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 시각 : 2002.06.15 15:27:47
축구와 싸움
나라가 온통 들썩들썩하는 요즈음이다.
벌써 월드컵 축구는 중반에 이르고 숱한 이야기도 무르익을 대로 익었다.
미국과 결전이 있던날_
그이는 볼일이 있다더니 일찍 돌아와 씻고 tv 앞에 앉았다.
나는 축구가 흥미도 없거니와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 내리느니 결과만 보자
마음 먹고 며칠전 절에서 얻어 온 천수경을 거실에서 펼쳤다.
생각보다 상대편 미국은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였는가 보다.
안방에서 흘러 나오는 그이의 탄식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아이구 아까워라!"
"저게 들어 갔어야 하는건데." 무릎을 치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의
안타까움처럼 마음 졸이며 관전 하는 듯 보였다.
슛 찬스를 몇번씩 놓치고 어렵게 얻은 패널티 킥을 실패했다는 것도
남편의 고함으로 알 수 있었다.
"저,저 등신"
"아이구 환장 한다!"
"숙맥같은 놈들!"
처음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도가 넘치는 그이 말에 나는 화가
치밀어서 더이상 듣고 있을 수 가 없었다.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한마음으로 승자의 쪽에
서기를 염원하는데,그리고 예상보다 유럽의 강팀들과 격돌해도 대등하게
잘 싸운다며 격려하고 있는 분위기에서 남편의 말은 거슬리고 과격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흥분의 정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그이에게 찬물을
끼얹는 듯한 모진말 한 마디를 해야할것 같았다.
"이집에 우리 둘 밖에 없는 것이 다행이네요"
"등신,병신이라고?"
"나이 오십이 된 사람의 입에서...."
"저 선수들 중에 누가 등신이고 숙맥이에요?"
한마디만 한다는게 나도 감정이 격해져서 따발총을 쏘았다.
예전부터 우리부부는 늘 그런 일로 싸웠다
.
"내가 쟈를 잘못 키웠다."
"막내라고 오야오야 한것이 저리됐다."
"말 버릇은 습관인기라_"좋은 가정에서 교육 잘 받은 네가 조용조용히 타일러라."
평범하기만한 친정을 좋은가정이라는 말씀으로 비꼬는것 같아서
오히려 속이 상하고 내게 나이 많은 그이를 타이르라는 표현으로
미루시는 시어머님 체념이 서러웠다. 그리고 밀려오는 절망의
덩이에 짓눌려 그때마다 통곡을 하고 싶었다..
기억으로 나는 그이에게 반말을 별로 한적이 없다. 부를때도 누구의
아빠라고 일부러 아빠라는 말을 강하게 발음한다.
당신은 아이들의 아빠이기 때문에 모든것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면
말은 더군다나 그렇다는걸 의식적으로 보여 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거실에 우두커니 앉았으니 어느새 눈물이 고여 흘렀다.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온건 그때였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고 묻는 내게
"축구 보라고 학교에서 배려해 주셨어요"
"안됐지만 포루투칼전에서 이길 가능성도 있어서 안심이 돼요."
"엄마는 축구 보셨어요?"
교내에서 축구 선수인 아들은 그렇게 긍정적으로 평가와 예측을 나름대로 하며 안부를 물었다..
축구를 보며 방금전 지 엄마 아빠가 싸웠다는 걸 알리 만무하다.
새겨볼수록 부드럽고 점잖은 아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어느덧 나는 위로 받고 있었다.
(2002년6월15일)
예전에 쓴 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기에 올려 봤습니다.
원글에는 숙맥이 아니고'병신'이었는데 적합하지 않는 단어라고 뜹니다.
이 사이트에는 얼마나 웅한 분들이 교양있는 언어를 쓰는지 알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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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준&민
'06.10.28 9:24 AMㅎㅎㅎ
울 시부모님도 신랑이 못난짓 하면 저보고 신랑단속도 못한다고 한답니다.
그럴때 참 속상하죠. 장가보내시기 전에 잘 가르치셔서 보내시지 왜 나한테 미루신담... 그런답니다.
어쩝니까.... 몇살을 더 먹어도 애는 애인것을요.
ㅎㅎㅎ
저희 집도 가끔 축구보며 싸웁니다. 남자들 정신없을땐 자기가 한말도 안했다해요2. 천하
'06.10.28 11:35 PM저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쉽게 하지 못하는 말을 토할때가 있습니다.
이게 어쩌면 삶을 헤쳐 나가는 위안의 길인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지금껏 세상을 잘못 판단는 하지는 않으셨잖아요.
남자들은 그럴때가 있답니다.
이해 잘하셨어요.3. 이음전
'06.10.29 2:23 PM싸운 이야기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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