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5월 첫째 일요일은 어머니 날이다. 한국은 어버이날로 한 날을 통일하지만 미국은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을 따로 정해 지낸다.
올해 어머니날은 지난 한 해 동안 학교 다닌나고 워낙 엄마 노릇을 소홀히 했던 탓인지 미안하고 가슴 뭉클한 날이었다.
우리 집 딸들이 힘을 합쳐 이쁜 복숭아 생크림 케익을 굽느라 오전 내내 부엌에 절대로 나갈 수가 없었고, 아빠와 다섯 부녀가 뭘 그리 쑥덕대는지 나만 빼놓고 쑥덕대더니 으르르 몰려 나가서 뭘 사오고는 보여주지도 않고 꽁꽁 숨겨놓는 모습들이 고맙고 이쁘기만 했다.
"엄마, 눈감고 이리 오셔야 해요" 라면서 막내가 내 눈을 두 손으로 가리고 식탁으로 와보니 정성껏 만든 케익이 내 눈을 즐겁게 해주고 카네이션이긴 하지만 색다르고 싶어 골랐다는 연두색 카네이션 꽃다발도 너무 예뻤다.
남편과 딸들이 마음을 합쳐 사온 이쁜 여름 샌달까지 피날레를 장식하면서 어머니날의 선물 증정 순서는 막바지에 이르르고!!!
엄마가 좀 튀는 걸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6월부턴 법원에서 판사님의 인턴으로 일을 할 것이니 점잖은 것으로 골랐다는 그럴듯한 설명이다. 준비한다고 분주하게 움직였을 작은 손길들을 생각하면 받아도 받아도 늘 가슴 뭉클한 게 어머니날 선물이 아닐까.
아주 어렸을 때에는 뒷 마당의 들꽃 한 줌도 받아보았고, 초등학교 시절 내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이것 저것 만들어 가져올 때마다 이걸 만들면서 엄마에게 가져다 줄 순간을 생각하면서 제 딴에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은 내 손길이 이제는 그래도 덜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조금은 편해지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손으로 만들어오는 이쁘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수공예" 선물을 받을 일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닐까.
올해도 우리 집의 유일한 초등학생 막내는 수공예 액자를 만들어 자작시를 넣어 가져왔다.
내가 공부하는 책상에 놓아주면서 날마다 자기를 생각하라고 다짐을 받는다.
공부한다고, 시험이라고, 고3 수험생이 엄마에게 짜증을 내듯이 아이들과 남편에게 공연히 짜증도 내고, 엄마는 바쁘다고 늘 뛰어다니기만 했던 빵점 엄마였는데도 이렇게 과분하게 사랑을 주는 우리 아이들과 남편이 너무나 고맙고 소중하다.
어머니날은 아이들이 엄마에게 선물을 주고 감사를 표시하는 날인 것만이 아니라 엄마도 한 아이 한 아이의 첫 울음 소리를 기억하면서 내 아이와 처음 만났던 그 소중했던 그 순간을 돌아보면서 엄마가 되었음을 감사해야 하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이들은 나에게 엄마가 되어주어 감사하다고 하지만, 어찌 보면 나에게 엄마 노릇을 할 기회를 주었음이 더 감사할 일인지도 모른다.
엄마가 되었기에, 한 아이 한 아이 태어날 때 마다 나는 얼마나 성큼 성큼 진정한 어른이 되어갔던가.
과연 이 아이들이 나에게 부어주는 무조건의 사랑만큼 나도 이 아이들을 무조건적으로, 때로는 내 맘이 들지 않는 순간에도 사랑했을까.
그 전날 저녁 막내가 장난을 치다가 급기야는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밤 11시가 훨씬 넘어서까지 엄마 몰래 언니들에게 장난을 걸어 언니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이런 저런 껀수를 만들어 언니들 방을 드나들다가 불호령이 떨어지고 말았다.
한참 혼나고 나서 "너 왜 그러는 거야. 이제 가을이면 중학생인데 이렇게 말 안들으면 어떡하니?" 하고 물었더니 "Because I just want to be with everyone! I just love everyone! (그냥 언니들하고 같이 있고 싶고 다들 좋아서 그래요)"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언니들이 무슨 얘기를 하다가도 자기만 오면 말을 그치고 안끼워줘서 심슬을 부린다는 것이다.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막내의 자리는 따로 있다는 친정엄마 말씀이 정말 맞나 보다.
큰 아이들같았으면 더 혼을 내서 보냈을텐데,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안아주었다.
"우리 은영이가 언니들을 정말 좋아하는데 언니들이 그마음을 안받아주니까 속상하구나."
저쪽에서 입을 비쭉거리는 언니들의 모습도 우습고, 외사랑(?)을 키우는 막내도 우습고. 엄마의 마음이 몇 갈래로 갈라진다.
"막내도 좀 얘기에 끼워주고 그래라. 소외감 느끼나 봐."
막내를 자라고 보내고 큰 아이와 둘째에게 부탁을 했다.
"엄마, 우리가 초등학생이랑 무슨 얘길 같이 해요!!!"
듣고 보니 그 말도 그럴 법도 하다^^
멋진 남학생 얘기도, 새로 나온 화장품 얘기도, 사고 싶은 옷 얘기도, 막내랑은 왠지 안통한다는 고등학생 언니들의 항변이다.
게다가 얘기를 엿듣고는 바로 엄마한테 다 말을 해버리니 비밀 유지도 잘 안되고, 절대로 끼워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두 아이들의 강한 입장이었다.
누구 편을 들어줘야 할 지 애매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아침에는 네 아이가 모두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서로 깔깔거리면서 케익을 만들고 꽃을 꽃병에 꽂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이 얼마나 푸근해지던지. 이래서 형제가 좋은 거구나. 이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듬직하게 서로에게 자매가 있는 거구나. 내 딸들이 부럽기만 했다.
언니도 동생도 오빠도 남동생도 가져보지 못한 나에게는 우리 딸들의 관계들이 경이롭고 아름답게만 보인다.
이름은 내가 엄마이기에 남들은 내가 이 아이들에게 무언가 가르친다고, 가르쳐야 한다고 하겠지만, 사실은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통해 내가 이들에게 삶을 배우고 사랑은 새로 배워가는가.
큰 아이가 내년이면 대학에 가는 이 즈음에서야 나는 엄마의 의미를, 자식의 의미를 새로 깨달아가는 늦깍이 엄마인가 보다.
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어머니 날
동경미 |
조회수 : 2,536 |
추천수 : 20
작성일 : 2011-05-11 05:4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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