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동해남부와 강원도 지역을 제외하고는
조용했던 며칠이었습니다.
그 뒤끝으로 어젠 제법 세찬 바람과 구름낀 하늘 덕분에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으니
오늘은 또다시 짐(?)을 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신행 들머리에 앙징스레 피어난 유홍초를 보고 그냥 지나치면 실례지요.
작년에 이놈 씨앗을 받아 고이 보관했었는데 너무 잘 했는지 올봄에 파종을 못했습니다.
한 달쯤 후에 다시 찾아와 씨앗을 받아야겠습니다.
구름이 언듯언듯 피어난 하늘..
그리고 옅은 박무로 시야는 멀지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제부터 안개의 계절인듯 싶습니다.
가을날 아침,
간 밤의 차가웠던 대기가 수증기를 몰고 내려와 온 세상을 덮어버리는 안개~
유난히도 안개가 좋아 그 속을 마냥 걷고 싶었던 기억.
그 것은 아직도 여전하여 만추의 계절 안개낀 새벽이 참 좋습니다.
병아리 오줌만큼 흩뿌린 간밤의 비로 촉촉해진 오솔길에서
짙은 풀향기가 배어나와 신선함을 곱절이나 더 해주는군요.
아고~~~
귀여운 것^^*
고목나무에 매미보다도 더 작아보이는 담쟁이덩굴의 안간힘!
소나무 숲 아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풀과 나무가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본시 소나무는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라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타제물질'을 방출하기 때문이랍니다.
자기자손을 더 많이 번식시키기 위해 다른 종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거죠.
요근래 들어 외래종 식물류 가운데는 이렇게 타제물질을 방출하는 놈들이 많아져
우리의 산야가 황폐되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조차 들리는데,
황소개구리나 자리공과 같은 동식물의 위협이 염려됩니다.
그래서 이 작은 담쟁이의 질긴 생명력에 감탄을 합니다.
원효봉으로 향하는 릿지길은 심장을 가열시키고 입으로는 헉헉 숨을 몰아세웁니다.
안개낀 날 날씨가 덥다는 건 다 아는 사실.
오늘도 예외는 아닌데요?
아직 아직 멀었니?
릿지길에서 다시 만난 한 아저씨^.^
"안녕하셔요? 다시 뵙게되었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이 분은 나를 몰라보신다.
"왜 지난 번에 저는 여우굴로 간다고 하고 선생님께선 제게 염초봉 동행을 제안하셨잖아요?"
"아~~ 그 때 다른 분하고 같이 오셨던걸로 기억을 하는데..."
이리하여 염초봉을 향하여 출발!
오늘은 나홀로 염초봉을 작정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 못오르는 말바위를 내 반드시 올라타고야 말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슴에 품고!!!
그런데 또 이렇게 일행을 만나서 함께할줄이야..
근데 조 아자씬 누구예요?
여기가 바로 직벽 꼭대기인데 공단 관리인이 계십니다.
아래에도 한 사람이 지키고 섰고 위에는 또 이렇게 한 사람이.
아래에서 올라오다 보니까 정말 한 팀이 그냥 내려보내지는 것을 봤습니다.
장비를 갖추지 않은 사람은 이 곳에서 하산 조치를 당하는 거죠.
함께 동행하는 아저씨.
물론 장비없이 오르다가 내가 갖고간 장비를 나누어 허리에 두르고 통과 허락을 받았습니다.
베테런 아저씨도 오늘은 이 까메오의 덕을 보셨군요^^*
염초봉으로 향하는 릿지 코스중에 말바위가 가장 쎈 편이고요
지금 여기.
책바위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코습니다.
마치 책을 반쯤 펼쳐놓은 모습의 이 바위는 내려가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어서
자주 다니는 사람들도 이 곳에서는 무척 조심스러워하고 할 적마다 중심 잡기가 꽤나
힘들어서 긴장을 하게된답니다.
계속되는 바윗길...
도저히 쫓아갈 수가 없네요^&*^$#!~
물론 제 배낭의 무게가 두 배이상 많이 나가 그렇겠지만.
그래도 참으로 잘 오르십니다 그려~
키는 160센티미터 약간 넘고 체중은 아마 50킬로그램미만?
연세는 해방둥이니까 예순둘이신데 무지허니 잘 타시는 모습이 삼각산 청솔모가 울고 갈 지경입니다.
약 십미터가량의 절벽.
여긴 만경봉의 피아노바위처럼 손끝으로 크랙을 붙잡고 내려갈 수있는데
우리의 청솔모 아저씨는 제게 자일로 하강하고 싶다시네요.
자일 꺼내 걸어놓고,
지난번에 나도 이 곳 염초봉에서 배웠던 슬링으로 안전벨트 만드는 법도 강의하고
또 직접 챙겨드린 후에 절대로 오른 손은 놓지 말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하강!
뒤돌아 본 파랑새바위~
언제 끝나니?
절반은 온거야???
나는 장비 챙기느라 뒤처리하고있는데 벌써 아저씨는 돌격 앞으로!!!
허걱~~
드디어 말바위앞에 당도했습니다.
대여섯 명 일행의 한 팀이 앞에 와서는 준비를 하고
나는 옆의 샛길이 겁난다기보다 기분이 안좋아 직접오르려는데 우리의 아저씨는
벌써 아랫길로 기어가기 시작하셨습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말바위인데..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길 직접 올라야한다~
말 엉덩이 사이(?바위 틈)에 양손을 집어넣고 재밍을 하고는 심호흡과 함께 하나 둘 셋! 이럇!!!!!!
우와~
올라왔습니다.
짝짝짝~~~~~~~~~~~~
내 스스로 생각만 해도 대견스럽네요^^
아직도 다른 팀은 자일 설치중입니다.
조오기 조 길을 기어오려고...
마지막 십미터 하강 코스.
아저씨 먼저 내려드리고 나도 따라 내려가서 뒤에 온 팀의 모습을 잡았습니다.
장비를 다시 챙기는 중인데 아저씨는 또 어느 새 사라져버렸네요$^%&!~
허걱~
늘 혼자 다니시다보니 기다린다는 자각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ㅋㅋ
그래도 좋은신 분이기에 점심을 하면서 통성명과 전번도 교환^^
호랑이굴 앞에서 백운봉 기슭과 서울 시가지를 마지막으로 담고는 숨은벽 계곡으로 하산~
북한산길로 내려와 버스를 기다리며 다시한 번 더 올려다봅니다.
오른쪽부터 원효봉, 염초봉과 백운봉 아래에 숨은벽 그리고 인수봉까지...
BGM은 영화 '희랍인 조르바'중에서 Zorba's D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