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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오랫만의 명작 -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조회수 : 2,483 | 추천수 : 63
작성일 : 2004-11-14 18:22:07


블록버스터가 판치는 헐리우드 영화, 조폭이나 가벼운 코미디 일색의
한국영화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극장을 점점 멀리하는 나를 느낀다.
물론, 이런 류의 영화는 재미있다. 생각과 여운, 그리고 감동을 앗아가버리는게 탈이지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포스터를 보는 순간 뭔가 여운이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다.
로버트 레드포드 제작, 베니스 영화제 신인상을 받은 중앙역의 월터 살레스 감독,
체 게바라의 실화라는 것......개봉날만 기다렸다...

영화의 시작은 평화롭다.
아르헨티나에 사는 23세의 의대생이 친구와 남미횡단을 결심한다.
도로사정 따위는 무시하고 지도를 펜으로 쭉 그어 경솔하게 여행지를 결정한다.
낡은 오토바이 하나에 넝마처럼 주렁주렁 짐을 달고 돈 한 푼 없이 출발한다.....
열정만 있고, 계획은 없는 무모한 여행의 시작....그들에겐 젊음이 있으니까 모든게
용서된다.



역시나, 준비미숙으로 인한 수 많은 우여곡절과 고난이 기다린다.
강풍에 텐트가 날아가버리고, 사기꾼이 되기도 하고, 거짓기사를 신문에 싣기도 하고.....무전여행을 하기 위해 온갖 파렴치한 짓을 감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여행과정보다는 남미의 풍광이 너무 멋지다.



첫째, 이 영화의 백미는 신의 선물인 남미의 자연과 라틴음악의 조화다.
스카보로의 추억과 엘콘도 파사를 연상시키는 음악들이 주욱 깔리는데,
눈과 귀의 즐거움만으로도 영화 티켓 값은 빼고도 남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에 가슴이 뻥 뜷리는게, 이 좁은 반도 땅덩어리 어디서
끝없는 지평선을 볼 수나 있었겠나?  익산에서 전주 가는 30분 정도의 도로에서
처음으로 지평선이라는 걸 보고도 감동했는데.....남미의 지평선엔 넋을 놓을 수 밖에....
굽이굽이 드러나는 안데스 산맥의 황홀경에는 찬사와 함께 신음이 절로 났다.
그림같은 칠레의 해안, 사막, 그리고 아마죤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미개발지를 보는 것만도 정말 행복했다.

칠레의 유적지와 마츄피츄를 비춰주는 앵글을 따라가는 동안은,
겸허지기까지 하면서, 잉카문명에 대한 경외감과 더불어 이를 파괴한 스페인에 대한
분노가 치미는 등 감정이 복잡해지기도 했지만......

감독은 아름다운 자연과 대비시켜 비참한 민중의 삶을 살짝살짝 비추면서
게바라의 의식이 변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는데,
그런 친절한 설명이 없어도 자연을 직접 체험하는 사람에겐 말보다 더 한 감동과
의식의 변환이 생긴다는 건 자명한 사실일게다.

둘째, 知를 추구하는 젊은 모습이다.
끈임 없이 읽고, 일기를 쓰고, 지식을 탐구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오랜만에 봤다.
IT와 핸드폰으로 무장한 요즘 젊은이들이 잃고 있는 소중한 것들. 지식의 탐구,
끊임없는 고뇌, 자기 성찰, 가볍지 않은 언행들을 볼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가벼움과 빠름에 익숙한 젊은이들은 知의 추구 안에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체 게바라는 전쟁 중에도
괴테를 손에 들고 있던 사람이 아닌가.

글을 쓰고, 기록을 남기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우리의 60,70,80년대의
젊은이들에겐 이런 모습이 있었는데......시를 외우고, 책을 소중히
여기는 미덕이 있었는데....



셋째, 순수하고 고결한 영혼을 만났다.
극도의 궁핍과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영혼만은 항상 맑은 젊은이들을 보았다.
당시 거금이었던, 미화 15달러를 지니고 있던 그는 그 돈을 병원비로도, 밥값으로도
쓰지 않았다. 비참한 노동자에게 주고 만다. 자신도 비참한 상황에서....요즈음의 우리에게 이런 덕목이 있던가.....아마도, 그건 바보같은 짓이었다고, 나라면 절대 그 상황에서
돈을 줘버리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을거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래서.....그런 영혼을 가진 젊은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산빠블로 나병환자촌에서 그들의 정신은 더욱 숭고했다. 나병은 전염되는 것이
아니란 걸 안 후, 규칙을 어겨가면서 그들은 맨손으로 환자들을 만지고,
가슴으로 대화하며 그들에게 모든 것을 열어보인다. 도무지, 편견이나 위선, 에고가
보이지 않는다. 생일날, 수녀님과 병원직원들이 차려 준 파티 후,
강 건너에 격리된 환자들에게도 축하를 받아야 겠다며 목숨을 건 도강을 하는
장면은 과히 압권이었다. 그는 중증의 천식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도강 후, 강을 사이에 둔 환자와 직원들의 환호와 눈물....
인간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떠한 벽도 편견도
용납할 수 없다는 젊은이의 순수를 보았다.    

넷째,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다.
우리는 빠른 템포, 많은 대사와 상황의 반전에 익숙해 있다.
너무나 빨라서 너무나 말이 많아서 구경을 할 뿐 참여하거나 느낄 경황이 없다.
이게, 허리우드 영화와 흥행몰이를 하는 우리 영화의 현주소다.
함께 영화를 보던 젊은 이들이 지루해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영화 끝난 후 보니 사라졌다. 이 영화 보기를 포기한 것이다. 왜?

이 영화는 지루하다. 절대 빠르지도 변화무쌍하지도 않다.
지루하게 남미의 풍광을 보여주고. 그들의 눈이 돼 세상을 비춰 줄 뿐이다.
같이 느끼기를 바라며, 생각해보길 권하지 재미를 주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영화의 바로보기를 제시하고 있는데,
바로 이 느림이 젊은 관객들이 하품을 하고 도망갈 수 밖에 없는 이유였나 보다.    

........
8개월의 여행 후, 두 사람은 갈라섰다.
한 사람은 카라카스에서 의사로, 한 사람은 마이에미로.......
8년 후, 체 게바라가 쿠바에서 알베르토를 부르자,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친구를 찾아간다.

엔딩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화면을 채우는 알베르토의 늙은 얼굴........
그는 일찍 죽어버린 친구를 위해 쿠바에 병원을 세우고, 혁명의 완성을 도왔다.
영화에서 보았던, 사기 친 신문기사. 맘보탱고라고 쓰여진 선물 받은 땟목,
오토바이 탄 그들의 실제 여행 사진들이 올라올때....입가에 미소와 함께
가슴이 져렸던 느낌은...시네마천국 마지막에 키스씬이 흐를때의 감동 이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실제 사진에 나오는 맘보탱고 땟목

이 영화는 로드무비이고, 성장영화다.
젊은이들은 항상 떠나기를 꿈꾸지만, 생각뿐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는 용감하게 열정만으로 떠났다.
떠날 수 있는 자와 그러지 못하는 자는 분명히 다르다.

빨치산으로 부터, 유신, 국민의 정부로 가는 시간동안, 우리 젊은이들도
체 게바라와 같은 열정을 가지고 혁명을 꿈꾸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이상과 정의에 투신했지만, 우리는 기득권을 놓지 않은채
혁명을 꿈꾸지는 않았는지....그 젊은이들이 모두 현재의 기득권이 되어 있으니.....

중산층에서 태어나 보장된 안락함과 의사의 가운을 던지고,
불합리와 자본주의의 폭력에 맞선 쿠바 혁명의 기수, CIA에 의해 총살당한,
가장 현명하고 인간적인 지도자로 추앙받는 체 게바라가 아닌,
그저 순수하고 가슴이 열린 젊은이 에르네스토를 만날 수 있었다.

ps.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체 게바라가 된 것. 영화에서 암시하고 있는데.,
칠레 사람들이 듣기에 아르헨티나 발음은 체가 세게 들린다고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를 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54년 멕시코에서 개명했다.

[ 길 위에서 지낸 기간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체 게바라 ]
1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깜찌기 펭
    '04.11.14 6:27 PM

    먼저 보셨군요.. ^^;
    대구도 개봉했나? 기다리고있었는뎅..

  • 2. 카피캣
    '04.11.14 6:29 PM

    허걱~
    제가 지금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있는데 바로 요부분 ,둘이 오토바이 타고 떠난데 까지 읽었는데..님의 글을 읽어내려가며 "체'의 이야긴가?~~~ 하니 바로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3. 아라레
    '04.11.14 9:06 PM

    오오...또 한명의 분위기 있는 꽃미남이...
    쟈스민님 죄송해요.. 역시 전 속물인가봐...ㅠㅠ orz

  • 4. ripplet
    '04.11.14 10:16 PM

    아라레님과 저는 같은과 ㅠㅠ
    잘 읽다가.. 등잔(?) 옆에서 글 쓰고 있는 꽃미남 사진에서 그만 필 꽂혔슴다 ^^;
    제목만 들었었는데...그런 영화였군요. 대구에도 개봉했음 좋겠어요...

  • 5. 이니스프리
    '04.11.14 11:30 PM

    와~ 이거 보셨네요
    전 대학 동아리 연합에서 한 시사회에 가서 봤었습니다.
    정말 많은것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에르네스토의 성장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전개가 되어서 더욱 마음에 와 닿는것이 많습니다.
    한층 성숙해질수 있는 영화이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흑백장면이 지루한 감이 좀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않볼까봐 좀 걱정했었어요^^ 이런영화가 흥행하긴 좀 어렵잖아요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마지막에 비행장에 알베르토 자신이 나오는 장면이었어요^-^

  • 6. 아임오케이
    '04.11.15 1:31 AM

    체 게바라 평전이라도 읽고 가야하나요.
    전 체 게바라 책은 하나도 읽은 게 없는데...

  • 7. ripplet
    '04.11.15 2:42 AM

    아임오케이님, 저도 체-에 관한 책 안읽었는데요...그냥 부담없이 보는것도 좋을 것 같아요.
    첨부터 '체 게바라'에 무게를 싣기 보단 그냥 따뜻하고 가슴저미는 영화라 생각하고 보려고요.
    그 영화 속 젊은이의 삶이 '실재'였다고 생각하면 더 행복한 일이겠죠 ^^.

  • 8. 치즈케잌
    '04.11.15 10:26 AM

    아..
    저는 이래서 82를 너무 좋아합니다...

  • 9. 강아지똥
    '04.11.15 10:32 AM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게 어떤거였는지 기억도 가물하네여...ㅜㅠ
    이젠 보고싶어도 비디오밖엔 허용이 안되는지라....엉엉....

  • 10. joy21
    '04.11.15 2:51 PM

    jasmine님, 감사!
    그렇지 않아도 이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자세히 평을 올려주시니.

    이런 좋은 영화를 우리 학생들에게도 꼭 보여줘야 겠어요.

  • 11. 빨강머리앤
    '04.11.15 5:56 PM

    저도 토요일에 봤어요.
    전 2시간이 지루한지 모르게 금방 흘러가버리더군요.
    오랜만에 좋은 영화였습니다.
    사는동안 가슴벅찬 시간이 얼마나 있었나 생각케 하더군요.

    다른 극장에서도 개봉했던데
    영화보실분들은 씨네큐브에서 보세요.
    여느 영화하곤 틀리게 5분도 넘는 긴 엔딩크레딧을
    늘 그렇듯 끝까지 조명 밝히지 않고 기다려줍니다.

    (다른 극장은 그냥 불이 켜져버리거나
    엔딩크레딧 잘라먹거나 그러지 않을까 싶은 노파심에.)

  • 12. 무수리
    '04.11.15 7:38 PM

    체 게바라 ..넘 잘생겼습니다.

    그사람 일생 자체도 영화보다 더한 삶이었기에....
    와 영화 좋을것 같습니다.

  • 13. 레아맘
    '04.11.15 10:46 PM

    좋은 소개 감사합니다....꼭 보고 싶네요..이렇게 글만 봐도 벅찬데^^

  • 14. 골든레몬타임
    '04.11.16 12:53 AM

    대구도 개봉했어요.. 만경관이랑 아카데미..
    그렇지만..이런 영화는 빨리 막내릴지도 모르니까 빨리 가서 보세요.

    참고로 조조보니까 조용하고 엔딩 잘라먹지도 않던데요?
    오랫만에 정말 좋은 영화 봤어요..

  • 15. manguera
    '04.11.16 8:20 AM

    jasmine님 감사드려요. 제가 특히 중남미를 좋아하기도 하구요, 이런 영화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 당장 보러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 16. manguera
    '04.11.17 12:18 AM

    넘 보고싶어서 혼자가서 보고 왔답니다.^^ 남미 경치 구경도 좋았고(저도 학생때처럼 여행가고 싶더라구요..ㅠ.ㅠ), 간만에 스페인어도 실컷 듣고 와서 좋았구요. 체 게바라에 관한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O.S.T 도 있는 것 같던데 구입해보려구요.

    아... 저.. 그리고,, 뗏목이름은 맘보 탱고 이던데요.(태클성은 절대 아니구요, 망고 탱고는 아이스크림 이름인 것 같기도 하고 해서.. ^^;;)

  • 17. Harmony
    '04.11.21 11:30 PM - 삭제된댓글

    남편이랑 토요일날 심야상영을 보았답니다. 잔잔한 감동....거의 끝무렵 소외된자들의 영상이 무수히 지나갈 적 눈물이 어리더군요. 그 화면은 마치 우리 3.1 운동 이전의 분위기 같았어요. 그 소외되고 핍박받는 자들의 주름과 어두운 얼굴을 보면서, 가슴이 아파 오더군요. 감동이 흐르는 영화였답니다. 체 게바라 평전 읽은지 몇년만인지 다시 그 붉은 책을 찾아 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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