권력의 담합에 밀려서 왕위를 놓친 사람으로서
그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 공간이 나중에 경운궁이란 이름으로 왕실의 거주 공간이
되었고
고종때에 이르러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을 하게 됩니다.

덕수궁에 온 가을단풍,그러나 색이 곱지 못하고
비실비실한 것이 역력하네요.
자연은 온 몸으로 자신을 증거하는구나
문득 마음이 이상해지네요.
백명자씨가 말을 겁니다.선생님 뒤뷔폐 전을 하네요.
그래요? 하고 바라본 곳에 전시를 알리는 글이 있습니다.

지금은 다른 목적으로 이 곳에 왔으니
그저 기억속으로 저장을 합니다.
와,미술책에서나 보던 화가의 그림을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왔구나 신기하고 고맙다 싶어서요

1894년 청일전쟁에서 강호일 줄 알았던 청나라를 물리친
일본에겐 청나라가 쥐고 있는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빼앗는
일이 급선무였겠지요?
그래서 일본은 조선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후원을 했다는 말이 있더군요.
이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본 적이 없어서
다음에 찾아볼 목록에 저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생긴 문양이 바로 용이라고 하네요.
사실 대한제국이란 말을 발음할 때마다 저는 불편한
느낌이 들어요.
실질은 모자라는데 이름만으로 생색을 내는 느낌이 주는
초라함때문에 그럴 겁니다.
왕만이 올라갈 수 있는 공간에 새겨진 문양이 봉황이라면
황제가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의 문양은 용이라고 하는
설명을 들으면서 힘없는 용의 비애,고종이란 한 인간의
고뇌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역사적인 공간을 혼자 가보게 되면 이곳이 옛날에
이런 공간이었단 말이지 하는 심정으로 대강 둘러보게 되지만
그 곳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
전혀 다른 살아있는 공간이 되는 경험이 매번 신기합니다.
위의 것은 화재를 예방하는 심리적인 조치로 만들어놓은
시설이라고 하고요
아래 것은 사진찍느라 자세히 설명을 못 들었지만
아마 왕이 있는 공간이란 상징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사진뒤로 보이는 건물은 단청이 되어 있지 않은 건물인데
이층으로 되어 있는 목조건물로
선조의 죽음이후에 임진왜란 당시에 고생하면서?전란을 진압하고 새롭게 출발한 선조의 공을 기려서 후손들이 만든
건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선조는 그런 이름값에 부응하는 왕인가에 대해서
저는 의문을 제기하는 편이라 건물앞에서 묘한 느낌이 드네요.
덕수궁에서 선조,광해군,그리고 인목대비와 인조의
흔적을 만날 것이라곤 상상을 못해서 사실 조금 놀랍고
흥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역사소설속에서 만난 이야기들의 주무대가 여기였단 말이지
그러니 이왕이면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그 일의
실제 무대에 대해 부연설명을 통해서 덧붙여놓으면
훨씬 현장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덕수궁안에서만난 이런 작은 문들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인목대비가 유폐되어 살았다는 공간을 돌아가다가 만난
굴뚝입니다.
이 굴뚝을 보니 문득 경복궁에 다시 가 보고 싶네요.
두첨지님이 해설하는 구역에 경복궁도 있다고 하니
다음에 같이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고종황제가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일화는
이 책 저 책에 많이 나와 있더군요.
바로 그 커피를 마셨다는 공간을 만났습니다.
서양식과 동양식이 절충된 묘한 공간을 보았지요.



잠깐 앉아서 쉬는 사이에 책을 들고 앉아 있는 캘리님의
포즈가 좋아서 한 컷


그러자 들고 온 크리스피 도넛을 물고 포즈를 취한
백명자씨와 이해정씨의 표정이 일품입니다.
읽을거리와 먹을 것,두 가지의 절묘한 조화라니
쉬고 있던 공간 너머에 있는 것이 바로 영국 공사관
자리라고 하네요.
아,이 곳이 바로 리심의 무대가 된 시간대의 역사적
공간인 모양이네 하고 한 컷 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석조전을 돌아서 정동길로 나왔습니다.

돌로 지은 건물이라니,너무나 빤한 이름이 붙은 이 건물이
서양이 우리에게 밀려들려오던 시기의 슬픈 자화상이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아니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정신의 불균형을 상징하는 것같아서 마음이 쓰라립니다.
아마 그래서 이 곳을 피하게 되는 심리적인 기저가
형성이 되었던 것일까
왜 한 번도 제대로 둘러보려 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한 날이기도 하지요.
피한다고 나라나 개인이나 자신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날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