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골라서 들어보나 하는 것이 즐거운 일중의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낮에 듣다가 시간이 모자라서 그냥 두고 나간
가야금 4중주 연주를 마저 들은 다음
이루마 (아래 적힌 번호로는 7번에서 찾으면 되고요)의
공연을 찾아서 듣고 있는 중에
함께 보는 그림이 박서보입니다.

재료를 보니 cotton에 오일과 연필이라고 되어 있네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작업을 하는 것일까
혼자서 궁금해하고 있는 중인데요
이전과 달라진 점은 도대체 작업을 어떻게 하는 것일까에
자꾸 관심이 가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묘법이란 제목으로 다양한 변주를 보이는 화가
이 작품은 한지위에 mixed media를 썼다고 하는군요.

캔버스에 나타나는 다양한 질감을 바라보는 일이
즐거움을 주네요.
연주회 실황을 듣다보면 음악인들중에서도
말이 청산유수인 사람들이 있고
말이 참 어눌하구나 그래도 그런 속에서 참 들을 만한
말을 하는구나 그런 느낌이 드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청산유수라고 해서 다 별 볼 일 없는 말만 하는 것은 아닌데도
이상하게 말을 너무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뭔가 의심하고 있는 저를 느낍니다.
왜 그럴까?
한 번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이 그림을 보고 있자니 뭔가 시리즈에서도 변화가
조금 더 나타난 느낌이네요.
질감을 살리는 것이 더 확실하게 두드러진다고 할까요?


화실에 한 번 다녀오고 나니
이런 작업을 바라보는 것이 조금 달라지는군요.
언젠가 나도 이런 작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냥 모방하는 것이라고 해도
모방의 과정을 통해서 뭔가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처음과는 다른 어떤 형태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

이런 공상이 그 자체로서도 즐거운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한 눈에 박서보 작품이네라고 인식시키면서도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어서
그렇게 다르다고 구별하게 하는 요소를 바라보고 있는
중인데요
적당한 이루마의 멘트와 더불어 보는 그림
그 사이 사이에 귀기울여 듣는 연주가
깊어가는 수요일 밤의 마무리를 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